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끼의 철학: 보쌈과 족발 - 푸짐한 한 상의 인생 이야기
“족발이 좋아, 보쌈이 좋아?”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이렇게 답할 것이다. “둘 다 먹을 수 없을까요?” 하지만 굳이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족발을 선택한다.
쫀득한 위로, 족발의 묵직한 만족감
족발을 한입 베어 물 때 느껴지는 쫀득한 탄력감, 그 안에 가득 찬 콜라겐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릴 때, 내 몸이 먼저 반응한다. 지친 하루 끝에 한 점씩 음미할수록 피부는 물론 관절까지 촉촉해지는 기분, 마치 몸이 스스로 치유되는 듯한 묘한 만족감이 밀려온다.
그래서인지 족발을 먹을 때마다 단순한 포만감을 넘어, 몸을 위한 깊은 보상 같은 위로가 느껴진다. 오랜 세월 쌓인 인생의 피로가 천천히 풀어지는 느낌. 한 번 조용히 읽고, 마음속에 살며시 접어두는 문장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보쌈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보쌈의 부드러운 살코기와 함께 먹는 새우젓의 감칠맛, 푸짐한 쌈채소의 아삭한 식감이 주는 만족감은 또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야들야들한 살코기와 비계가 어우러진 삼겹보쌈의 조화로운 균형, 입안에서 부드럽게 풀어지는 그 깊은 맛을 사랑한다.
하지만 보쌈은 집에서 직접 정성껏 삶아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니까. 그래서 외식할 때만큼은, 집에서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족발의 쫀득한 유혹을 선택하게 된다.
필라테스를 하면서 건강한 식단을 찾는 사람들은 흔히 샐러드나 닭가슴살을 떠올리지만, 나는 때때로 보쌈과 족발 같은 푸짐한 한 상이야말로 가장 건강한 식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기를 삶다 보면 불필요한 기름기가 빠지고, 대신 고기 본연의 맛과 영양이 살아난다. 여기에 풍성한 채소와 곁들인다면, 한 끼 식사로서 완벽한 균형을 갖추게 된다.
어느 날, 운동을 마친 후 유독 배가 고팠던 날이 있었다. 그런 날은 간단한 식사로는 부족하다. 몸을 움직이며 쏟아낸 에너지를 든든하게 채워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마침 친구들과 약속이 있었고, 우리는 근처에서 유명하다는 족발집을 찾았다. 커다란 접시에 한가득 담긴 윤기 나는 족발, 그리고 그 옆에 함께 놓인 보쌈까지! 쌈에 싸서 한입 크게 넣으니, 입 안 가득 퍼지는 육즙과 감칠맛.
세상에, 이 순간만큼은 정말 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함께 웃고 떠드는 이 시간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순간 아닐까?
요즘 보쌈집들은 고기가 식지 않도록 찜기에 담아내는 곳이 많다. 부추가 깔려 있고, 그 위에 야들야들한 삶은 고기가 놓인다. 겨자 간장소스를 살짝 찍어 부추와 함께 한 입 가득 넣으면, 쌉싸름한 겨자와 부추의 신선한 향이 부드러운 고기와 만나 퍼진다.
보쌈은 쌈을 싸서 먹는 음식. 알배기 배추에 촉촉한 고기를 올리고 무말랭이를 곁들여 먹을 때, 그 조화로움이란!
배추의 아삭함, 고기의 고소함, 무말랭이의 달큼함이 입안에서 춤을 춘다. 건강과 맛, 포만감까지 한입에 담긴 음식이다.
장충동 족발 거리는 서울의 대표적인 맛집 거리 중 하나다. 처음 그곳에서 먹었던 왕족발은 쫀득하고 촉촉했다. 이후 다양한 족발집을 찾아다녔지만, 결국 내 입맛을 사로잡은 곳은 서울 시청역 근처 ‘만족오향족발‘이었다.
‘만족오향족발’은 그 맛과 가성비를 인정받아 미슐랭 가이드의 ‘빕 구르망(Bib Gourmand)’ 명단에 오르며 명성을 얻었다. 부드러운 족발과 마늘, 식초 소스의 조화는 단골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곳의 족발은 내게도 특별했다. 특히 마늘과 식초가 들어간 특제 소스와 양배추가 그랬다. 마늘이 맵지 않고 부드러워, 족발의 고소함을 살려줬다. 양배추의 신선함과 살짝 새콤한 소스가 기름진 족발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한 번 맛보고 나니, 단골이 될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족발을 포장해 와 집에서 든든하게 한 끼를 먹기도 하고, 손님이 올 때면 푸짐하게 차려 함께 나누기도 했다. 누구와 먹든, 그 한 상을 펼쳐놓으면 다들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표정을 지었다.
한때 화덕족발이 유행했다. 기름기를 쫙 빼고, 바삭한 껍질과 촉촉한 속살을 가진 화덕구이 족발. 매운 양념이 더해진 불족발도 등장했고,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내 입맛을 사로잡은 건 ‘만족오향스타일‘의 마늘과 식초 소스에 싸 먹는 족발이었다. 그 깔끔한 감칠맛이 잊히지 않는다.
요즘은 족발과 보쌈을 함께 먹을 수 있는 ‘족보세트(족발과 보쌈 세트)‘가 인기다. 굳이 하나를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 쫀득한 족발과 촉촉한 보쌈을 함께 맛볼 수 있으니, 그야말로 행복한 고민이다.
결국,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구와 밥을 먹든, 어떤 날에는 푸짐한 한상이 필요하다. 가족과 함께할 때, 소중한 사람을 대접할 때, 힘든 하루를 보상받고 싶을 때, 한 상 가득 차려진 음식을 보면 마음까지 든든해진다.
필라테스를 하는 사람으로서 건강한 식단을 고민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좋은 재료로 만든 든든한 한 끼, 그리고 그 음식을 누구와 어떻게 나누느냐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
보쌈과 족발처럼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진 것들이 함께 어우러질 때 더욱 완벽한 한 상이 차려지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그렇게 다채롭고 풍성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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