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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Dec 10. 2023

분노 게이지 상승 주의! 영화 <서울의 봄>

두 눈 똑바로 뜨고 살아야지!

"아유, 얄미워. 진짜 둿통수 한 대 때려주고 싶네."

영화 <서울의 봄>을 보고 나오며 배우 황정민의 연기에 대해 했던 말이다. 어쩌면 그렇게 악역 연기를 얄밉도록 잘 해내는지 감탄스러우면서도 그런 사람이 우리나라에 실존했다는 것이 짜증나고 몸서리치게 싫었다. 도저히 말도 안되는 일이 버젓히 일어나는 걸 눈앞에서 보고 있자니 속에서 천불이 나고 화딱지가 나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넓지 않은 우리나라, 그것도 가까이 서울에서 일어난 일인데 어떻게 이렇게 까맣게 모를 수가 있었을까? 전두환, 노태우가 나란히 죄수복을 입고 나란히 법정에 섰을 때도 난 혀만 찼을 뿐 그 내막을 자세히 알려 하지 않았다. 이미 지난 일이니까, 당장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나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뉴스도 신문도 보지 않는다. 지금 당장 나 살기는 편한데 가끔 이래도 되나 싶을 때도 있다. 특히 <서울의 봄>처럼 우리나라 실제 근현대사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볼 때면 나의 무지와 무관심이 두려워진다.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그것도 내가 이 땅에 존재했을 때 벌어진 일이라 하기엔 너무 말이 안되는 것 같고 믿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있던 일이 없던 일이 될 수 없으니 이렇게 영화로라도 두 눈 똑바로 뜨고 봐야지 싶다. 어떤 사람은 쿠테타가 성공하는 장면을 보는 게 너무 힘들어서 영화가 끝나기도 전에 뛰쳐나왔다고도 했다. 그 사람의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뻔히 결말을 알면서도 정의가 이겼으면 좋겠다는 순진한 희망을 마지막까지 버리지 못했다. 결국 결말을 확인하고 분노 게이지 상승!



내가 가르치는 중1 학생들 중에도 영화 <서울의 봄>을 보고온 아이들이 꽤 된다. 오늘 아침에 확인해보니 관객수가 500만 명이 훌쩍 넘었다. 이번 주말이 지나면 600만 명을 넘게 될 듯하다. 실화라는 걸 제외하고 배우들의 연기만으로도 볼 만한 영화다. 평소 좋아하던 배우 황정민의 연기는 '역시!'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황정민은 항상 그 역할에 빙의된 것처럼 신들린 연기를 보여준다. <수리남>에서 봤던 황정민의 넉살과 뻔뻔스러움을 다시 보는 것 같아 반가웠다. 지나치게 잘 생긴 배우 정우성도 황정민의 상대 역할로 크게 뒤처지지 않았다.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멋있는 배우다. 정의 편에 서서 외모뿐만 아니라 생각도 잘 생긴 역할이었는데 마지막은 너무 안타까웠다. 정의 편에서 정우성의 멋짐을 응원했지만 얄미울 정도로 잘하는 황정민의 연기에 어쩔 수 없이 빠져들었다.  



영화 <서울의 봄>은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짧은 대사, 많지 않은 분량인데도 자신만의 연기를 뽐내는 배우들 덕분에 영화로서의 재미는 극대화된다. 잠시 실화를 잊고 배우들의 연기에 몰입했다. 2시간 짜리 웰메이드 영화가 완성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배우들이 자기 역할을 해내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주연 배우뿐만 아니라 조연 배우, 단역 배우까지 눈여겨 보게 된다. 그 많은 배우들이 최선을 다해 연기한 덕분에 영화에 완전히 빠져들 수 있었다. 오랜만에 잘 만든 우리나라 영화를 봐서 많이 오른 영화 관람료가 아깝지 않았다. 지난 주말에 김장 김치를 가지고 온 시동생 커플까지 함께 영화를 봤는데 김칫값 톡톡히 치른 것 같아 흐뭇했다. 충분히 볼 만한 영화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서울의 봄>을 봤으면 좋겠다. 나처럼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하나회 같은 몹쓸 조직의 존재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한 어른, 우리나라 근현대사와 정치에 관심이 없는 학생들까지도 이 영화를 보고 자극을 받았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정치적 흑역사를 똑바로 알고 다시는 이런 세상을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지금이라도 정치에 관심을 갖고 권력을 가진 이들의 행태를 비판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책과 마찬가지로 나를 흔들어놓는 영화가 좋다. 영화를 보기 전의 나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이 많아진다.

 


책임감을 느낀다. 두 아들의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논술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 대한민국의 어른으로서 어떤 마음을 품고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할지 생각한다. 어깨가 무겁다. 적어도 내가 하는 행동이 이 시대에 이 땅에 해가 되지 않기를, 작은 역할일지라도 보탬이 되기를, 나보다 어린 이들에게 길잡이 노릇을 하는 희미한 빛이라도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정말 두 눈 똑바로 뜨고 잘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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