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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Dec 03. 2023

많이 울진 않았다, 영화 <너와 나>

사랑은 애틋하고 이별은 아프다.

영화 <너와 나>는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에 대한 정보 없이 보러 갔지만 영화 포스터와 이미 본 사람들의 반응으로 짐작이 되었다. 영화는 세월호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는다. 참사가 일어난 당일이 아니라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가기 하루 전이 영화의 배경이다. 무심하거나 눈치 없는 사람들은 세월호를 떠올리지 않고 영화를 봤을 수도 있다. 풋풋한 두 여고생의 찐한 우정과 아픈 이별, 이런 주제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이 영화는 넷플릭스 드라마 <D.P>에 출현했던 조현철 배우가 감독으로 데뷔한 작품이다.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을 위로한다. 



세미와 하은이, 두 소녀로 꽉 찬 하루다. 서로를 향한 마음이 예쁘고 애틋하다. 친구로 인해 웃고, 친구때문에 울고, 친구의 말 한 마디에 상처받고, 친구가 털어놓은 진심에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보며 나의 학창 시절을 떠올렸다. 시골에서 국민학교 다닐 때는 그저 함께 뛰어놀며 즐거웠다. 중학교 때 가난해진 부모님을 따라 낯선 도시로 온 후로는 그저 하루하루 밥 먹고 사는 게 중요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까 두려워 누구에게도 마음을 활짝 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친구에 대해 이런 절절한 마음을 품어본 적이 없다. 지금은 여고 시절 친구 몇 명과 덤덤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어느 부분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눈물이 한 번 주르르 흘렀다. 이 영화를 보고 지인들은 오열을 했다고도 하고,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까지 눈물이 나서 혼났다고도 하고, 다음 날까지 마음이 먹먹했다고도 하는데 나는 그 정도로 젖어들진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을 해서 그랬는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좀 담담해진 건지, 아니면 너무 울 준비를 하고 간 탓인지 잘 모르겠다. 눈물을 닦으려고 양쪽 주머니 불룩하게 티슈를 준비했는데 딱 두장으로 양쪽 볼에 흐른 눈물을 찍어내기만 했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이라 쉽게 몰입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사랑하는 친구 한 명 갖지 못한, 내 빈약한 여고 시절 탓이다. 



사랑은 애틋하고 이별은 아프다. 아직 어린 소녀들이 감당하기에 뜻하지 않은 죽음은 너무 가혹하다. 올해 5월 진도 여행을 갔을 때 팽목항 세월호 기념관에 들렀었다. 희생자들의 사진이 걸려 있는데 교복을 입은 단원고 학생들 앞에서 고개를 들기가 어려웠다. 차가운 바닷속에 잠긴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꿈이 너무 애달파서 눈물이 났다. 희생된 아이들의 부모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렸다. 영화 <너와 나>를 보며 친구를 잃은 아이들도 있겠구나, 그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구나 했다. 200명 넘는 아이들이 희생되었으니 그 아이들의 친구들은 또 몇 명일까? 그 엄청난 아픔을 안고 그 아이들은 어떻게 자랐을까? 그들에게 이 영화는 위로가 되었을까?



예전에는 어리석게도 나에게는 예기치 않은 불행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일어나는 일이 내가 뭐라고 나만 비껴가겠는가. 철이 없었던 거다. 나이가 들어가니 알겠다. 세상 어떤 일도 사람을 가려 일어나진 않는다는 걸. 누구나 뜻하지 않은 고통을 겪을 수도 있고 누구든지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 내가 아니더라도 내 가족이 고통을 겪게 될 수도 있고, 아파하는 이의 곁에서 함께 울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미리 준비할 수도 없고 겁 먹고 떨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마음을 표현하며 살아야지. 


오늘 영화 리뷰는 무척이나 힘들었다. 타인의 고통에 온전히 스며들지 못하고 겉도는 것처럼 글에도 몰입하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상처보다 내일 만나러갈 큰언니의 아픔이 내겐 더 가깝다. 편치 않은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 좀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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