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학번이라 죄송합니다

22화. 라면 먹고 갈래요, 캐리 브래드쇼가 서울에 왔다면

by 유혜성

22화 라면 먹고 갈래요, 캐리 브래드쇼가 서울에 왔다면


섹스 앤 더 시티, 봄날은 간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던 밤


1. 캐리 브래드쇼가 우리에게 도착하던 해


“이모, 그때 얘기 더 해봐.”


토요일 밤, 우리 집 거실.

조카가 소파에 다리를 올려놓고 넷플릭스를 넘기다 말고,

손을 멈췄다.


“그 연예인 오빠랑 파스타 먹고 영화 보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헤어졌다는 그 얘기.

그거 완전 섹스 앤 더 시티 에피소드 아니야?”


나는 씩 웃었다.


“야, 그때는 섹스 앤 더 시티가 아니라, 거의 섹스 인 더 시티였지.

우린 뉴욕은 한 번도 못 가봤는데, 마음은 맨해튼에 살고 있었거든.”


1998년, HBO에서 〈섹스 앤 더시티〉가 처음 방송되던 해.

뉴욕의 30대 싱글 여자들이 구두를 신고 밤거리를 질주하며

섹스와 연애, 우정과 커리어를 농담처럼, 상담처럼 털어놓던 드라마.


조금 시간이 지나

한국에서도 DVD와 케이블 채널을 통해 소개됐다.


90년대 학번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접어들던 시절이다.


사회생활을 막 시작했거나,

이제 막 ‘어른의 얼굴’을 연습하던 여자들.


패션지와 카페를 넘나들고,

강남과 대학로 사이를 오가던 그 세대.


우리는 뉴욕에 가본 적도 없으면서

맨해튼 브라운스톤 계단에 앉아 담배 피우는 캐리 브래드쇼처럼

회사 앞 화단에 걸터앉아 캔커피를 마셨다.

조카가 물었다.


“근데 왜 그렇게들 좋아했어? 그냥 연애 얘기잖아.”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땐 말이야,

‘좋은 남자 만나서 빨리 결혼하는 게 성공’이라는 말이

아직 너무 쉽게 오가던 시기였거든.


부모 세대의 문장이

아직 우리 일상에 그대로 남아 있었고,

연애는 늘 결혼을 향해 정리돼야 할 감정처럼 취급됐어.”


나는 말을 이었다.


“근데 섹스 앤 더 시티는 달랐어.

결혼을 목표로 한 연애가 아니라,

연애 그 자체를 하나의 삶으로 보여줬거든.


‘결혼을 위해 연애하는 여자’가 아니라

‘사는 동안, 연애도 마음껏 해보고 싶은 여자들’의 이야기였지.”


섹스 앤 더 시티는 드라마를 넘어

우리가 미처 말하지 못했던 욕망과 연애를

대신 살아 보여주던 하나의 세계였다.


뉴욕이라는 도시,

섹스라는 단어를 제목에 올린 당당함,

사랑과 욕망을 숨기지 않는 여자들의 대화.


한국에서라면

아직 낮은 목소리로만 말해지던 것들이

그 드라마 안에서는 너무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그래서 우리는,

묘하게 속이 시원했다.


드라마 속 네 명의 여자들.

캐리, 사만다, 미란다, 샬럿.


시나리오 작가 친구는 늘 말했다.


“야, 나는 캐리랑 사만다를 섞어놓은 버전이야.

글 쓰고, 사랑하고, 망하는 데 주저함이 없거든.”


나는 그때마다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나는…

미란다 40, 샬럿 30, 캐리 30쯤?

현실 계산도 하고, 약간 보수적이지만

그래도 끝내는 사랑을 믿는 쪽.”


우리는 회식 자리에서조차

“넌 누구 타입이야?”를 MBTI 대신

“넌 샬럿이야, 나는 사만다야”로 확인하던 세대였다.


2. 킬힐과 신발장 - 욕망은 굽 높이로 측정되던 시절


그 시절, 우리는 모두 구두를 사랑했다.


섹스 앤 더 시티가 뉴욕 여자들을 통해 보여준 건

연애의 대사들뿐만이 아니었다.

마놀로 블라닉, 킬힐, 디올 새들백, 펜디 바게트 같은 단어들이

마치 영어 단어처럼 입에 붙던 시대였다.


캐리는 월세를 못 내도 구두를 샀다.

그건 드라마였고, 뉴욕이었고, 캐리 브래드쇼였으니까 가능한 선택이었다.


우리는 거기까지는 가지 못했다.

월세를 밀리거나,

당장 살아야 할 생활비를 포기할 만큼의 용기는 없었다.


하지만 월급날만 되면

회사 근처 백화점 슈즈 매장을 한 바퀴 도는 정도의 사치는

늘 허락했다.


그건 과소비라기보다는

“나도 이 도시에서 꽤 괜찮게 살고 있다”는

작은 확인 같은 것이었다.


그 시절의 구두는

발을 보호하는 물건이라기보다

지금의 나를 조금 더 크게 느끼게 해주는 장치였고,


아직 확실하지 않은 미래 대신,

지금 당장 손에 쥘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욕망 같은 것이었다.


연애가 마음대로 안 풀릴 때도,

회사 일이 버거울 때도,

구두 상자 하나 열어보면

그날 하루쯤은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나리오 작가 친구는 늘 말했다.


“구두는 그냥 신발이 아니야.

자기 인생에 대한 태도야.

나는 아직도 킬힐을 신고 뛰어다닐 수 있다고!”


그녀의 집 신발장은 거의 서점이었다.

굽이 높은 구두들이 책처럼 세워져 있었고,

색깔과 굽 높이, 브랜드별로 정리된 그 풍경을

나는 ‘하이힐 도서관’이라고 불렀다.


조카가 어느 날

우리 집에 놀러 와서

신발장을 보며 외쳤다.


“이모, 이게 다 이모 신발이야?

책장인 줄 알았어… 왜 이렇게 많아?”


그때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이게 다 이모의 발자국이자, 실패한 사랑의 역사야. “


지금은

무지외반증과 발목 통증의 흑역사들이

필라테스 기구 위에서 겨우겨우 교정되고 있지만,


그래도 그 ‘킬힐의 시대’를 통과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욕망이 굽 높이로 측정되던 시절.

우리는 자기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구두 상자 위에 마음을 올려두곤 했다.


3. 영화사와 오피스텔 감옥 – ‘한국판 캐리’의 탈주 전화


조카가 물었다.


“이모, 지난 화에 나온 그 삭발 친구.

포켓볼 내기 지고 진짜로 머리 밀었다는 그 언니 있잖아.

그 언니도 섹스 앤 더 시티 엄청 좋아했을 것 같아.”


“좋아했지. 거의 바이블이었어.”


그녀는 영화사와 선계약을 맺고

거의 ‘감옥 같은 오피스텔’에 들어가

시나리오를 쓰던 사람이었다.


계약금은 먼저 받았다.

그리고 그 대가로 돌아온 건

강남의 작은 오피스텔 한 칸과,


‘작품 완성 전까지 외출은 가급적 자제’라는

말은 부드럽지만,

의미는 꽤 단단한 조건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글 쓰는 사람 전용 격리 시설,

조금 낭만적으로 말하면

창작자를 위한 보호구역 같은 곳.


하지만 그녀는

원래 그런 데 오래 못 갇히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밤,

아주 아무렇지 않게 전화가 왔다.


“야, 나 오늘 잠깐만 사람 구경 좀 해야겠다.

너 어디야?

배우들이랑 약속 있는데,

너도 끼워줄까?”


그렇게 시작된 밤들이 있었다.


글을 쓰다 말고 탈출한 작가,

세상 구경이 고픈 사람들,

연예인과 예비 연예인과

아직 아무것도 아니었던 사람들이

뒤섞여 있던 밤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엔 꼭 시나리오 작가가 아니어도

회사에 다니는 여자들이라도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 인생에서 한 번쯤은

‘탈주 전화’를 걸고 살았던 것 같다.

4. 강남 라이브바, 신인 래퍼, 그리고 ‘우리의 연예인들’


그날 밤도 그랬다.


강남 어딘가,

개그맨이 겸업으로 운영하던 라이브바 겸 술집.

홀에서는 손님들이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고,

각 방마다 작은 무대와 소파가 놓여 있는,

노래방과 바의 경계쯤 되는 공간이었다.


그날 자리를 만든 사람은

이미 계약을 맺은 대표가 아니었다.


그 시나리오 작가를

조금 더 가까이서 보고 싶어 하던 사람,

아직 도장을 찍기 전,

“이 사람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를

직접 확인해보고 싶어 하던 단계의 대표였다.


그래서 그는

굳이 회의실 대신 밤을 택했고,

명함 대신 사람을 보여주려 했다.


“오늘 신인 뮤지컬 배우도 오고,

영화 쪽 친구들도 잠깐 들를 거예요.

편하게 얘기만 나눠요.

작가님한테도 도움 될 거고요.”


그 말은

아직 계약은 아니지만,

이미 판은 한 번 깔아보겠다는 뜻이었다.


시나리오 작가 친구가

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속삭였다.


“야, 캐리.

오늘은 뉴욕 말고 강남이다.

섹스 앤 더 시티 말고,

섹스 앤 더 강남 찍는 날이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이미 방 안에는 몇 사람이 앉아 있었다.


드라마 단역으로 얼굴을 조금씩 알리던 남자 배우,

뮤지컬 무대에서 조연으로 서던 배우,

그리고 그날 밤 라이브 무대에 설 신인 래퍼.


그때는 몰랐지만,

그 래퍼는 몇 년 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힙합 가수가 되어 있었다.


그날의 그는

테이블을 오가며 노래를 부르고,

가볍게 농담을 던지고,

한 손에는 마이크를,

다른 한 손에는 작은 봉투를 들고 있었다.


그 봉투는

돈이라기보다는 응원에 가까웠다.

“잘해라”, “계속해라”라는 말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건네는 밤의 예의 같은 것.


시나리오 작가 친구가

내 귀에 다시 속삭였다.


“봐봐.

지금은 다들 신인이고,

무명이고, 아직은 알바지만…

이 중에 진짜 별 나올지도 몰라.”


우리는 그 밤에

아직 이름이 없던 사람들의 노래를 들었고,

아직 직함이 없던 사람들의 농담에 웃었다.


지금 TV에서,

스크린에서,

무대 위에서 그 얼굴들을 마주칠 때면

나는 가끔 그 방을 떠올린다.


조명이 그다지 화려하지 않았던

강남의 작은 방.

하지만 각자의 무명과 불안,

그리고 욕망이

조용히 엮여 있던 공간.


그날 밤 우리는

서로의 관객이었고,

아직 아무도 유명 연예인은 아니었지만

조금씩 서로의 연예인이 되어가던 사람들이었다.

5. 대학로, 음악감독 누나들, 그리고 그 사람의 첫 등장


그 뒤로 나는

자연스럽게 대학로 쪽 뮤지컬 기획사와도 연결되었다.


대표는 카리스마가 있었고,

주로 여자 음악감독들과 팀을 이루어

소극장 공연부터 시작해

점점 큰 라이선스 뮤지컬까지 키워가던 사람이었다.


연습이 없는 날이면

배우들이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그 사무실에 들렀다.


“누나, 저 이번에 캐스팅 붙었어요!”

“쌤, 이번 넘버 키를 조금만 바꿔볼 수 있을까요?”


그들은 음악감독을

자연스럽게 ‘누나’, ‘쌤’이라고 불렀고,

음악감독들은 그들을

편하게 ‘우리 애들’이라고 불렀다.


그 풍경 안에서 나는

또 하나의 욕망 센터를 보았다.


뉴욕 대신 대학로,

마놀로 블라닉 대신 연습화,

루프탑 바 대신 연습실 복도.


무대는 작았지만,

꿈의 크기는 결코 작지 않았다.


사랑을 말할 때도,

미래를 이야기할 때도

이곳 사람들은

늘 ‘다음 작품’을 기준으로 숨을 쉬고 있었다.


그 무리 안에

한 남자가 있었다.


검은 트레이닝복,

대충 빗어 넘긴 머리,

화려하다고 말하긴 어려운 차림인데도

이상하게 시선이 가는 사람.


무대 위에서는

눈빛이 또렷하게 번쩍였고,

무대를 내려오면

생각보다 말수가 적었다.


연습이 끝난 날,

그는 소파에 몸을 던지듯 앉아

음악감독에게 말했다.


“누나, 오늘 헥토르처럼 싸웠어요.

목을 끝까지 써버린 것 같아요.”


그때는 몰랐다.

나중에 우리가 함께 보게 될 영화 <트로이〉에서

에릭 바나가 연기한 인물이

트로이의 왕자이자 장군,

끝까지 도시를 지키다 쓰러지는

바로 그 헥토르라는 걸.

6. 트로이, 이상형, 그리고 “저도 나라를 구해야겠네요”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

우리는 자연스럽게 둘만 따로 만나게 되었다.


처음엔 인터뷰였다.

공연 리뷰를 쓰기 위한 취재,

그 정도의 명목.


공연이 끝난 밤,

분장실 근처에서 마주 앉아

막 식어가는 분장등 불빛 아래서

대본 이야기, 장면 이야기,

오늘 무대에서 조금 어긋났던 호흡 같은 것들을 나눴다.


그는 연기에 대해 말했고,

나는 관객의 숨과 장면의 리듬에 대해 말했다.


어느 순간부터

주변 사람들이 슬쩍슬쩍 우리를 보기 시작했다.


“두 분… 원래 아는 사이세요?”

“기자님이세요?”

“아니면… 여자친구?”


그 질문에

우리는 동시에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냥 인터뷰예요.”


그런데도 이상했다.

부정했는데,

사람들의 표정은

‘그래도 뭔가 있겠지’ 쪽에 더 가까웠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둘이 너무 오래 얘기하더라”,

“처음 보는 사이 같지가 않더라”는 말들이

분장실 뒤편에서 오갔다고 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아마 그건,

딱 썸 타는 사람들만 공유하는

묘한 집중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그가 먼저 말했다.


“오늘은 공연 얘기 말고,

영화 한 편 볼래요?

요즘 계속 무대에 있다 보니

다른 사람 연기하는 걸 보고 싶어서요.”


우리는 영화관에서 <트로이〉를 봤다.


나는 브래드 피트보다

에릭 바나가 연기한 헥토르에게 마음이 갔다.

도시를 지키는 장남,

전쟁터로 나가는 어른의 뒷모습,

사랑하는 이들을 등 뒤에 두고 떠나는 사람.


영화가 끝나고

극장 계단을 내려오며

나는 말했다.


“나, 저런 사람이 이상형인 것 같아요.”


그가 물었다.


“어떤 사람이요? 브래드 피트 말고요?”


“응. 헥토르.

나라를 지키는 사람.

도망가지 않고

자기가 맡은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사람.”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웃었다.


“그러면…

저도 얼른 나라를 구해야겠네요.”


말투는 농담이었는데,

눈빛은 이상하게 진지했다.


나는 괜히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아, 이 사람.

생각보다 위험하다.’


그 뒤로 우리는

조금 더 자주 연락을 주고받았다.


공연이 끝난 밤,

커튼콜이 막 내린 뒤

객석이 비어 가는 그 시간에


“오늘 공연 어땠어요?”

“이 장면에서 호흡을 바꿔봤는데, 어땠어요?”


연애라는 단어는

끝내 한 번도 꺼내지 않았지만,

그 시간은 분명

썸의 언어로만 가능한 대화들이었다.

7. 일 마레 파스타와 엘리베이터 - 라면은 끓이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조금 망설이다가 말했다.


“요즘 연습 끝나면 밤에 배고파요.

시간 되면… 밥 한번 같이 먹을래요?”


그 말 앞에

괜히 ‘요즘’이 붙은 게

나는 조금 좋았다.


우리는 강남의 어느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이름은 일 마레였던 것 같다.

그 무렵, 영화 <시월애(Il Mare)〉의 여운을

이름으로 가져온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유행처럼 번지던 시절이었다.


노란 조명 아래

파스타와 와인이 놓이고,

탁자 위에는

서로의 긴 하루가 조용히 풀려났다.


나는 그날,

킬힐 대신

조금은 낮은 굽의 구두를 신고 갔다.

많이 뛰어다닌 발이

이제는 슬슬 신호를 보내던 때였으니까.


조카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잠깐만. 이모,

그래도 힐은 신었네?”


“그럼.

그땐 아직 우리 세대가

‘운동화에 원피스’라는 선택지를

배우기 전이었거든.

힐은 아직,

야망의 공식이었어.”


식사가 끝나갈 즈음

그가 말했다.


“영화 한 편 더 볼래요?”

잠깐의 망설임 뒤,

덧붙이듯 말했다.

“극장 말고… 그냥.”


그 ‘그냥’ 뒤에는

굳이 장소를 말하지 않아도 되는

공기가 있었다.


우리가 본 영화가

다시 <트로이〉였는지,

아니면 전혀 다른

로맨틱 코미디였는지는

이제 조금 흐릿하다.


선명한 건

줄거리도, 배우도 아니고


같은 소파에 앉아

화면보다

서로의 숨소리에 더 자주

집중하게 되던 순간들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영화는 끝나 있었고,

우리는 다시

밤길로 나와 있었다.


집 근처 오피스텔 앞에 도착했을 때.


그는 차에서 내려

자연스럽게

엘리베이터 앞까지

함께 걸어왔다.


“오늘, 정말 좋았어요.”

잠깐의 숨을 고르고

그가 덧붙였다.

“이상하게…

오래 알고 지낸 사람 만난 느낌이었어요.”


“저도요.”

나는 너무 빨리 대답하지 않으려고

조금 늦춰 말했다.

“원래부터 알던 사람 같은 기분이었어요.”


엘리베이터 문이

“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나는 안으로 한 발 들어섰고,

그는 문 밖에 남아 있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친 문장이 하나 있었다.


“라면 먹고 갈래요?”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이영애가 유지태에게 건네던

그 유명한 질문.


끓는 물 위에

조심스럽게 면을 떨어뜨리듯,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의 은유.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

그 사랑이 식어버렸을 때

남자가 울먹이며 내뱉던 말.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입술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나까지

그 문장을 가져올 필요는 없겠지.

영화는 영화고,

우리는 우리니까.’


문이 닫히기 직전,

나는 그를 다시 한번 바라봤다.


그의 눈빛에도

분명히

아쉬움이 딱 1초만큼 머물러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완전히 닫히는 순간,

내 머릿속에서

캐리 브래드쇼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I couldn’t help but wonder…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때,

내가 “라면 먹고 갈래요?”라고 물었다면,

우리의 이야기는 달라졌을까?


8. 라면 vs 넷플릭스 -세대마다 달라지는 초대의 문장


지금 시대의 조카에게

그 장면을 이야기해 줬을 때

그녀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이모.

그건 100% ‘라면 먹고 갈래요’ 각이었잖아.

왜 말을 안 한 거야?”


“그땐 말이야.

내가 내 인생의 봄날이 아직 충분히 남아 있다고 믿었거든.

굳이 ‘라면’을 끓이지 않아도

비슷한 날들이 또 올 거라고 생각했어.”


“지금도 오잖아, 이모.”


조카가 능글맞게 웃었다.


“우리 세대는 ‘라면 먹고 갈래요?’ 대신

넷플릭스 보고 갈래?’가 유행이었어.

근데, 뉘앙스는 똑같아.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은데, 이유가 필요해서’ 하는 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세대마다 문장은 바뀌어도

사실 다 같은 말이야.


‘나는 지금, 너랑 조금 더 있고 싶어.’”


90년대 학번에게

섹스 앤 더 시티는

그 말을 대신해 주는 드라마였다.


캐리가 미스터 빅에게

제때 말하지 못했던 진심들,

샬럿이 끝내 내려놓지 못하던 결혼 판타지,

사만다가 몸으로 먼저 뛰어들던 사랑,

미란다가 끝까지 이성으로 버티다

결국 사랑 쪽으로 기울던 밤들.


그 모든 장면들이

우리가 대신하지 못한 말들의 스크립트였다.


9. 우리는 서로의 연예인이었던 사람들


조카가 말했다.


“이모 얘기 들으니까

그 뮤지컬 배우 오빠, 약간 이모한테 감정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있었을지도.

나도 그랬을지도.


근데 그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어.”


“왜? 이루어졌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루어졌으면…

더 빨리 끝났을 수도 있지 않을까?


가끔은,

한 장면으로 남는 관계가

인생에선 더 오래 가.”


그 배우는 지금

TV와 스크린, 무대를 오가며

진짜 ‘국민 배우’가 되어 있다.


그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때,

카메라 앞에서 웃을 때,

때로는 예능에서 허당끼를 드러낼 때도


나는 여전히

그날의 파스타,

트로이,

그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던 순간을 함께 떠올린다.


그에게 나는


잠깐 인터뷰하러 왔다가

조금 오래 얘기하게 된 관객이었을 수도 있고,


한때 파스타를 같이 먹고

영화를 나란히 본 사람으로만 남았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그 밤만큼은

우리가 서로의 연예인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내 인생의 필름 한 컷에

조명을 올려준 사람이었고,


나는 그의 기억 속 어디쯤

“그날 파스타 먹던 누나”로

작게 빛나고 있을지 모른다.

10. 90년대 학번의 연애 철학 - 결혼이 아니라, 일단 사랑


조카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이모 세대는

그래도 결국 결혼이 목표였던 거 아니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꼭 그렇지도 않았어.


우리는 분명,

부모 세대보다 더 자본주의 속으로 깊이 들어간 세대였지.

좋은 직장, 좋은 연봉, 좋은 아파트.

그런 ‘스펙’ 같은 말에 둘러싸여 살았으니까.


하지만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조금 다른 욕심이 있었어.


결혼이 목적이 아니라,

일단 연애를 제대로 해보고 싶다.


섹스 앤 더시티가 그걸 대신 말해줬고,

<봄날은 간다>가 ‘사랑이 변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줬고,

<트로이>가 ‘그래도 누군가는 자기 자리를 지키고 싸운다’는 걸 보여줬지.”


우리는 그 사이 어디쯤에서

힐을 신고 야근하러 가다가도

밤에는 ‘캐리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세대였다.


지금은 필라테스 기구 위에서

발가락을 쫙 펴고

중심을 다시 찾느라 바쁘지만,


그래도 가끔,

구두가 책처럼 꽂혀 있는 신발장을 열어보면

그 시절의 여자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온다.


야근 끝나고도 립스틱을 다시 바르던 얼굴들,

연애에 실패해도 구두 상자를 끌어안고 울던 밤들,

연예인을 좋아하면서

‘우리가 서로의 연예인인 사랑’을 꿈꾸던 날들.


조카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이모 얘기 듣고 나니까

라면 먹고 갈래요? 도, 넷플릭스 보고 갈래? 도

좀 다르게 들린다.


그건 그냥,

“나, 지금 잠깐 살아 있고 싶어’

라는 말 같아.”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사랑은 결국,

서로의 살아 있음에 조명을 켜주는 일이니까.”


TMI BOX


섹스 앤 더시티, 봄날은 간다, 트로이, 그리고 일 마레


1) 섹스 앤 더시티 - 킬힐과 뉴욕, 90학번의 비밀 교과서

• 1998년 HBO에서 첫 방영된 드라마로, 뉴욕에 사는 30대 싱글 여성 넷(캐리, 사만다, 미란다, 샬럿)의 연애·섹스·우정·커리어를 솔직하게 그린 시리즈.

• 이름표 목걸이, 마놀로 블라닉 구두, 디자이너 가방 열풍을 일으키며 2000년대 여성 패션과 소비문화를 크게 바꾸었다.

• 한국에선 DVD와 케이블 재방송으로 소개되며, 특히 90년대 학번 여성 직장인들에게 “연애·우정·커리어” 삼각형을 다시 쓰게 만든 일종의 ‘생활 교과서’ 역할을 했다.


2) 킬힐 - 욕망의 굽 높이

• 섹스 앤 더시티의 캐리 브래드쇼는 스스로를 “구두에 중독된 사람”이라고 부를 정도로 하이힐을 사랑했고, 실제로 마놀로 블라닉 같은 하이엔드 구두 브랜드를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 2000년대 초 한국에서도 하이힐, 킬힐, 통굽 등이 ‘야망’과 ‘여성적 매력’의 상징처럼 소비되었다가, 시간이 흐르며 편안한 운동화·플랫슈즈 트렌드로 서서히 바뀌었다.


3) 봄날은 간다 - ‘라면 먹고 갈래요?”와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 허진호 감독의 2001년 영화로, 사운드 엔지니어(유지태)와 라디오 PD(이영애)의 사랑과 이별을 섬세하게 그린 멜로 영화.

• “라면 먹고 갈래요?”라는 대사는 한국 멜로 영화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유혹/초대의 문장 중 하나로 남았고, 빠르게 끓고 식는 라면처럼 사랑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대사로도 해석된다.

• 이별 후 남자가 내뱉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대사는, 사랑의 변화 앞에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서툰 마음을 대표하는 유행어가 되었다.


4) 트로이 - 헥토르와 ‘나라를 지키는 남자’

• 2004년 개봉한 전쟁 영화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바탕으로 트로이 전쟁을 스펙터클 하게 재해석한 작품.

• 에릭 바나가 연기한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는 도시와 가족을 위해 끝까지 싸우는 책임감 있는 인물로, 많은 관객들에게 ‘의리와 용기’의 상징으로 남았다.

• 2000년대 초반, 이 영화는 ‘멋있는 남자의 기준’을 바꾸어 놓은 작품으로도 회자되었고, “나라를 지키는 남자”라는 이상형 이미지에 은근한 영향을 미쳤다.


5) 일 마레 - 영화에서 레스토랑으로

• 2000년 한국 영화 〈시월애(Il Mare)〉는, 바닷가 집 ‘일 마레’를 배경으로 다른 시간대에 사는 남녀가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 제목 ‘Il Mare’는 이탈리아어로 ‘바다’를 뜻하는데, 한국에선 이 영화의 감성을 차용한 카페·레스토랑 이름들이 한동안 유행하기도 했다.

• 강남·홍대 일대에는 당시 ‘일 마레’ 혹은 비슷한 이름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생겨났고, 데이트 코스로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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