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미카엘라>

엄마와 딸, 그 끈끈함

by 문영

부모의 사랑이 하늘 같다지만 자기를 그렇게 꼭 안아주던 어린 자식의 사랑을 잊을 수 없다던 여자의 말이 너무나 공감되었다. 나는, 어릴 적 꿍이의 사랑이 그렇게도 컸다. 나만 바라보는 아이의 똘망한 눈망울이 지금 생각해도 벅차오른다. 누구에게 내가 이런 절대적 사랑을 받겠는가. 그 당시, 나의 하루하루를 사랑으로 가득 채워 준 아이였다.




여자는 딸이 바쁠까 먼저 연락도 못했다. 아무것도 못해 준 못난 엄마라서 딸을 방해할 수 없었다. 딸은 엄마가 신경 쓰였다. 밤낮없이 일하는데 굳이 서울까지 온 엄마는 참 배려가 없는 사람이었다.




엄마의 마음도, 딸의 마음도 너무나 내 마음이라 속으로 울었다. 나도 딸처럼 엄마를 신경 쓸 뿐 챙기지 못한다. 바쁘다는 이유로, 힘들다는 이유로, 아프다는 이유로. 마음은 엄마로 한가득인데 엄마를 보러 가질 못한다. 엄마는 여자처럼, 그래 바쁘지, 어쩔 수 없지 한다. 마음은 딸과 몇 날 며칠 몇 시간이고 보내고 싶을 텐데 차마 내색하지 못한다.


나를 보는 부모의 애잔한 눈빛이 버겁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 눈빛이 있다는 것이 든든하기도 하다. 존재 자체가 힘이 된다. 많은 서운함을 주고받지만, 서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값지고 감사한 일인가. 여자에게 딸이, 딸에게 여자가 그러할 것이다.


내 아이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고 있는가. 마음은 사랑으로 충만한데 표현이 어렵다. 아이가 클수록 나는 그 표현법이 그렇게 어렵다. 그래도 아이를 보면 여전히 미소 짓게 된다. 이제는 내가 아이의 덕후이다. 작품 속 여자도 그렇게 딸의 덕후였다. 딸 생각만 하면 뿌듯하게 차오르는 마음, 그 마음이 너무 생생해 저릿저릿했다.




세월호 사건은 온 국민에게 상처였다. 그 생때같은 아이들이 바닷속에 가라앉았다. 기가 막히고 눈물이 나고 나 또한 신앙을 잃을 뻔했던 사건이었다. 오빠가 세상을 떠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일어난 사건이기도 했다. 이렇게 허무하게 데려가실 거였으면 세상에 내지나 마시지 원망했었더랬다.




여자는 세월호로 손녀를 잃은 친구를 찾아다니는 노인을 만나 그 사건을 떠올린다. 그 사건의 희생자는 흔한 어린 학생들이었다. 딸아이와 세례명을 같게 하여 그 일이 남의 일일 수만은 없음을 작가는 말한다. 미카엘라도 엄마와 닮은 유족을 보며 그 아픔을 친근하게 받아들인다.


여자는 매사에 감사한 사람이었다. 아무도 증오하지 않겠노라 마음먹으며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감사와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여자의 그 인품이 딸을 훌륭하게 키웠을 것이다. 학원을 보내지 못했고 메이커 옷을 사 주지 못했지만 큰 사랑으로 훌륭한 인품으로 값진 것을 주었을 것이다.




부모는 아이에게 본이 되어야 한다. 나도 우리 아이에게 최상의 것을 해 주지 못한다. 좋은 집에서 살게 해 주지 못하고 많은 용돈을 주지 못하고 더 많이 공부시키 못한다. 그래도 아이에게 떳떳한 엄마가 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 부끄럽지 않은 존재로 우뚝 설 것임을 지금 이 순간도 다짐한다.


먹먹했던 것은 착한 사람의 삶이, 보통 사람의 삶이 녹록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다시 생각을 바꿨다. 경제적 잣대로만 보면 녹록지 않다. 그렇지만 매사에 감사하고 작은 일에 기뻐한 여자의 충만한 삶을 내가 감히 녹록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여자는 이미 풍요로운 사람이었다.


나 또한 매사에 감사하며 여자처럼 충만한 삶을 살아야겠다 마음 깊이 생각해 봤다.



지금까지 <<아주 사적인 단편 읽기>>를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번 화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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