김애란, 《바깥은 여름》,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사랑과 이별, 감정의 소용돌이

by 문영

사랑하는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남겨진 자에게 상처로 남는다. 그 상처는 쉽사리 낫지 않고 더욱더 짙어지기도 한다. 오빠가 세상을 떠났을 때, 짧은 기간에 나는 거의 10킬로가 쪘고, 새언니는 거의 10킬로가 빠졌었더랬다.


언니, 왜 그렇게 살이 빠졌어요?

남편 잃은 여자가 그렇지 뭐. 그냥 쭉쭉 빠지네요.


언니가 살이 빠진 건 슬픔에 겨워서이고, 내가 살이 찐 건 인생의 허무를 견디지 못해서였다. 나는, 허무함을 이길 길이 없어 속을 꽉꽉 채웠다. 먹고 먹고 또 먹었다. 우리는 모두 각자 슬픔의 무게와 고군분투하는 중이었다. 나의 급작스런 변화를 알아봐 주는 가족은 없었다. 어쩌면 남편은 묵묵히 지켜봤는지도 모르겠다.


<어디로 가고 싶은가요>라는 작품 속 명지는 남편을 잃었다. 갑작스러운 사고였다. 아이를 갖기로 한 다음 날, 명지는 김치를 담그려고 준비를 하는 중에 남편의 부고를 받는다. 명지는 사흘 만에 집에 들어왔더니 열무가 시들고 비릿한 냄새를 내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 열무는 명지의 모습이리라. 모든 감각을 잃어버린 명지의 삶이 고스란히 펼쳐진다. 남편의 마지막 모습은 허둥지둥 나가는 뒷모습이었다는 아쉬움이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명지의 무기력을 아는 사촌 언니가 명지를 스코틀랜드 자기 집으로 부른다. 명지는 그곳에서 대학 동기를 만나고 대학 동기는 명지에게 남편의 안부를 묻는다. 명지는 잘 있다고 대답하다가, 전화를 걸어보자는 동기의 말에 주저앉아 펑펑 울고 만다.


오빠를 잃고 나서 나는 한동안 '오빠'라는 단어를 듣지도 쓰지도 못했다. 내 남편은 친구들의 교회 오빠였다. 당연히 친구들이 내 남편의 안부를, "오빠 잘 지내셔?"라고 묻는데, 그때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고 눈물이 고였다. 나는, 결국, 친구들에게 부탁했다. "그냥 남편이나, 신이 아빠 잘 있냐고 해 줘. 오빠라고 부르지 말아 줘." 오빠의 죽음을 모르는 누군가가 오빠의 안부를 물으면 나도 작품 속 명지처럼 펑펑 울었다. 내 입으로 오빠의 죽음을 말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빠라는 단어가 비수가 되어 가슴에 팍팍 꽂혔었다.


작품 속 명지는 피부병을 얻었다. 피부 감기라는 온몸 두드러기를 앓으면서 그것이 얼마나 흉한지 생생하게 묘사했다. 햇빛이 닿는 부분엔 두드러기가 없는데 옷으로 가려진 부분은 그렇게 흉측한 반점들이 온몸을 덮었다고 한다. 펑펑 우는 명지에게 대학 동기는 헤어졌냐고 묻고 명지는 그렇다고 한다. 몇 달 전에 헤어졌다고. 타국에서 이미 취한 둘이 명지의 숙소에서 묘한 분위기에 휩싸이다가 명지의 반점이 스킨십의 진전을 막는다. 명지는 무안했겠으나 다행이다 싶었다. 모르겠다. 그냥 다행이다 싶었다.

명지의 대학 동기는 명지 남편의 절친이었던 걸로 보였다. 그리고 명지를 좋아하기도 했었나 보다. 술 때문이었다고, 영국이었기 때문이었다고 둘러댈 수 있을까. 그 둘의 감정을, 사랑의 행위를 너무도 공감한다. 사람은 이성보다 본능이 앞서기도 하고 마음보다 몸이 외롭기도 한다는 걸, 감정에 휩싸일 수 있다는 걸 안다. 명지의 대학 동기는 나중에야 명지 남편의 소식을 알고 명지에게 연락을 하지만, 명지는 이미 귀국하는 중이었다. 명지의 반점이, 부질없는 외로움이, 명지를 빠른 귀국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삶이 고되다. 명지의 삶도, 명지의 남편이 구하려다가 같이 물에 떠내려간 학생의 아픈 누나도, 스코틀랜드에서 유학 중인 대학 동기도 다 고되다. 그들의 고됨이 너무도 현실적이다. 왜 이렇게 삶이 고되야 하나. 우리는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나. 명지가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면 덜 고됐을까. 감각을 잃지 않아도 됐었을까. 오빠를 잃고 생각했었다. 내가 오빠랑 유독 친한 사이가 아니었었더라면 나는 좀 덜 허무하고 덜 슬펐을까. 부질없는 가정이다. 그렇다고 갑작스러운 이별을 염두에 두고 거리를 둘 수는 없는 일이다. 어쩌면 갑작스럽게 떠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더 정성을 다하는 아이러니를 만들 뿐.


너무 사랑했기에 너무 아팠고 너무 사랑했기에 그 빈자리를 몸서리치는 명지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명지의 남편이 죽음으로 뛰어든 것이 아닌, 죽음으로 가는 아이에게 삶을 주려고 했다는 마지막 문장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삶이 삶에게 손을 내밀다. 명지의 남편은 교사로서 제자를 홀로 가게 둘 수 없었던 것이다. 그 행위를 원망할 수 있을까. 세상엔 원망할 수 없는데, 잘못하지 않았는데 슬픔을 당하는 일이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시기를 모를 뿐, 이별은 필연이다.


아쉬움이 남는 것보다 짙은 슬픔이 나을 것이다. 원수 같은 XX 잘 떠났다보다 펑펑 울며 아름다움을 추억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외로움과 허무함, 쓸쓸함과 슬픔, 원망과 그리움의 쓰나미를 겪으며 본능이 이성을 이겨버리기도 하겠지만 그것마저 끌어안는 것이 인생이리라. 그러기에, 나는, 오늘 더욱, 사랑해야겠다.


작가는 삶을 이야기한다. 슬픔을 끌어안고 이어나가는 삶을 기록했다. 살아간다는 무게를 잘 견뎌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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