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9일 생은 사 년에 한 번 생일을 맞이한다. 대기업 두석규 회장은 생일날 4년 전의 과거로 갈 수 있게 해 주는 물건을 획득하여 과거의 자기를 찾아간다. 자정까지만 가능한 이 일을 64세 두석규가 너무 늦게 시작하여 40세에 마무리된다. 바뀐 과거의 결말은 어땠을까. 나는 과거로 간다면 무엇을 했으려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중*고등학교 시절에 나는 공부를 하지 않았다. 공부는 하찮았고 친구가 귀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단짝 친구 한두 명은 있었으나 이상하게 무리에 끼지 못했었다. 어쩌면 그게 '왕따'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무언가가 친구들과 달랐고 그것이 나를 무리에 속하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공부를 많이 했고 책을 많이 봤다. 그러고는 무언가 다른 공부 잘하는 아이가 되었고 담임교사의 편애로 재수 없음이 더해졌다.
발달이 느린가 싶을 정도로 순진했다. 담임교사의 편애가 고마웠었고 말 잘 듣는 딸로서 학교가 끝나면 쏜살같이 집으로 직행했었다. 무언가 이상하다 느꼈지만 크게 불편하지 않았고 해결 방법을 몰랐다. 나랑 놀아주는 단짝 친구들도 있었기에.
그러다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교사와 부모를 향한 분노가 일었다. 교사는 순진한 나를 이용해 자기 이득을 취했고(교실에 필요한 갖가지 물건과 꽃을 내게 준비시켰었고 엄마 아빠는 욕을 하시며 모든 걸 사 주셨다) 부모는 곧장 집으로 올 것을 명함으로써 나를 친구들로부터 떼 놓았다고 생각했다.
공부와 손절했다. 공부 잘하는 재수 없는 아이라는 수식어가 싫었다. 교사에게 잘 보이고 싶지 않았다. 마음이 통했나. 고1 때 담임은 나를 차별했다. 편애는 받아봤어도 그 반대는 처음이어서 낯설었다.
나는 결과적으로 친구들에게 예스만 말하는 사람이 됐고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 고3, 발등에 불이 떨어졌고 내신을 포기한 채 수능에 올인했다. 3월 모의고사보다 백 점 넘게 나온 성적표를 취득 후 재수에 올인했다. 50점이 더 올랐으나 입시에 실패했다. 이유는 쉬웠던 난이도로 인해 내 수능점수대의 학생이 너무도 많았는데 그중에 내가 생기부 꼴찌에 가까운 수준이었다는 걸 알았다. 수능 변별력이 낮아지면서 내신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졌고 그것이 내게 엄청 분리하게 작용했다. 그리고 한동안 같은 꿈을 반복적으로 꿨었다. 다시 고등학생이 되어 열심히 공부하는 꿈. 꿈속에서 나는 생기부를 잘 만들어야 한다고 쉬는 시간에도 책을 붙잡고 공부를 했다.
그래서 과거의 나에게 무슨 말을 해줄까 떠올리니 당연 공부하라는 당부다. 학벌위주의 대한민국에서 범인이 얼마나 살기 힘든지 나는 경험으로 뼈저리게 느꼈다. 내 소원은 무조건 다시 좋은 내신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서 가능할까? 아니,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도 다시 과거로 가면 또 칠렐레 팔렐레 재밌게 놀 듯하다. 미련이라는 것의 크기만 더욱 커지겠지.
두석규 회장은 가족도 취미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 성공을 이룬 후 공허함에 빠져버린다. 나도 앞만 보고 가는 중이다. 멈추는 법을 모른다. 아직 공허함에 빠지진 않았으니 멈추지 않아도 되는지 모르겠다.
작품의 결말은 심오하다. 사람은 과거를 바꿀 수 없다. 과거는 어제와 오늘의 과도기다. 과거의 내가 바뀌면 지금의 나는 없다.
정말이지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아야겠다. 과거의 나를 찾아가지 않기 위해, 공허함에 빠지지 않기 위해.그리고 학창 시절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