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가 없다. 마음이 가는 곳에 몸과 돈이 가야 하는데 그 돈이 그렇게 없다.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이 돈 외엔 없는가. 나는 한탄스러웠다. 한 번도 넉넉하다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도 놀랍다.
작품 속 혜옥이 그렇다. 순애 언니랑 연락하고 지낼 수 없었다. 그 마음이 그렇게 공감이 됐다. 잘 살면 잘 사는 대로 불편하고 못 살면 못 사는 대로 찾을 수가 없다. 못 사는 사람에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도, 내 한 몸이 힘든데 더 못 사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못할 일이다. 사람의 관계라는 것이 씁쓸할 정도로 경제 논리에 얽매인다.
비단 경제 문제 때문이었을까? 강압적인 독재 정권에서 개인은 힘이 없었다. 특히 어린 여자는 더더욱 그랬다.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봤으나 바보 같다는 소리만 듣고 외면받은 혜옥은 짙은 패배감을 느끼며 사회와 타협했다.
그런 혜옥에게 순애 언니는 마음의 짐이었을 것이다. 매정한 자기 엄마에게 이용만 당하던 아무것도 없는 순애 언니가 사회에까지 짓밟히는 것을 보며 그런 자기 엄마에게 사회에게 보호받은 혜옥은 불편했을 것이다. 그 마음을 작가는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내가 굳이 쓰라린 마음을 뒤로하고 조카를 보지 않는 이면에도 차별이 있다. 아들과 딸이 다르고 친손주와 외손주가 다른 부모님에게 하는 항의였고 그 차별을 이용하는 전 새언니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남편을 대하는 방법이었다. 돈도 없지만 차별을 포용할 마음도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마음의 짐을 지었다.
가끔 정말 타고난 팔자라는 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박복해 보이는 사람이 있다. 순애가 그렇다. 어렸을 적 불우함이, 잘못 만난 시대가 그녀의 평생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이 문장을 쓰는 찰나에, "항상 이렇게 사는 건 아니야."라던 순애의 말이 떠올랐다. 내가 그녀의 삶이 평생 불행했다고 쉽게 결론 내린 것이다. 타고난 환경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지 못했다고 하여, 눈앞에 보이는 외관이 형편없다고 하여 꼭 불행하지만은 않을 텐데 모든 관계를, 삶을 물질적 잣대로 대는 내가 참 형편없다.
최은영 작가는 마음을 나누는 법을 이야기한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주는 자세. 나의 있는 그대로도 드러낼 수 있는 사이. 마음은 그렇게 나누는 것이 아닐까. 현실에서 너무나 어렵지만 해봄직한 삶의 태도이다. 우리는 모두 마음이 있고 그 마음을 느끼며 울고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