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 <돈을 매입하는 기계>

돈보다 나와 네가 귀하다

by 문영

물질만능주의, 돈의 노예. 너무도 식상한 어휘다. 그런데 이런 어휘밖에 떠오르지가 않는다. 왜 이렇게 식상한가. 그만큼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물질만능주의에서 돈의 노예로 살고 있는 것이다. 이 기막힌 현실을 김동식은 재치 있게 그려내어 비판한다.


민우와 용철이 발견한, 돈을 매입하는 기계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해 줄 것 같았다. 그러나 둘의 인생은 결코 새로워지지 않았다. 하던 것을 더 쉽게 하거나 어려움 없이 더 많은 돈을 벌었을 뿐이다. 돈을 매입해 주는 기계가 오히려 더 돈에 집착하게 했고 멈추지 못한 질주가 그들의 인생을 멈추게 했다.


어떤 반전이 있을까 기대하며 읽었다. 이미 심장은 쫄깃해진 상태에서 읽어나갔는데 작가님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인간은 왜 돈을 만들고 돈에 쩔쩔매는지 너무나 이상했다.

너와 나의 인생이 다르기에, 부자가 부럽지 않았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못했다. 돈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궁무진했다. 돈과 상관없이 마음껏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라는 존재가 가장 컸다. 그러나 가진 자의 여유에 불과했다. 돈을 벌지 않아도 용돈으로 대부분 해결되던 시절의 이야기였을 뿐이다. 딱 그 시절까지였다.


재수를 마치고 처음으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시급 1,600원을 받으며 하루 일곱 시간을 일했다(그렇다고 내가 아주 옛날 사람은 아니다). 한 달 만에 시급이 1,900원으로 인상됐으나 그래봤자 하루에 만사천 원도 벌지 못했다. 그때 모 제과점에서 쉬폰 케이크를 출시했다. 보기만 해도 보송보송한 식감이 느껴지는 그 케이크가 그 당시 이만이천 원이었다. 나는 이 포인트에서 자괴감을 느꼈다. 내가 열 시간을 일해도 쉬폰 케이크 하나를 살 수 없다는 사실이 엄청난 충격을 줬다. 이때부터였다. 세상이 뭔가 부조리하다고 생각하며 상대적 박탈감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 만약 돈을 매입해 주는 기계가 있었다면 나는 알바비를 몽땅 넣고 더 많은 돈을 챙겨서 쉬폰 케이크를 샀을 것이다. 그리고 불안해하면서 끊임없이 돈을 넣고 더 받는 행위를 했을 것이다. 어쩌면 편의점 돈을 몽땅 가져다 넣었을지도 모른다. 민우와 용철이처럼.


문득, 질문이 들었다. 민우와 용철이가 일용직 노동자가 아니었다면 달랐을까? 아니,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여유가 있으면 있는 만큼 돈은 더욱 필요하다. 돈은 다다익선이다. 그렇지만 각박하진 않았을 것 같다. 어느 정도 여유가 있다면 그렇게 정신없이 기계로 돈 불리는 데만 집착하진 않을 것이다. 결국 가진 자의 여유가 필요한데 그 여유를 얻기까지가 악순환의 고리일 것이다. 돈 넣고 얻고 불안하고 바꾸고 다시 넣고 얻고 불안하고.


무엇이든 적당한 때에 멈출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적당한 때를 알 수가 없다. 당장 눈앞의 것이 너무나 달콤한데 어떻게 멈추란 말인가. 그렇다고 우리가 민우와 용철이처럼 돼서는 안 될 일이다.


작품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돈에 얽혀 있는 사연이다. 기계가 값을 매기는 것은 돈이 아닌, 바로 그 사연이다. 돈의 노예가 돼서는 안 되지만 천 원 한 장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그 천 원 한 장에 수많은 사연이 담겨 있다. 작가는 말한다. 그 사연이 귀하다고.


사연은 사람으로부터 비롯된다. 사연이 귀하다는 것은 그 사연의 주인공이 귀하다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쉬폰 케이크를 사 주기 위해 열두 시간을 일해서 모은 돈을 기계에 넣었다면 얼마를 쳐 줄까. 기계는 그 돈을 보지 않는다. 그 돈을 모은 사람의 마음을 평가한다.


기계는 아름다운 사연뿐만 아니라 흉악한 것까지도 진귀하게 여기지만 결국, 그 사연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귀한 것이다.


나는 여전히 돈을 만들고 돈에 쩔쩔매는 사람들을 백 퍼센트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이해 못 한다기보다는 이렇게 만드는 사회구조를 타파할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게 답답하다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겠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우리는 돈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돈보다 내가 귀하다. 돈보다 네가 귀하다. 우린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사회에서 꼭 지켜야 하는 원칙일 것이다. 물질만능주의에서 돈의 노예로 살지 않기 위해. 민우와 용철이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작가는 돈을 매입하는 기계로 우리에게 경고한다. 돈에 집착하지 말고 사람을 보라고.


돈보다 사람이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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