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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Nov 19. 2023

가을에 꼭 봐야할 영화 2편

영화 <만추>와 <시월애>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베란다 창으로 보이는 노오란 단풍 나무를 보며 지금은 아직 가을이라고, 잠깐 첫눈은 내렸지만 완전히 겨울은 아니라고, 이렇게 훌쩍 가을이 가버릴 리는 없다고 우기고 싶다. 영화도 드라마도 음악도 그리고 책도 잘 어울리는 계절 가을이다. 가을에 보면 좋은 영화 2편을 소개한다.


영화 <만추>


감옥에서 7년을 있다가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느라 3일 외출을 나온 여자 애나(탕웨이)와 돈을 받고 여자들에게 서비스를 해주며 살아가는 남자 훈(현빈)이 만났다. 우연히 만났지만 두 사람은 서로가 상처가 많은 사람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본 것 같다. 단 하루 함께 하지만 세상을 향해 굳게 닫혔던 이들의 마음이 서로를 향해 서서히 열린다. 이상하게도 하기 힘든 이야기는 잘 모르는 사람에게 털어놓게 된다.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니 섣부른 충고나 판단을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긴장을 풀게 되는 것 같다.



현빈처럼 잘 생기고 분위기 있는 남자가 눈을 마주치고 하오(좋네), 화이(안 좋네)하며 맞장구를 쳐주면 어떤 얘기라도 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영화 <만추> 현빈, 너무 매력적이다. 헤어 스타일, 옷차림, 두 손을 코트 주머니에 넣은 자세, 웃을 때마나 깊게 파이는 보조개, 우수에 찬 눈빛, 무심한 듯 내뱉는 말투 그리고 강렬한 키스까지 이 영화 훈의 캐릭터에 무척 잘 어울린다. 웃을 일이 없어 웃는 방법을 잊어버린 듯한 애나가 훈 때문에 웃는다. 딱딱하게 굳어버렸던 마음이 말랑해지고 찬 바람만 불던 가슴이 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탕웨이의 미소는 묘한 매력이 있다. <헤어질 결심>의 박해일과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현빈과 탕웨이는 정말 영화처럼 아름답다.



만남은 너무 짧고 기약 없는 이별이 기다리고 있지만 두 남녀의 마지막 키스는 뜨겁고 길었다.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간절함은 사람을 최고의 온도로 달군다. 남편의 따땃한 정과 미적지근한 일상에 젖어 있던 나도 덩달아 뜨거워졌다. 사랑 때문에 울고 웃고, 사랑에 목숨을 걸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젊은 날의 내가 잠시 다녀갔다. 추워지는 계절, 가슴이 후끈 달아오를 수 있는 영화 <만추>를 권한다.



영화 <시월애>



20여년 전, 2000년 9월에 개봉한 영화 <시월애>를 본다. 문득 오래된 멜로 영화를 꺼내 본 건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찬바람 탓이다. 영화 제목만 들었을 때는 가을 10월을 생각했는데 포스터에 있는 한자를 보니 시간을 초월한 사랑이라는 뜻이다. 1998년을 사는 남자와 2000년을 사는 여자의 이야기니 아주 적절한 제목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깊은 가을과도 잘 어울린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집이다.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집 주변 풍경이 그야말로 예술이다. 집에 대한 욕심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이런 집에서 홀로, 절대 고독이라는 걸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은 좀 서운해할지 모르지만 때로는 혼자 살면서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내가 무엇을 느끼고 생각할지 궁금해진다.



편지를 주고받는 일이 거의 없고, 길거리에 우체통은 사라지고, 누군가의 소식을 간절히 기다리는 일도 할 필요가 없어진 요즘… 20년 전의 이 영화가 아날로그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가을이 가기 전에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는 편지 한 장 쓰고 싶어졌다. 한자 한자 정성스럽게 꾹꾹 눌러쓴 편지 한 통 받으면 그 사람은 얼마나 마음이 따뜻해질까? 오늘은 오랜만에 편지지 세트를 사러 가야겠다.



영화 속 이정재처럼 미래에서 온 편지를 받고 그 사람과 2년 후 만나기로 약속한다면 그날을 위해 열심히 살 것 같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 앞에 멋진 모습으로 나타나고 싶을 테니까. 영화 속 전지현처럼 과거로부터 답장이 오고 그 사람을 통해 2년 전 일들을 바꿀 수 있다면… 현실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겠지? 5년 전 9월에 하늘나라로 떠난 아빠를 다시 살려낼 수도 없고, 1년 전 11월에 아빠 곁으로 훌쩍 떠나버린 엄마를 붙잡아 둘 수도 없고, 우리 두 아들 수능을 잘 보게 해서 재수생을 만들지 않을 수도 없을 테니 말이다.



영화 <시월애>를 보며 29살의 내가 떠오르고 세월의 무상함과 함께 쓸쓸해졌다. 그때는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에서 남편과 함께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었다. 잠이 부족하고 바쁜 신혼이었지만 두 분의 사랑을 흠뻑 받았었다. 돌아보면 엊그제 같은데 20여년이 지난 지금, 시부모님은 다 돌아가시고 그때는 없었던 두 아들이 성인이 되었다. 거짓말처럼 시간은 훌쩍 지나버렸고 난 중년이 되어 침침한 눈을 비비며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또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오래된 영화 한 편 보며 시간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젊은 날의 내가 떠올라 반가우려나? 아니면 지나간 세월이 야속해 더 쓸쓸해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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