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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굴양 Aug 14. 2019

입덧의 추억

너굴양 임신일기


남편의 농담이 재미없기는 이 때가 처음이었다




임신 30주차에 접어드니, 입덧에 시달리던 그 시절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에겐 '임신 후기 입덧'이라는 소환 카드가 있었으니...


니가 날 살렸다

아침부터 위장이 불타는 느낌을 받으며 잠에서 깼고, 나는 두 눈을 반쯤 감은 채 냉장고로 향했다. 냉장고 문에 널려져 있는 위장약을 꺼내 봉지를 뜯고 쭈압쭈압 빨아들였다. '흐어...'하는 소리와 함께 안방으로 돌아와 드러누웠다. 


임신 3개월쯤 됐을 때 아침마다 속이 쓰리다고 했더니 임신 동지가 굳이 우리 동네까지 와서 처방받은 역류성 식도염 약을 안겨주고 갔는데, 당시에는 정작 약을 먹을새도 없이 속쓰림이 끝나 지금까지 우리집 냉장고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먹고 싶은 것도 없고 시원하게 냉장한 복숭아가 최고 맛있는 요즘, 나는 이게 더위 때문인 줄 알았지 입덧인줄은 몰랐다. 


임신 8개월 쯤이 되면 자궁이 명치까지 커지기 때문에 위장이 압박을 받아 쪼그라들고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양도 줄어든다. 물론 위산역류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후기 입덧이 온다. 물론 역류성 식도염 증상이나 토덧을 첫달부터 막달까지 가지고 가는 산모들도 많다. (얼마나 힘들꼬... ㅜㅜ) 막달이 되어 아기가 밑으로 내려오면 압박을 받던 위장도 여유가 좀 생기면서 또 먹성이 그렇게 좋아진다고 한다. 그때 땡기는대로 먹으면 애기가 엄청난 속도로 자라기 때문에 순조로운 출산을 위해서는 너무 먹지 말라고 한다. 


임신하면 먹고 싶은거 맘대로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초기엔 입덧 때문에 못먹고 중기에는 임당(임신성 당뇨) 걱정에 못먹고 후기에는 애 커질까봐 못먹고, 이게 뭐여. 거기다 체중이 많이 늘면 병원에서 어찌나 잔소리를 하는지 모른다. 나는 임신하고 지금까지 딱 8키로가 쪘는데, 이게 거의 애기+양수 무게라고 한다. 제주에서 육지로 이사할 때가 6개월에서 7개월 넘어가는 때라 6주만에 병원에 갔는데 그때 가장 많이 몸무게가 불어있었다. 3키로. 근데도 잔소리했다. 안찌다 찌는 것도 잔소리를 한다...ㅠ... (물론 우리 둥둥이가 좀 덩치가 좋아서 걱정되시는 마음이라는 건 알지만 흑...)


배가 크면 또 크다고 걱정 작으면 작다고 걱정. 에이.



아무튼 후기 입덧을 맞아 임신 초기의 입덧이 궁금해 일기를 뒤져보았다.


임신 7주차

요즘은 집중력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안그래도 후진 나의 집중력이...


7주차 접어들면서는 입덧이 심해졌다. 아침에는 공복에 강하게 속이 쓰리고 저녁이나 늦은 오후에는 미식거리고 울렁거린다. 이만 닦아도 토할 것 같다...읍


먹는것도 계속 예민하다. 처음엔 그렇게 고기가 맛있더니 지금은 고기가 생각도 안난다. 비빔국수 막국수 메밀국수 떡볶이 시원한 김치국 같은 것이 제일 맛있다. 역시 속이 숙취 상태라 그런가보다.


임신 11주차

10주차 들어 속쓰림이 심했었다. 입덧보다 속이 너무 쓰려서 괴로웠는데 약을 구해놓고 나니 속쓰림이 가라앉...뭐야 이게.


11주 들어서는 입맛이 더 없어졌다. 뭘 먹어도 심드렁하고 아침에는 밥에 김을 꼭 싸먹어야 하고 샐러드가 그렇게 맛있었는데 어제는 샐러드도 물리는 느낌이 들었다. 라면도 맛있었는데 오늘은 맛이 별로 없었다.


저녁을 먹기는 해야할 것 같아서 냉모밀을 시켰는데 국물이 시원하지 않고 느끼해서 와사비 다 넣어서 겨우 다 먹었다. 고로케는 분량만큼 먹지 못했다. 이럴때 남은 음식은 남편이 다... 미안해 남편.


임신 13주차

고기를 먹었다. 얼마만에 고기가 먹고 싶었던 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목살, 삼겹살인데 어찌나 맛있는지... 그냥 소금 후추 뿌려서 구웠는데 너무 고소하고 맛있었다. 남편은 오랜만에 고기를 먹자하니까 신이나서 정육점에 다녀왔다.



여러분 목살은 에어프라이어에 구우세요, 꼭

"자기야 나 고기 먹고 싶어"라는 말에 지갑을 들고 현관문을 뛰쳐나가던 남편의 등짝이 생각난다. 3개월 동안 먹고 싶은 고기도 못먹고 꾹 참으며 매일같이 좋아하지도 않는 매운 비빔국수와 떡볶이로 연명하다가 갑자기 마누라가 고기를 찾으니 얼마나 반가웠을까. 소고기 돼지고기 종류별로 사와서 신나게 구워주셨다. 나중에 들은건데 둘째, 셋째 경험이 있는 아빠들은 몰래 고기 먹고 온다고 한다. 근데 입덧하는 임산부는 거의 개님의 수준으로 후각이 발달하니...아마 모른척 넘어가준 게 아닐까.



초기 입덧할 때는 두통도 자주 와서 가끔씩 타이레놀을 먹었다. 철분부족이면 두통이 온다고 하는데 잠이 부족하거나 뭔가 무리했을 때, 영양제를 빼먹은 다음날 머리가 아팠다. 다행히 중기에 들어선 이후 타이레놀을 먹을 일은 없었다. 


토덧이 없는대신 양치덧을 했다. 칫솔질을 하다 우웩우웩 헛구역질을 했고, 초기에는 잇몸도 약해져있어서 양치를 하면 피가 섞인 분홍색 거품을 토했다. 이런 임산부들이 꽤 있는지 양치덧을 좀 덜하게 하는 치약도 팔고 했다. 나는 그냥 순한맛이 나는 치약으로 바꿨는데...별로 소용은 없었다. 흑.


세상 온갖 술이란 술을 다 들이부은 다음날 같은 울렁거림이 아침부터 잠들때까지 계속되는 그 시간들이 지금은 어렴풋하다. 물론 속이 쓰리기 때문에 아련하게 기억나는 지점이 있지만, 밥짓는 냄새 때문에 속이 뒤집어지고 밥을 억지로 먹다가 숟가락을 내려놓지는 않으니까. 


주변 임신 동지들의 입덧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나 포함 6명의 임산부가 8-9-10-11월 출산 예정)


디자이너인 K는 곧 둘째를 출산하는데, 입덧이 무서워 둘째 가지기가 두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첫째와 둘째 입덧이 달랐지만 고통스러웠다는 건 똑같았다고. 하루종일 토하다 토하다 더 나올 것이 없었단다. 토덧이 정말 많긴하다. 뭘 먹어도 게워내야 하는 고통이라니.


교사인 C는 입덧 기간 동안 수업이 힘들었단다. 특히 남학생들의 체취로 가득찬 교실 문을 열었을 때의 그 당혹감이란...안그래도 교사들은 서 있는 시간이 길어서 임신 기간 내내 힘들다고 하는데, 입덧할 때는 냄새에도 민감해서 수업시간이 괴로웠다고. 그리고 다섯살이 된 첫째 밥을 챙기느라 꼴도보기 싫은 부엌에 들락거릴 때도 힘들었다고 했다.


나도 두 달 정도는 부엌을 쳐다보기도 싫었다. 원래는 나보다 남편이 훨씬 냄새에 민감한데 (나는 비위가 좋은 편) 이 기간에는 남편도 맡지 못하는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였다. 싱크대 물때 냄새라던지 음식쓰레기 봉지에 묻은 물냄새 같은 것이 그렇게 싫었다. 맨밥 냄새가 싫고 대체적으로 음식냄새가 다 싫었다. 나의 입덧은 냄새와 두통이 8할 이었다.


아마 두어달 지나면 이 입덧도 끝날 것이다. 초기 입덧도 '언제 끝나나 ㅠㅠ' 싶었는데 결국은 지나갔다. 가끔 정보를 얻으러 맘카페에 가면 '입덧 언제 끝나나요'하며 괴로워하는 임산부들의 글이 보인다. 물론 대답도 제각각이지만 당장 괴로운 이 마음을 어딘가 호소하고 싶어서 글 올리는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는 것들이 있지만 (물론 아닌 사람도 있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괴로움을 내 몸에 안고 있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임신 초기에 입덧과 함께 내 몸에는 온갖 염증과 포진이 지나갔다. 턱 주변의 화농성 여드름부터 외음부에 뾰루지가 나고, 손가락에는 한포진이 나고, 편도선이 붓고 목감기에 걸렸다. 잇몸이 부어 양치만 하면 피가 났고 이틀에 한 번씩 오른쪽 어깨에 통증과 편두통이 왔다. 자궁이 커지는 때에는 허리가 뒤틀렸고 눈이 갑자기 침침해져 모니터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적도 있다. 놀랍게도 내가 평소에 무리하거나 면역력이 떨어지면 아프거나 고질적으로 아파온 곳들이 임신과 동시에 모두 깨어났다. 그리고 더 놀랍게도 임신 중기를 맞으며 16~20주를 전후로 모두 사라졌다. (나에게 임신 5-7개월은 정말 꿀같은 시간이었다 ㅠㅠ)


이 작은 것이 나를 들었다 놨다 했다고?


그러니 지금 입덧과 세상 겪어보지 못했던 몸의 변화로 괴로운 임산부들이 계시다면, 지나는 가겠지만 지금의 고통은 당장의 괴로움이니 너무 참지 마시길. 여러분 잘못도 아니고 지금 참는다고 그게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까. 아플땐 아프다고 괴로울 땐 괴롭다고 해야 알아준다. 유난떤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소소하게 엿을 준비해보자. 무엇보다 주변에 임산부들이 있다면 꼭 공감하는 시간을 가지기를 권한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서, 당장 돌쟁이 육아에 허덕이는 친구들에게 임신의 힘듦을 이야기하면 공감 받지 못할 수도 있다.(다 그렇진 않음) 애기가 큰지 한참된 엄마들은 '다 지나간다'며 더 공감 받기 힘든 경우도 겪었다.(역시나 다 그렇진 않음) 


내가 이것 때문에 괴로우니 위로를 해달라는 말을 하기 정말 힘든게 임산부들이다. 특히 초기에는 밖으로 티가 거의 안나기 때문에 '내가 임산부요!'하기도 되게 뭣한 상황. 초기에는 입덧과 유산의 두려움이 혼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유난인가' '나만 힘든가'하는 생각에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분들이 정말 많다. 그러니 공감할 수 있는 장이 더 넓어졌으면 좋겠다. 


솔직히 지나고보니 나도 수월하게 임신 기간을 겪고 있는데, 그렇다고 힘든게 아닌건 아니다. 병원만 가면 입원해야 하고, 열달 내내 눕눕하는 분들보다 수월하다는 것이지, 임신상태가 아닌 몸과 비교했을땐 힘든게 당연한 것이다. 정말 한명 한명 다 손잡고 공감해주고 싶다. '힘들지요? 우리 같이 힘내요'라고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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