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쇼코의 미소>

가족이라는 존재

by 문영

나는 어떤 모습으로 미소를 짓나.

쇼코의 미소는 예쁘고 내 미소는 예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상한 열등감이다. 책의 주인공에까지 질투하나.


소유와 쇼코는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그 둘에게 공통분모를 만들어 놨다. 그것은 바로 결핍이다. 그리고 그 결핍을 채워주는 할아버지란 존재가 그렇다. 서로 알아봤을 것이다. 아버지의 부재와 조부의 특별함을.


가족은 가족이라서 사랑하고 가족이기에 버겁다. 쇼코에겐 할아버지가 그렇고 소유에겐 엄마도 그런지 모르겠다.


그 둘이 함께했던 일주일의 기간은 친밀해지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특히 여중생에겐.




손님은 가족을 낯설게 한다. 타인을 대하는 부모의 모습을 잘 보지 못했을 경우 더더욱 그렇다. 우리 가족은 새언니가 들어오면서 활기가 생겼었다. 같이 외식을 하고 대화도 많아졌고 여행도 갔었다. 제발 나 좀 빼 달라고 짜증 냈던 기억이 있다. 왜 안 하던 걸 하냐고 귀찮아했었다.


그때는 부모님과 새언니가 서로 알아가며 서로에게 잘 보이려는 시간이었다. 일종의 사회생활이었던 것이다. 가족이라는 사회에서 함께 굴러갔던 나는 그게 피곤하기도 낯설기도 했다. 그러나 그 시간에 우리 가족 내 분위기는 확실히 더 활기가 돌았다.




쇼코가 등장한 소유네 집도 예전 우리 집과 비슷했으리라. 쇼코를 알아가는 시간, 배려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잘 보이려 했을 거고 많은 걸 채워주고 싶었을 것이다.


쇼코는 소유의 할아버지로부터도 위로를 받고 자신의 할아버지를 이해하게 됐을 것이다. 가족에게 활력을 주고 소유네로부터 활력을 받았을 것이다.




나이와 인종을 초월한 우정이 가능하다. 외로운 사람은 같은 외로움을 알아본다. 소유 할아버지는 평생을 꼿꼿하게 사시며 외로움에 사무쳤을 것이고 그 외로움을 손녀뻘 쇼코에게서 발견했으리라. 공감은 위로가 되고 서로를 끈끈하게 한다. 서로 통하면서도 얽히지 않아도 되는 존재, 쇼코와 소유 할아버지 펜팔이 서로에게 얼마나 큰 위로였을지 상상해 본다.


쇼코는 소유와 소유 할아버지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 먼 이국 땅에서도 잊지 않고 편지를 보내는 친구. 소유는 그 우정이 고마웠을 것이다. 훗날 일본까지 찾아갈 정도로.




소유와 쇼코의 인생이 아팠다. 소유는 너무나 현실적이었고 쇼코는 너무나 여릴 듯했다. 삽화 하나 없었는데 두 명의 사진을 본 듯 이미지가 그려졌다.


삶이 뜻대로 되지 않는데 죽음도 마찬가지다. 인생은 뭣 하나 쉬운 게 없다. 그러나 또 한편으론 뜻하지 않은 위로와 기쁨이 있다. 소유와 쇼코, 소유 할아버지의 관계가 그러하다.




국적을 불문하고 가족이 사랑하고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하다. 이상하게 마음이 울적해지는 소설이었다. 외로움과 나이를 먹는다는 것, 죽음으로 이별한다는 것이 너무나 담담하게 그려져 쓸쓸했다. 쇼코의 미소는 벗어날 수 없는 가족을 사랑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수긍한 미소이지 않을까.


나도 가족을 사랑한다. 투병 중인 소유 할아버지의 마지막 예순여 밤이 인상적이었다. 셋이 나란히 누워 대화했다는 그 밤들. 우리는 마지막을 앞두지 않아도 함께 누워 대화하는 가족이었으면 좋겠다.


사랑만 하는데도 그 표현조차 참 어려운, 인생의 쓸쓸함이 짙게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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