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 시간이 넘게 함께 울다 담담하다 복받치다 지쳤다. 그게 우리의 마지막이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고 받아들이지 못했다. 우리가 왜 마지막이어야 하는지. 그러나 마지막은 그런 것이었다.
영주는 한지의 마음을 모른 채 묻지 않았다. 정말 몰랐을까. 독자인 내게도 보이는 그 마음을 그녀는 모른 척한 것일 게다. 미래가 없는 사랑을 마주하여 미래를 개척할 용기가 둘에게는 없었다.
우리는 함께할 수 없다 그는 판단했을 것이다. 나는 판단하지 않았다. 그냥 함께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토록 다르고 그토록 힘들었지만 그냥 막연하게 당연히 함께한다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어렸다.
결합하여 분리되고 싶지 않은 마음을 마주하면서도 한지가 자기 마음을 알게 되면 도망갈 거라는 영주의 마음은 사실은 영주를 향한 한지의 마음이었다. 한지는 영주를 외면하는 것을 택한 것이다.
한 시간의 눈물로 관계를 일단락했다. 그의 차에서 나온 이후 나는 그를 보지 못했다. 이별을 실감하지 못하는 어린 나의 연락을 어른인 그는 철저하게 차단했다. 잔혹할 정도로.
수신이 거부되었습니다.
문구가 너무도 차가웠다. 나는 왜 거부당해야 하는가. 이해할 수 없었다.
메일 하나로 정리될 수 있을 정도로 전 남자친구에게 사랑이 남아있지 않았던 영주의 마음에 한지는 너무도 맑은 사람이었다. 영주가 묘사하는 한지가 내 눈에도 말갛게 그려졌다. 영주의 꿈속 장면이 내 머릿속에 펼쳐졌다. 깨끗한 물에 둘이 발을 담근.
삼악산 바위에 둘이 앉아 있다. 새소리를 들으며 맑은 공기를 마시며 말이 없이 좋았다. 총천연색 숲에서 호흡을 공유하며 한없이 평화롭고 편안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산이 있구나. 이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숲을 좋아한 것은.
한지의 외면을 영주는 받아들인다. 그를 괴롭히기 싫어서이다. 그의 마음을 인정하는 사랑을 택하고 영주는 홀로 끙끙 앓는다. 이미 한지의 가정에서 함께하는 삶을 그려봐 놓고 너무나 아프게 감정을 오롯이 담는다.
나는 그와의 이별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꿈에서 새파란 농구점퍼가 나타났다가 멀어졌다. 나는 이렇게 힘든데 그는 그렇게 사라졌다. 울다 눈을 뜨면 홀로 살아갈 세상이 펼쳐졌다.
사랑의 강렬함은 시간도 무색하다. 영주는 많은 과거를 되돌아보며 가정해 봐도 모를 이유를 결국 모른 채 모질게 한지를 보냈다. 마음속에 새기고 또 새기며 어쩌면 처음으로 다시 태어나길 기대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가 이별해야 했음을 받아들였다. 억지로 만들 수 있는 미래가 아니었음을.
그날 내가 거길 안 갔다면을 끊임없이 가정해 봤지만 이별할 타이밍이었기에 그날 내가 거기 갔던 것이었다.
<한지와 영주>를 보면서 첫사랑과의 갑작스러운 이별이 떠올랐다. 나는 영주처럼 상대의 마음을 챙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의 사랑과 슬픔, 허전함에 집중했었다. 나에 비해 영주는 큰 사람이었다. 상처를 오롯이 떠안을 수 있는. 그럼에도 여전히 이별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혼자만의 사랑이 완전할 수 없듯이 이별도 마찬가지다. 방법은 모르겠으나 이별도 함께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