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쾌한 주용씨 Nov 12. 2023

잔잔한 인도 영화 <런치박스> 추천!

제 취향의 영화, 드라마 그리고 음악 이야기를 해보려고요.

일을 그만두고 3년 남짓, 출근하지 않는 여자로 살 때는 일주일에 3,4편을 볼 정도로 영화에 빠져 있었다. 23년 일하는 여자로 살면서 보지 못했던 내 취향의 영화를 찾아 보면서 웃고 울고 공감하고 감동했다. 재취업을 하는 바람에 영화를 보는 횟수는 줄었고 대신 집안일을 하면서 드라마를 보는 게 생활이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만 있으면 설거지하는 게 싫지 않고, 수북히 쌓인 빨래를 널고 개는 시간도 지루하지 않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함께 음악 듣는 걸 즐긴다. 주로 우리나라 가요를 듣는데 두 아들이 좋아하는 노래가 대부분 내 취향이다. 엄마의 감성을 닮은 아들들 덕분에 새롭게 알게 되는 음악도 많다. 내 취향의 영화, 드라마 그리고 음악이 없었다면 내 감성은 메말랐을 게 분명하다.


글쓰기에 게울러진 내가 못마땅해서 의무적으로라도 해보자 마음먹고 요일마다 브런치북 연재를 시작했다. 이번 주 화요일부터이니 어제까지 브런치북 5개를 만들었고 오늘이 여섯 번째 브런치북이다. 토요일에는 주말에 어울리게 여행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오늘은 일요일, 내가 좋아하면서 휴일에 어울리는 주제가 뭘까 생각하다가 취향저격 영화, 드라마 그리고 음악 이야기로 결정했다. 일요일마다 글을 써야하니 앞으로 부지런히 좋은 영화를 찾아보게 될 것 같다. 귀에 꽂히는 드라마 대사는 적어 놓기도 해야겠지. 걸으며 들을 만한 음악도 좀 골라놔야 할 것 같고... 글쓰기는 이렇게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첫 이야기를 뭘로 할까 하다가 잔잔한 인도 영화 이야기로 시작하기로 했다. 칸 국제영화제를 비롯해서 전세계 5개 국제영화제에서 9개 상을 수상한 영화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인도만의 독특한 문화가 참신했다. 가을의 끝자락에 잘 어울리는, 쓸쓸하고 애틋한 감성의 영화 <런치박스>(2014)다. 



매일 아침 인도 뭄바이에서는 5천여 명의 도시락 배달원이 아내가 만든 점심 도시락을 남편의 사무실에 배달한다. 아내가 매일 남편 점심 도시락까지 싸야 하다니 그 수고로움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여고 시절 볶은 김치가 들어간 도시락을 매일 두 개씩 싸줬던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는 힘들었겠지만 꾹꾹 눌러 담은 그 도시락 덕분에 나는 가난을 잊고 배가 불렀다. 엄마의 볶음 김치는 맛이 일품이라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최고였다. 햄이나 소시지 반찬과 자주 거래가 이뤄졌다. 엄마는 돈이 없어서 김치밖에 싸주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했지만 나는 각종 반찬을 골고루 섭취하며 뽀얗게 살이 올랐었다. 아무튼 나에게 도시락은 추억이고 낭만이다.



일라는 최근 들어 좀 멀어진 듯한 남편을 위해 정성스럽게 도시락을 준비해서 보낸다. 그런데 그 도시락이 잘못 전달되었다. 남편이 아니라 사잔에게 배달된 것이다. 사잔은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는 중년의 회사원이다. 가족 없이 혼자 살고 있어서 도시락은 매번 업체에 배달시켜 먹는 외로운 남자다. 나중에 일라는 도시락이 잘못 배달된 것을 알게 되지만 깨끗이 비운 도시락에 감동해서 감사의 편지를 보낸다. 그녀의 남편은 평소 그렇게 말끔히 먹지도 않았고 아내에게 고마움을 표현히기는커녕 냉랭하기만 했다. 그러니 일라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먹어줬다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을 수밖에... 어느 나라나 여자들은 참 작은 것에 감동한다. 그리고 남자들은 그 작은 것을 하지 못해 여자를 우울하게 만들고 말이다. 


사잔도 일라의 편지에 답장을 보내고 그렇게 두 사람은 도시락을 통해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된다. 일라의 편지는 사잔의 무료한 일상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 그리고 사잔의 편지는 남편의 무관심에 지쳐가던 일라의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여기서 또 글의 위력을 느낄 수 있다.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글로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읽고 상황을 짐작하고 진심을 알게 되니 말이다. 게다가 도시락이 더해지니 글과 음식의 조합이 얼마나 대단한 시너지를 발휘할지 짐작할 만하다. 사랑이 싹틀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이다. 



일라는 결국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고 그곳에서의 생활에 염증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행복지수가 높은 부탄에서의 새로운 생활을 꿈꾼다. 사잔도 일라와 함께라면 지금과는 다른 새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설렌다. 마침내 두 사람은 만나기로 했다. 사잔은 설레는 맘으로 일라를 만나러 가지만 너무 젊고 아름다운 일라에 비해  늙고 초라한 자신을 확인하며 그녀 앞에 나설 용기를 내지 못한다. 결국 사잔을 만나지 못한 일라는 사잔에게 빈 도시락을 보내고 사잔의 마지막 편지가 일라에게 전해진다. 



일라, 도시락을 받았는데 아무것도 없네요. 사실, 나도 그 식당에 갔어요. 당신에게 가서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당신을 보고만 있었죠. 당신은 아름다웠어요. 당신은 꿈꿀 수 있는 나이죠. 잠시나마 나도 꿈꿀 수 있었어요. 그럴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요. 



두 사람은 결국 영화가 끝날 때까지 만나지 못한다. 사잔이 용기를 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가도 어쩌면 그런 결말이 이 영화에 여운을 더해서 오래 기억하게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사잔의 결정에 결말이 좀 쓸쓸해졌지만 두 사람 마음을 모두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왠지 두 사람의 인연이 그대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만날 사람은 꼭 만난다고 하지 않던가. 그리움이 더해지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찾게 되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사잔과 일라는 평범한 우리를 닮았다. 외롭고 상처받고 그러다 작은 것에 위로받고 사랑을 품고 희망을 그리며 산다. 그래서인지 영화에 더 몰입이 되고 공감도 컸던 것 같다. 요즘처럼 쌀쌀해진 날씨에 애틋하고 잔잔한 감성으로 마음이 훈훈해지는 영화  <런치박스>를 추천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