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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굴양 Dec 07. 2019

임신종료 : 아기가 세상에 나오던 날

너굴양의 임신일기

둥둥이가 태어났다.


진통이 온 날은 일요일이었다. 원래대로면 교회에 가는 날이지만 전날부터 가진통이 와서 집에서 쉬면서 지켜보기로 했다. 불규칙한 가진통이 며칠째 계속 되고 있었고, 토요일에 병원까지 가서 확인해봤지만 자궁문은 열려있지 않았다. 일요일은 친정 엄마가 쉬는 날이라 집에 오셔서 시간을 보냈다. 가진통을 진진통으로 빨리 돌리자는 생각에 한 시간 넘게 동네 산책을 했다. 엄마와 핑크뮬리 밭에서 사진을 찍고 언제 다시 먹을지 모르는 매운 떡볶이를 저녁으로 먹었다. 그렇게 걸으며 집에 오는 길, 진통 간격이 짧아지고 있었다.


거 우리애는 언제 나오는거요

진진통은 허리와 엉덩이, 허벅지까지 쭉 내려오는 느낌이 든다고 했는데, 엄마가 집에 가시고 조금 있으니 허리가 뒤틀리며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병원에 전화를 해놓고 싸놓은 출산가방을 마지막으로 정비했다. 며칠 머리를 못감을테니 머리도 박박 감았다. (참 잘한 일이었다)


일요일 늦은 저녁시간, 분만실에는 당직의사와 간호사들이 있었고 가족분만실로 안내를 받았다. 입원을 결정하기 전에 태동검사를 하자고 했다. 그런데 검사를 하니 진통이 불규칙적이고 강도도 세지 않다고 했다. 찡하고 울리던 내 허리의 감각은 뭐였지?


입원해서 유도를 할지 집에 다시 가서 기다릴지 결정해야했다. 나는 며칠째 지속되는 가진통 때문에 심신이 지쳐있었고, 빨리 둥둥이를 만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입원하여 진진통이 걸리기를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수액줄을 달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 왼팔에 꽂으려고 했지만 핏줄이 터져(내 속도 터져) 오른팔에 꽂아야했다. 입원기간 내내 오른팔에 바늘이 꽂혀있어 무척 불편했다.


엄마랑 출산 전 마지막 산책


기왕 수액줄을 꽂은김에 유도제를 가장 적은양으로 써보자는 의견을 받아들였는데, 유도제가 들어가자마자 진진통이 걸렸다. (유도제는 자궁을 수축 시키는 호르몬인 옥시토신과 똑같이 만들어진 것)


진진통이 걸린 이후 나는 그날 내내 착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입원 당일 저녁까지는 가진통이었던 것이다. 진짜 진통은 '오면 안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오니까, 느껴졌다. 이거 진짜네.


그리고 또 한가지 내가 몰랐던 것이 있었다. 허리진통. 아, 허리진통이라는 것이 있었다.


분명히 태동검사에서는 수축 수치가 크지 않았다. (태동검사로 배에 청진기 비슷한 걸 붙이고 태아의 심박과 자궁수축 수치를 체크한다) 그런데 진통이 오기 시작하니 허리에 전기가 오는 것 같았다. 그 전 주에 태동검사를 했을 때의 수축 수치와 비슷했다. 그때는 배가 그냥 뭉치는 느낌이었지 허리가 아프지 않았고, 길지만 규칙적이었기 때문에 며칠 사이에 진진통이 걸릴 것으로 (원장님이) 예측했었다.


아무튼 수치와는 상관없이 7분 남짓의 간격으로 진통이 시작되었고, 허리 통증은 점점 더 심해졌다. 내진을 했지만 자궁문이 열리지 않았고 나는 고통속으로 빠져들었다. 아 지금 생각해도...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다.


출산 전 최후의 만찬...떡볶이... 모유수유하느라 아직도 못먹고 있다...(츄릅)


자정을 넘기며 진통은 5분 간격으로 정확해졌다. 30초에서 1분 동안 나는 허리가 뒤틀리며 울음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고통을 견뎠고, 4분 동안은 멀쩡했다. 진통이 오는 순간, 마치 허리 뒤에 다이얼이 붙어있어 미니멈에서 맥시멈으로 다이얼을 누가 돌리는 것처럼 허리를 찌르는 고통이 온 몸으로 퍼졌다. 허리진통은 디스크가 있었거나 허리가 약한 산모들이 많이 겪는다고 한다. 나는 20대 초반에 디스크로 고생했었고 지금은 오래 앉아있는 직업 때문에 허리가 좋지 않았으니 예견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걸...출산 하고 알게 되었다. (ㅜㅜ)


분만실의 당직 간호사들은 몇 시간 간격으로 바뀌었다. 진통이 시작된 후 태동검사는 지옥이었다. 나는 누워있으면 진통이 더 심했는데 태동검사기를 붙이면 꼼짝없이 30분을 누워있어야했다. 역시나 수축 수치는 올라가지 않은 상태에서 규칙적으로 진통만 오기를 몇 시간이 흘렀다. 너무 아프니까 눈물도 안나왔다.


신랑은 진통 내내 옆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대신 아프고 싶지만 자궁이 없기에(...) 고통에 신음하는 내 옆에서 허리를 만져주고 서서 진통하면 안아주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옆에서 허리라도 쓸어주고 할 수 있다고 부드럽게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큰 위안이 되었다.


앉아서 잠든 신랑 ㅜㅜ


지옥같은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왔지만 자궁문은 코딱지만큼 열려있었다. 아침 8시쯤 되니 나는 정신이 반쯤 나가있었다. (심지어 밤새 화장실도 세번이나 갔다. 끙아하려고 변기에 앉아있다가 진통이 오면 기분이 어떤지 아시나요...)


허리진통을 12시간 정도 겪고 나니 차라리 수술을 하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한 담당 의사가 분만실로 왔고, 무통주사를 맞으며 촉진제를 써보자고 나를 설득했다. 제왕절개 수술은 개복수술이라 회복이 느리다. 자연분만은 진통과 분만 과정이 고통스럽지만 회복이 빠르다. 하지만 나오는 건 순전히 아기가 결정하는 것. 당장 이 고통을 멈추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정신줄을 놓지 않은 신랑이 나를 설득했고, 일단 자연분만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이후의 과정은 순조로웠다. 무통주사는 나에게 아주 잘 먹혀들었고, 촉진제를 쓰며 두 시간 만에 자궁경부가 5cm 열렸다. 양수가 터졌고 이제 10cm까지 열리면 무통을 끄고 분만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무통전 촉진제 수치는 14, 무통이후 96까지 올렸는데 느낌이 없었다


1시간을 지켜봐도 진행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아기의 심박수가 높아졌다. 아기 머리가 내려오는 느낌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기가 다시 명치쪽으로 올라오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아기가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담당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아기 심박이 높은 상태라 원장님을 호출해야겠다고 했다. 아기의 상태는 나와봐야 알 수 있었다. 수술을 할 것인지 좀 더 기다리며 진행을 시켜볼 것인지를 결정해야했다. 응급은 아니지만 아주 희망적이지도 않은 상태. 긴급 가족회의(나와 신랑)가 벌어졌다.


나는 막연하게 (그리고 멍청하게도) 당연히 자연분만-모유수유라는 테크를 탈 줄 알았다. 자연분만이 어려운 상황도 있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경부가 열리고 있음에도 자꾸 위로 도망가는 아기의 상태가 문제였다.


가족회의는 길지 않았다. 아기의 상태가 최선이고 1-2시간 기다려 자연분만에 도전한다고 해도 내가 느끼는 진통의 강도가 너무 심했고 아기 머리가 커서(...) 난산이 예상됐다. 수술을 결정하고 신랑이 양가에 전화를 드렸다.


무통주사빨(?)이 아주 잘 받아 하반신마취를 따로 하지 않고 무통주사를 맞으며 수술하기로 했다. 마취보다 회복도 빠르고 수술한 날부터 움직일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었다. (하반신마취하면 수술 당일에는 머리를 들 수 없다) 수술동의서를 작성하고 그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수술실에 들어가 침대에 겨우 누웠다. (휠체어 타고 갔는데 침대는 걸어서 올라가라고...왜죠) 팔다리를 고정하고 수술실 조명을 바라보니 마음이 착잡했다. 그래도 곧 둥둥이를 만난다는 생각에 약간 들뜨기도 했다. 무통주사만 맞고 있어서 수술실의 모든 소리가 들렸다. 친절하게도 마취과 선생님은 나를 재워주셨다(;;) 잠시 후(라고 느꼈지만 20분이 흐름) 누가 나를 흔들어 깨웠고, 고개를 돌려보니 둥둥이가 초록색 천에 싸인채 누워있었다.


남편이 황급히 찍은 둥둥이


‘안녕?’ 한 마디를 하고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눈물이 약간 났던 것 같다. 잠시 후 내장을 집어넣는 듯한 감각이 돌아오면서 ‘아아, 아파요!’ 하고 다시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의료진의 말소리가 들렸고 이어서 ‘너굴양씨, 이제 다 끝났어요, 고생하셨어요’하는 소리와 함께 수술침대에서 스트레쳐로 옮겨졌다.


진통을 했던 분만실에 돌아왔고 그 사이 친정엄마가 병원에 오셨다. 둥둥이는 신생아실에서 필요한 처치를 받고 나에게 돌아왔다. 오자마자 '으앙~~'하며 우는데 오기 전에 접종을 하고 왔다고 한다. 마치 나에게 '엄마 나 주사 맞아서 아팠어요!'하고 이르는 것 같았다. (이렇게 애미는 의미부여를 하기 시작하고...)


신랑은 둥둥이를 보자마자 눈물이 났다고 하는데, 나는 비몽사몽이라 정신이 없었고, 다음날 둥둥이를 제대로 안아본 다음에서야 눈물이 흘렀다. 주책맞게 엉엉. 


임신은 둥둥이의 탄생과 함께 이렇게 종료 되었다.


시간은 흘러흘러 둥둥이가 벌써 55일이 되었고, 무럭무럭 자라면서 엄마의 어깨를 작살내고 있다. 아기를 안으면 손목도 손목이지만 어깨가 나간다. 여기에 모유수유까지 하려니 진짜...흐미 내 어깨 돌리도.


애미야 밥 좀 다오


산모일기를 쓰던 에버노트 스택에는 이제 육아일기가 추가되었다.

너굴양 임신일기는 다음편인 <임신기간 읽어서 도움이 되었던 책들>을 마지막으로 마칠까한다.


그럼 다음편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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