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백석의 마지막 뒷모습
이영진
눈 내리는 저녁.
북한 보위국(시골 파출소 정도로 보면 된다.) 안.
안에서는 베치카에 연방 장작을 때는 병사와 몇 몇 군인들.
난로 위에는 주전자가 증기기관차의 굴뚝처럼 연기를 내보내고... 장교는 자신의 책상에서 창 밖을 보며 보드카를 마시고 있고, 병사 몇이 초라한 늙은이를 심문하고 있다.
병사 1 : 아, 기러니까니 이름이 뭐냐고, 이름이.....
늙은이 : 잘.... 기억이 나지 않습네다.....
병사 2 : 아... 이거, 완젼 사람 미치게 하누나.... 이거...
병사 1 : 이름도 모른다. 주소도 모른다.
아니 아는 게 도대체 뭐이야....?
늙은이 : 잘... 기억이 나질 않습네다.
병사 2 : 이거, 이거 완젼히 미친 거 아이야...?
병사 1 : 기럼 어디로 가는게이요..?
늙은이 : 나타샤..... 나타샤를 찾으러.....
병사 2 : 나타샤...? 아 여기가 소련이가....?
이거 이거 완젼히 갔구만 갔어....
어이. 이보쇼. 영감.
내래 똘스토이 이바노비치 야요.
나타샤? 잘 알디.....
기럼 위루, 쭉 북으로 가야디 와 남으로 가네...?
늙은이 : 내가 위에서 나타샤를 기다리다 오지를 않아서 내려오는 중입네다. 나탸샤를 찾아서...
병사 1 : 기럼, 나타샤는 어데서 영감을 기다리고 있숨둥...?
늙은이 : 그걸 잘 모르겠습네다.
기냥 찾아서 내려가는 중입네다.
병사 2 : 목적도 없이.... 기냥 남으로....?
늙은이 : 그냥 가는 거 입네다. 여기 저기......
병사 1 : 나아..... 참... 이거야.... 원....
이때 보드카를 마시던 장교가 보드카를 들고 다가온다.
보드카를 한잔 따라주며....
장교 : 날도 추운데.... 이거나 한잔 하시오.
늙은이는 수전증이 있는지 손을 벌벌 떨며 보드카를 마신다.
늙은이 : ........고맙습네다.
장교 : 영감님...... 직업이 뭡네까...?
이전에 하던 일.... 말입네다.
늙은이 : 없습네다. 이것 저것... 닥치는대로.....
장교 : ......손 좀 올려 봅세. (늙은이의 손을 유심히 본다)
이거이 농부의 손은 아이고, 로동자의 손도 아니고.....
글쟁이 손이구만. 학교 선생이나 글쟁이였댔소....?
늙은이 : ......글....? 기런 거 모릅네다.
장교 : 조금 전에 나타샤 찾으러 간다고 했디요....?
늙은이 : ....녜
장교 : .....나타샤. 내래 예전에 알던 글쟁이가 하나 있시오.
나타샤에 대한 글을 쓰곤 했디요.
백석이라고......시인이요.
들어봤소....?
늙은이 : ....백석....? 모르는 사람이요.
장교 : 백석이라고 유명한 글쟁이인데.....
이름도 들어 본 적이 없소....?
늙은이 : 모르겠습니다. 이름도 들어 본 적 없습네다.
장교 : .........
(짧은 침묵, 밖은 눈보라 지나가는 소리와 주전자의 물 끓는 소리 뿐.)
장교 : ....이 보라우. 이 영감 짐이나 수색해 보라우.
병사 1 : 수색해 보았는데 특별한 거이 없습네다.
그냥 지나가는 나그네 같습네다.
늙은이 : 그냥 지나가는 길입네다.
장교 : ....밖에 눈이 마이 내리니 오늘은 여기서 묵고,
내일 날이 밝으면 떠나시오. 특별히 조사할 것도
없으니. 편히 쉬다 내일 가도 되오.
늙은이 : ...아닙네다. 가도 되면 가 보겠습네다.
장교 : 밖이 마이 추워서리 얼어죽는 사람이 많아서 기래요.
내일 아침 가도 되지 않갔소....?
늙은이 : 가도 되면 가 보갔습네다.
장교 : (잠시 생각하다)......야, 거 짐 내 드리라우.
늙은이 주섬주섬 짐을 챙긴다. 장교 그 모습을 지켜 본다.
늙은이 짐을 지고, 모자를 들고 연신 굽신거리며 인사 한 후,
문쪽으로 향한다. 그 모습을 유심히 보던 장교가 갑자기
장교 : 오이. 백기행이.
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순간 모든 것이 정지하고, 조용해졌다. 늙은이도 문 앞에 호흡을 멈추고 서 있었다.
장교가 보드카 병을 들고 천천히 일어나 늙은이에게 다가갔다. 장교가 늙은이의 짐 보따리를 풀고,
그 안에 자기가 마시던 보드카를 넣어주며,
장교 : 백선생. 내래 백선생의 본명을 아무리 생각해도
머리에서만 뱅뱅 돌다가 백선생이 여행을 좋아했다는
말이 떠올라서, 기행...
기래 백기행이라는 이름이 떠 올랐시오.
내래 백선생 시를 많이 좋아했쉬다.
이거이 백선생 시에 대한 보답이외다.
가시면서 마이 추우면 쪼금씩 마시라우요.
긴데 기거이 마이 마시면 거꾸로 얼어 죽어요.
조금씩 조금씩 드시라우요.
어디로 가시는디 모르디만 좌우간 조심히 가시라요.
늘 백선생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잊디 마시오.
하며, 문을 열어준다.
안에서 “ 아이고 저 비싼 술을.... ” 어쩌고 하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모자를 들고 인사하고 길을 나선다. 하늘을 보니 하얀 눈이 한 없이 내린다. 늙은이는 “ 눈... 눈이 나리네. 자야에게... 자야에게 가야디....” 하고, 중얼거리며 눈길을 나섰다.
그 이후로 그 늙은이가 출출이(뱁새)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오막살이)에 살았는지 또는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방을 얻어들었는지 그 이후로 그 늙은이를 본 사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