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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굴양 Aug 10. 2019

나는 왜 산모일기를 쓰는가

너굴양 산모일기


요즘은 주변에 애기엄마가 정말 없다.


물론 임산부가 되고 나서는 거리에 배나온 사람만 보이고, 병원에는 임산부가 왜 이렇게 많은 것이며(물론 이건 분만하는 병원이 줄어서 몰리기 때문이지만) 마트에 유모차에 누워 코 자고 있는 애기들이 이렇게 많았나 싶지만.


지금 사는 광명시는 가히 '신혼부부의 메카'라고 불릴만큼 아기 엄마가 많은 지역이지만 이것도 동네에 따라 조금씩 다르고, 어린이집이나 소아과, 마트 같이 특정 장소에 가야 서로를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내가 커온 80년대의 골목길과 조금 달라보인다. (아현동, 신천, 효창동, 인천 등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이사범위 무엇)


엄마는 내가 태어나자마자 집에서 조리를 했고, 신생아 목욕을 시킬줄 몰라 동네에서 애낳은지 얼마 되지 않은 애기엄마들이 거의 100일때까지 목욕을 시켜줬다고 했다. 아기가 자주 태어나는 환경이다보니 서로 아기를 돌봐주고 살림을 봐주는 일도 많았다. 엄마의 추억속에도 아줌마들과 같이 한 집에 모여 부업(인형 눈알 붙이기 같은)을 하고 아이들은 거실이나 작은방에 모여 놀았다고 한다. 나는 누가 엉덩이라도 꼬집어 뜯는 것처럼 울어제끼는 아기였고 (태어날 때도 그랬다고 함) 목욕을 시키려면 데시벨이 두 배 쯤 높아져서 동네 아줌마들이 다 같이 모여 목욕을 시킨적도 많다고 했다. (어머님들 죄송함니다...)


100일 무렵의 떼쟁이


나의 지인들 중 올 해 출산하는 임산부는 나까지 여섯명. 각각 제주, 원주, 서울, 경기에 살고 있다. 간간히 메신저나 온라인으로 안부를 묻고 정보를 교환한다.


동네에 애기 엄마가 없고 요새는 이웃간 교류도 영 없으니 맘카페에 가야 질문을 할 수 있다. 아마 최근 몇 년 동안 임신-출산-육아 관련 에세이나 만화가 나오고 있는 이유는 일상 속에서 임신-출산-육아를 겪는 과정에서 궁금한 자잘한 것들을 물을 데가 없거나 함께 공감하고 힘을 받을 사람들이 별로 없기 때문일 것이다. (병원은 의사마다 다른데 물어보기전에 자세히 알려주는 의사는 역시 별로 없다)


친정엄마한테 물어봐도 '삼십년이 넘어서 기억이 잘 안난다'는 엄마도 있고, 힘들다고 하면 '다 그렇게 사는거라'고 딸의 고단함을 덮는 엄마도 있고. 우리엄마처럼 임신-출산 과정을 너무 자세히 알려주는 엄마도 있다.


'이렇게 힘든 걸 왜 아무도 얘기해 주지 않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그렇다면 모두 기록하여 공유하겠다'는 사명감까지 들게 만드는 과정이 바로 임신-출산-육아 아닐까. (<아기낳는만화>의 쇼쇼작가는 임신 과정이 너무 고되고 힘들어 만화로 그리겠다고 다짐에 또 다짐을 했다고 한다)


특히 임신 과정은 육아라는 엄청난 행군의 포스에 밀려 많은 엄마들이 잊게 되지만, 처음 임신을 겪는 사람에게는 '뭐? 이런 걸 겪고 엄마가 된다고?'하는 충격을 주기 때문에 더 알리고 싶은게 아닐까.


임신 후에 겪는 여러가지 고통과 불편함을 '괜찮다'면서 '참고 견디는' 지인들도 많이 보았다. 나름 표현을 한다고 하면서도 자꾸 위축이 되었단다. 주변에 임신해서 힘들다고 하는 사람도 없었을거고 일단 내 일이 아니니까 어떤 느낌인지도 잘 몰랐을거다. 하지만 내 몸을 삼십여년 가지고 살다보면 안다. '야, 이건 참 별 일이로구나'하는 직감이 온다. (하지만 설명하려니 참 쉽지 않아 환장할노릇)


그림 너굴양



하지만 겪어보지 않으면 잘 모를 일이기에 구구절절 설명하자면 '내가 왜 이렇게까지 설명을 해야하지'하는 자괴감에 빠지기 쉽다. '부장님 밑이 빠질 것 같은데 반차를 쓰고 눕눕 하겠습니다'라고 할 수도 없고.


아무튼 엄마들의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것이 무척 반가워서 또 글을 쓰게 되는 것이다. 임신 기간 중에 읽은 에세이와 만화들이 도움이 정말 많이 되었고 용기도 얻었다. 정리해 두었다가 소개하려고 한다.


산모일기를 쓰다보면 '와 정말 힘들겠어요' '엄마는 대단해요' '그래도 지금이 제일 편하니까 누려요'하는 등의 반응을 듣게 된다. 출산 이후 육아가 임신기간 보다 훨씬 힘들다는 많은 엄마들의 의견에 동의한다. 지금을 즐기고 누리라는 말도 동의한다. 하지만 임신기간도 짧지 않다. 10개월 동안 몸에 엄청난 변화를 겪고, 그걸 추스리기도 전에 신생아 육아를 해야한다. 바로 옆에 있는 남편 조차도 잘 알 수 없는 괴로움...임산부들끼리만 공유하자니 약간 억울해지는 그 불편한 무언가.


사회적으로는 어떨까. '임산부 배려석'에 많은 비임산부들이 앉아서 배를 내민 나의 시선을 피한다. 아기 낳으라고 그렇게 압박을 주는데 정작 지하철을 타고 어디 가려면 입덧이 심할 땐 중간에 몇 번씩 차에서 내려야하고, 배가 나오면 혼잡한 승강장에서 배를 손으로 부여잡고 '오늘은 자리가 있을까' 식은땀이 나고. 이사 온 후 만나자는 말에 흔쾌히 우리집 앞으로 온다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임산부석 쟁취 후 인증샷


아기를 낳으면 달라질까? 그럴리가. 너덜거리는 몸을 이끌고 아기도 지켜야 한다. 유모차 밀고 지하철을 타려면 거쳐야할 난관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길은 왜 이렇게 울퉁불퉁한지, 유모차 끌기 시작한 엄마들은 '휠체어 탄 분들은 도대체 어떻게 지하철을 타고 다니느냐'고 걱정을 했다. 엄마야 걸어서 유모차를 끌면 되지만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높은 턱과 수많은 계단 앞에서 외출을 포기하는 분들이 걱정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지만, 조금만 몸이 힘들고 불편해져도 공공시설을 활용하기 어려워지는건 역시 디자인(설계)의 문제 아닐까?


임산부들을 떠밭들어달라는게 아니다.(남편이 해주면 그걸로 족하다) 왜 임산부가 힘들고 '정상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환자'로 분류되어야 하는지를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기 때문에 산모일기를 쓰는 것이다. 겪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이 많기에 간접적으로라도 알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많은 임산부들이 수 많은 증상에 시달리며 이 시기를 견딘다. 나의 아기는 내가 이 모든걸 참으며 길러낼 가치가 있다고 믿으면서. 하지만 그 믿음은 임신하자마자 어디서 뿅 하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아기를 좋아하고 임신을 기다리는 엄마들도 많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임신 후에 내 몸과 마음에 다가오는 변화는 생각보다 크다. 산모도 적응기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무턱대고 '아가를 위해 참으라'고 종용하는 일은 제발 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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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후기가 되니 또 호르몬이 폭발하여 매일같이 산모일기를 쓰고 있다. (그렇게 서운한게 많아집니다 여러분) 재밌게 읽어주세요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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