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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Nov 27. 2023

정혜윤의 책, 메모해 둔 문장들

『삶을 바꾸는 책 읽기』&『앞으로 올 사랑』& 『아무튼 메모』

오늘 월요일은 브런치북 <쓰려고 읽는다>를 연재하는 날이다. 올해 노벨 문학상을 받은 욘 포세의 장편 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을 도서관에 예약까지 해서 읽은 터라 그 책에 대한 리뷰를 써야겠다 계획했는데 안되겠다. 어려움 없이 마지막 장을 덮었는데 내 문장 수집 노트가 텅 비어있다. 무엇을 써야할지 모르겠다. 문장 하나라도 건졌어야 하는데 그냥 읽기만 했다. 내게는 너무 낯선 노르웨이 작가가 그 나라 해안가 마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서를 담은 소설이어서인지 특별한 감흥이 일지 않았다. 어부 요한네스가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삶이 조금은 독특한 문체로 그려진다. 노후에 풍족한 연금이 나오는 나라라 부럽고, 자식에게 할아버지 또는 할머니의 이름을 그대로 쓰는 문화가 독특했다. 한 인간의 삶과 죽음이라는 보편적인 소재인지라 쉽게 읽혔지만 내 마음의 동요는 크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정혜윤의 『아무튼 메모』를 마저 다 읽고 그동안 읽었던 정혜윤의 책들에 대한 기록 노트를 다시 펼쳤다. 내 문장 노트에, 블로그에 외우지 못한 문장들이 넘쳐난다. 오늘 아침, 노벨 문학상 작가의 책보다 나를 흔드는 건 정혜윤의 책 세 권이다. 


책이 간절히 읽고 싶어지는 책 『삶을 바꾸는 책 읽기』
2018년 2월


정혜윤의 『삶을 바꾸는 책 읽기』는 두 아들과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하고 와서 하루종일 도서관에 앉아 읽었던 책이다. 책 제목이 좀 상투적이라  내용에 대한 큰 기대는 안 했었다. 그런데 왜 골랐냐고? 원래 그 날에 읽을 책을 고르는 일은 누군가에게 첫 눈에 반하는 것만큼이나 아주 감정적이고 직관적인 일이라 납득할 만한 이유는 없다. 나의 책읽기가 내  삶을 바꿔줄 거라는 확신과 응원이 필요했던 것 같다.


『삶을 바꾸는 책 읽기』을 읽고 난 후의 감상을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기대 이상이었다. 정혜윤이라는 작가의 표현 방식이나 문체가 내 취향이다. 지성과 감성이 적절히 혼합된 적당한 온도의 언어. 그래서 정혜윤이라는 작가를 검색해 봤다. 그녀의 다른 책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정혜윤 작가는 책의 가치를 이렇게 말한다.

책은 '어떻게 살아갈까?' 고민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대화 상대가 될 수 있습니다. 책은 자꾸 일어나라고 합니다. 깨어나라고 합니다. 그만 자라고 합니다. 다시 생각해보라고 합니다. 생각 못 한 게 있다고 알려 줍니다. 내가 보는 세상이 아주 작다고 말합니다. 내가 겪고 있는 일들을 다른 사람은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 혹은 어째서 헤쳐 나가지 못하는지 보여 줍니다.
책은 마치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스쿠루지 영감이 만난 세 유령처럼 굽니다. 책은 인간이 아닌데도 인간처럼 세상에 개입하고 싶어 합니다.


일을 그만두었을 당시부터 지금까지 나에게도 책이 이런 역할을 한다. 쉬지 않고 생각하게 하고 하루를 게으름 피우지 않고 살아가게 한다. 작가의 말처럼 나도 '책을 읽고 한 발짝씩 나가며 거기서 배운 디테일들로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고 싶었다. 나와 같은 이유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정혜윤 작가의 책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이런 책 읽기에 관련된 책을 읽으면 읽고 싶어지는 책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온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면 좋은 점이 궁금한 책을 바로바로 찾아 보면서 다음에 읽을 책을 미리 대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혜윤의 『삶을 바꾸는 책 읽기』를 읽으면서 한 번쯤 들어는 봤지만 완독하기 어려울 것 같아 엄두가 나지 않았던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를 대출했다가 결국 모두 구입해서 읽었다. 이 책들은 지금도 내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 있다. 정혜윤 작가가 말한 책 속의 책을 따라가는 방법으로 나도 책을 읽고 있는 셈이다.



지옥 같은 세상에 살면서도 마치 지옥이 아닌 것처럼 살고 있는 사람을 찾아내 그 사람들이 살도록 자리를 넓혀 주는 것. 내가 매일 책을 읽고, 아무튼 글을 쓰려고 하고, 결국엔 다른 사람들 앞에 내 이야기를 하며 살고 싶은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책을 읽고 좋은 문장을 곱씹으며 내 이야기를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때  정혜윤의 『삶을 바꾸는 책 읽기』에서 소개된 책들을 빨리 읽고 싶어서 마음이 급했었다. 책의 뒷부분에  <책 속의 책들>이라고 해서 이 책에서 거론된 책의 목록이 순서대로 잘 정리되어 있다. 책은 책을 부른다. 그때 나는 세계문학에 푹 빠져 지냈다. 




코로나 시대, 나만이 줄 수 있는 사랑을 생각한다! 『앞으로 올 사랑』
2021년 7월



『앞으로 올 사랑』의 저자 정혜윤은 내가 일을 그만두고 책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을 때 『삶을 바꾸는 책 읽기』라는 책을 통해 알게 된 작가다. 글을 잘 쓰는 건 물론이고 그녀가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모든 책들을 모조리, 빨리 읽고 싶어 안달이 났었다.  오랜만에 정혜윤의 책을 읽었다. 그녀는 쉬지 않고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책을 쓰는 건 물론이고 아픔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역할까지 했던 모양이다. 그녀의 경험에서 우러난 이야기에 귀기울이다 보면 깊은 반성이 뒤따른다. 자극이 된다. 


마음에 남는 문장들

'계속 살아라'라는 말은 '매순간 있는 힘껏 사랑하라'라는 말과 같다 -서문의 제목


 어둡고 슬픈 일은 나쁜 일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어둡고 슬픈 그 일이 너무나 아파서, 아픈 나머지 길을 찾기 시작할 수도 있다. 아파해야 한다. 그 아픔을 막기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음 또한 아파해야 한다. 가슴 아파함 없는, 안쓰러움 없는, 연민 없는 사랑은 없다. 가슴 아파할 수 있음이 앎과 변화를 낳는다. 

 p. 54~55


삶의 해방은 다른 방식으로는 결코 쉽게 오지 않는다. 삶의 해방은 내가 하기로 한 일을 해내면서 온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무엇을 할 힘과 무엇을 하지 않을 힘이 다 있다. 무엇을 하는 힘과 무엇을 하지 않는 힘, 이 둘을 합하면 능력이다. 그리고 무엇을 하는 힘과 무엇을 하지 않는 힘의 관계를 바꾸는 것을 변신이라고 부른다. 무엇을 하는 힘과 무엇을 하지 않는 힘 사이의 균형을 평화라고 부른다. 이 균형을 잡으면서 우리는 자기 삶의 주체가 된다. 이렇게 마침내,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게 된다.

p.76~77


우리는 자연에게 위로를 구하지만 자연에게서 배우지는 못했다. 자연은 풍요로운 것이다. 우리도 세상을 풍요롭게 했으면 좋았을 뻔했다.

p.104


당신에게는 끝까지 함께할 사람이 있는가? 끝까지 헌신할 만한 어떤 것이 있는가? 끝까지 지켜주고 싶은 게 있는가? 상황과 이해관계에 흔들리지 않을 관계가 있는가?

이 사랑스럽지 않은 삶, 우리에게 살아갈 이유를 주는 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그 무엇이다.

p.135


나쁜 일은 나쁜 일이고 선한 일은 선한 일이라고 말해줘야 할 것이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말해줘야 할 것이다. 나쁜 일을 하면서 고통을 느끼고 선하고 옳은 일을 하면서 기쁨을 느끼도록 재교육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재교육된 단어 위해 미래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재교육된 욕망 위에 새로운 인간 가능성이 펼쳐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함께 다시 태어나야 한다. 서로 다시 만들어져야 한다. 행복한 사랑은 거기서 태어난다. 사랑은 삶의 재발명이다.

p.167


내가 내 삶을 사랑하기 위해서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는 중요한 문제다. 나는 발견되는 기쁨을 말하고 싶다. 자기를 사랑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 그것은 누군가에게 발견되는 것이다. 사랑받을 만한 어떤 것을 가지고 있음이 누군가에게 발견되는 것이다. 건강한 자기애는 감사와 사랑을 보낼 타인들이 곁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좋지 않게 행동하면 슬퍼할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사랑과 믿음의 대상이 되는 것은 살면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 중 하나다.

p.189


뭔가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확신'이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 조금씩 죽기 때문에 매일 탄생의 기적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매일 새롭게 봐야 한다. 매일 다르게 보면서 더 풍요롭게 살아내야 한다. (…) 인류는 어느 시기나 다른 방식으로 보는 사람들이 수많은 대안을 내면서 출구를 찾고 위험을 피해왔다. 우주는 결코 우리를 속이지 않고 세계는 늘 우리에게 말을 건다. "이봐, 주위를 좀 보라니까! 눈 좀 뜨라니까!"

p.245


나에게도 나만의 노력, 나만의 어제가 있다면 나만이 만들 수 있는 변화, 나만이 만들 수 있는 내일이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나만이 줄 수 있는 사랑이 있을 것이다. 나만이 낼 수 있는 용기가 있을 것이다. 나만이 질 수 있는 책임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내게도 단순하게 나아갈 길이 또렷이 보인다.

p.280


나만의 노력
나만이 만들 수 있는 변화
나만이 만들 수 있는 내일
나만이 줄 수 있는 사랑
나만이 낼 수 있는 용기
나만이 질 수 있는 책임



이런 생각의 끝에는 내게도 '단순하게 나아갈 길'이 또렷이 보일 것만 같다. 책을 쌓아놓고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일을 그만둔 후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좋은 책과의 만남은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나에게 자극이 되는 작가, 정혜윤의 『앞으로 올 사랑』을 읽으며 나의 건강한 사랑과 누군가에게 사랑과 믿음의 대상이 되는 글쓰기를 다짐했다. 





지옥 같은 세상에서 지옥 같지 않은 이야기를 찾아내기 위해 『아무튼, 메모』
2023년 11월



정혜윤이 말하는 메모의 쓸모는 다양하다. 작은 메모의 가치가 위대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동안 메모를 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지금 당장 메모장을 준비하게 될 것이고, 나처럼 원래 메모를 했던 사람들이라면 그동안의 메모를 모아 좀더 체계적으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재미, 이해관계, 돈이 독재적인 힘을 갖는 사회에서 살고 싶지 않아서, 우리 사이의 빈 공간을 아무렇게나 채우고 싶지 않아서, 아무렇게나 살고 싶지 않아서, 좋은 친구가 생기면 좋겠어서, 외롭기 싫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의 힘과 생각을 키우는 최초의 공간, 작은 세계, 메모장을 가지길 바라 마지 않는다. p.55


위기의 순간에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메모했다. 위기의 순간에 말들이 오히려 더 간절하게 들린다. 슬플 때는 사소한 기쁨도 결정적이다. 메모는 나를 속인 적인 없다. 결국은 힘이 된다. 괴로움 속에서 말없이 메모하는 기분은 얼음 밑을 흐르는 물소리를 듣는 것과도 같다. 곧 봄이 올 것이다. p.57


메모는 관능적인 일이기도 하다. 내 몸에 좋은 이야기를 붙이고 그 이야기에 몸과 마음이 섞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메모는 좋은 쪽과 한편이 되어 치르는 모험 이야기이기도 하고, 하나씩 답을 찾고 그 작은 답을 모아 새로운 삶의 이야기를 만들려는 사랑스러운 흔적이기도 하다. 메모는 자기 생각을 가진 채 좋은 것에 계속 영향을 받으려는 삶을 향한 적극적인 노력이다. p.64 


메모는 재료다. 메모는 준비다. 삶을 위한 예열 과정이다. 언젠가는 그중 가장 좋은 것은 삶으로 부화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메모할지 아무도 막지 못한다는 점이다. 분명한 것은 메모장 안에서 우리는 더 용감해져도 된다는 점이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거 꿈꿔도 좋다. 원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쓴 것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어떻게 살지 몰라도 쓴 대로 살 수는 있다. 할 수 있는 한 자신 안에 있는 최선의 것을 따라 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있지 않은가. 자신 안에 괜찮은 것이 없다면 외부 세계에서 모셔 오면 된다. p.67


우리는 메모를 재료로 책을 쓰고, 노래를 만들고, 작업을 완수하고, 특별한 말을 준비하고, 마음을 다스리고, 더 나은 생각을 찾고, 노동을 값지게 할 수 있다. p.68


내가 생각하는 것을 이렇게 좋은 문장으로 간결하고 명료하게 표현해낼 수 있으려면 얼마나 많은 읽기의 시간과 쓰고 지우기의 과정이 필요할까? 정혜윤의『아무튼, 메모』를 다 읽고 나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에 좀 위축되었다. 문장 수집 노트에 빽빽하게 적힌 문장들을 읽고 또 읽는다. 이것들이 자료가 되어 내 이야기로 재탄생될 그때가 오겠지? 그래, 올 거야. 아무튼, 오늘도 읽고 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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