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끼의 철학:뜨거운 국물 속의 인생철학, 감자탕
감자탕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국물, 한 손에는 숟가락, 한 손에는 젓가락을 들고 뼈에 붙은 살점을 발라내는 사람들. 뜨거운 국물에 혀를 델까 후후 불어가며 한입 떠먹는 순간, 그 깊고 진한 맛이 온몸을 감싼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모여 있다. 감자탕은 혼자보다는 함께일 때 더 맛있고, 뜨겁고, 진하다.
나 역시 감자탕과의 첫 만남은 여럿이 둘러앉은 회식 자리에서였다. 선배들이 “한번 먹어봐, 이 맛을 알아야 해.”라며 권했지만, 솔직히 처음엔 썩 내키지 않았다. 뼈를 뜯어야 한다는 게 번거롭게 느껴졌고, ‘감자탕’이란 이름과 달리 감자가 별로 보이지 않는 것도 어색했다.
하지만 한 숟가락 국물을 떠먹고, 뼈에 붙은 살점을 야무지게 발라먹고, 들깻가루의 고소한 맛이 어우러진 걸쭉한 국물을 삼키는 순간, 이 음식이 단순한 탕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뜨거운 국물 한 모금이 지친 하루를 달래주고,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함께 녹아내리는 그런 음식이었다.
감자탕은 돼지 등뼈를 푹 고아 만든 한국의 대표적인 서민 음식이다. ‘감자’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사실 감자가 아니라 돼지 등뼈의 살을 의미하는 ‘감자(감질나게 붙어 있는 고기)’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물론 일부 지역에서는 감자를 넣기도 하지만,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푹 고아낸 등뼈와 깊고 진한 국물이다.
감자탕에 들어가는 돼지 등뼈는 생각보다 영양이 풍부하다. 오랜 시간 우려낸 국물에는 칼슘과 콜라겐이 풍부하고, 살코기에는 단백질이 가득하다. 특히 뼈 주변의 고기는 일반 살코기보다 더 깊은 풍미를 내며, 푹 익힌 배추와 우거지가 국물과 만나면서 소화에도 좋다. 들깨가루는 고소한 맛을 더할 뿐만 아니라,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해 혈액순환과 피부 건강에도 좋다.
필라테스를 하면서 건강한 식단을 고민하던 어느 날, 감자탕이 의외로 ‘건강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돼지 등뼈에서 우러나온 영양소, 푹 끓여진 채소의 섬유질, 고소한 들깨까지, 이게 바로 몸을 보충해 주는 한 그릇이 아닌가!
우리가 단순히 ‘다이어트 식단’이라고 하면 샐러드와 닭가슴살만 떠올리지만, 진짜 건강한 식사는 몸과 마음을 함께 채워주는 음식이다.
필라테스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근육 중 하나가 ‘다열근’이다. 등뼈를 따라 길게 자리 잡고 있는 이 근육은 우리 몸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감자탕을 먹을 때 우리가 붙잡고 있는 돼지 등뼈처럼, 다열근은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기둥 같은 존재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우리 인생에도 이렇게 중심을 잡아주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어떤 사람은 그것이 가족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은 자신의 철학일 수도 있다. 감자탕이 유행을 타지 않고 꾸준히 사랑받는 것처럼, 우리도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시대가 변해도 변치 않는 맛처럼, 필라테스를 하며 내 몸을 지키는 것처럼, 내 삶의 중심을 잡아줄 단단한 무언가를 우리는 찾아야 한다.
요즘 단골이던 감자탕집이 문을 닫았다. 오랫동안 한결같은 맛을 내던 그 집의 감자탕을 다시는 맛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쉽고도 허전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인생 감자탕’이라는 새로운 가게를 발견했다. 이름부터 뭔가 특별해 보였다. 그곳에서 마주한 감자탕 한 그릇. 여전히 뜨겁고, 진하고, 묵직했다. 국물 한 숟갈에 하루의 피로가 녹아내리고, 든든한 살코기 한 점이 내 몸을 채워준다. 이 한 그릇이 우리 삶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자탕은 그렇게 우리에게 위로를 준다. 혼자서도 좋고, 여럿이 먹으면 더 좋은 음식. 뚝배기에 담겨 나오든, 커다란 전골냄비에 팔팔 끓어오르든, 그 속에는 따뜻함이 있다.
마치 우리의 삶처럼, 때로는 끓어오르고, 때로는 은근히 우러나며 깊어지는 국물 같은 이야기들이 녹아 있다.
필라테스 강사로서 나는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지만, 때로는 따뜻한 음식 한 그릇이 그 어떤 운동보다 더 큰 위로가 된다는 걸 안다.
우리가 삶에서 지치고 힘들 때, 결국 찾아가게 되는 것은 이런 한 끼의 온기 아닐까. 감자탕 한 그릇을 앞에 두고 함께 나누는 이야기, 그리고 그 속에서 느끼는 작은 위로가 바로 ‘진짜 건강’ 아닐까 싶다.
뜨거운 국물을 한 숟갈 떠먹으며, 오늘도 나는 나를 지탱하는 무언가를 되새긴다. 그리고 다짐한다. 필라테스처럼, 감자탕처럼, 유행을 타지 않고 변함없이 한결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줄 한 끼의 철학을 잊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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