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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Dec 11. 2023

내가 서평집을 읽는 이유

이슬아 서평집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내가 서평집을 읽는 이유는 두 가지쯤 된다. 2017년에 운영하던 학원을 접고 책의 재미에 빠지게 되었을 무렵엔 좋은 책을 소개받으려는 목적이 컸다. 도서관과 서점에 들러 이런저런 책을 구경하다 맘에 드는 책을 고르는 재미도 컸지만 책 좀 아는 유명인이 인정한 책이라면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다양한 종류의 책을 알게 되었고, 나는 모르고 많은 사람들이 아는 책들을 나도 꽤 읽게 되었다. 아직도 읽어야 할 책들, 읽고 싶은 책들이 쌓여 있는데 가끔씩 또, 서평집을 읽는다.


요즘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서평집만 골라 읽는다. 그들이 어떤 책을 읽는 지도 궁금하지만 책을 읽고 어떻게 서평을 쓰는지가 더 궁금하다. 5년 넘게 블로그에 책과 영화의 리뷰를 쓰다보니 내가 쓰고 있는 리뷰의 틀이나 말투가 좀 식상해졌다. 쓰다가 이게 아닌데 싶어 마무리를 못 짓기도 한다. 책이나 영화를 보고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을 적는 것이니 그냥 내 맘대로 쓰면 될 테지만 그래도 좀 신선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써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곤 한다. 


다른 책들을 빌리러 간 도서관 책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슬아 서평집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를 빌려오고야 말았다. 이슬아 작가에 대한 관심과 마음을 끄는 책 제목 때문이다. 내가 읽어주길 바라며 기다리고 있는 책들이 너무 많은데 또 서평집을 빌려오는 건 사실 바람직하지 않다. 마음만 급해지고 다 읽지도 못할 책을 또 욕심내서 쌓아놓게 될 테니 말이다. 그런데도 얇은 책이니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거라고 타협했다. 지금 당장 서평집에서 소개하는 책을 욕심내지는 않겠다고 양보했다. 번번히 계획했던 대로 되지 않을 걸 알면서도 말이다. 결국 서평집에서 소개하는 책들 중 몇 권은 도서관에 달려가 빌려왔고, 또 몇 권은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하고야 말았다. 


이슬아의 글은 젊다. 나보다 서른 살 어리니 젊을 수밖에… 가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를 통해 이슬아 작가의 활동을 본다. 독특한 말투, 개성 넘치는 스타일, 당당한 표정이 참 보기 좋다. 그녀가 노래 부를 때는 자유로워보이고, 매일 글을 쓰는 연재 노동자라는 소개에는 성실한 사람이구나 싶다. 아직 한창 젊은 나이인데도 다양한 일을 자기 방식으로 잘 해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는 이슬아 작가 꿈을 꾼 적도 있다. 꿈속에서 이슬아가 일본에서 독특한 소설을 출간할 예정이라는 발표가 있었고 나는 그녀의 왕성한 활동을 무척 부러워하고 있었다. 아마도 내 속에 이슬아 작가를 샘내는 마음이 있었나보다. 아무튼 이슬아는 그후로『가녀장의 시대라는 장편소설을 출간했으니 내가 꾼 꿈이 예지몽이었나 보다.


어쩌면 책 읽기는 나의 테두리를 극복해보려는 노력 같다. 내 신체와 역사와 기억과 째째한 자아로 세워진 그 테두리는 부단히 애써야 겨우 조금 넓어진다. 내가 나라는 걸 까먹을 만큼 커다란 사건 앞에서는 허물어지거나 낮아지거나 순간적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압도적인 슬픔, 압도적인 아름다움, 압도적인 탁월함 등으로 나 같은 건 잠시 안중에 없어지는 것이다. 나를 채우는 독서 말고 나를 비우는 독서도 있다. 어떤 책들은 과거의 나를 점점 줄여나가도록 돕는다. 새로운 나 혹은 새로운 존재가 되자고 등을 쓸어준다. 그래봐야 나는 영영 나고 겨우 나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나 이상의 무언가가 되고 싶어서, 잠깐이라도 다른 존재의 눈을 빌려 세계를 보고 싶어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 것일지도 모른다.
p.77~78


너무 공감이 되는 부분이다. 내가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 이유도 이렇다. '나의 테두리를 넓히는 일, 새로운 나 혹은 새로운 존재가 되기 위해 나를 비우는 일.' 이것을 위해 책을 읽고 영화를 찾아 본다. '나는 영영 나고 겨우 나일 테지만' 좋은 책과 영화 덕분에 넓어진 테두리로 내가 사는 세상과 나와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을 좀더 깊이 사랑하고 싶다. 그러면 나도 '나 이상의 무언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솔직함과 작품의 완성도는 무관한 경우가 많고 솔직한 글이 늘 좋은 글인 것도 아니다. 어떤 솔직함은 몹시 무책임하고, 어떤 솔직함은 너무 날것이라 비린내가 나며, 어떤 솔직함은 부담스러워서 독자가 책장을 덮어버리게 만든다. 알고 싶지 않은 정보를 쉴 새 없이 주절대는 친구처럼 눈치 없는 솔직함도 있다. (…) 솔직함만으로는 좋은 글이 될 수 없다.
p.123~124


글을 쓸 때마다 어느 정도까지 이야기해야 하나 고민하곤 한다. 가끔은 나의 치부를 들춰내는 것 같아 불편하고 내 주변 사람들을 희생양 삼아 이야기의 소재로 쓴 것 같아 미안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또 소설도 아닌데 사실을 왜곡해서 쓰는 건 양심에 찔려서 내키지 않았다. 그런데 이 부분을 읽으며 글의 솔직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정말 솔직하게 썼다고 자부한 글이 과연 좋은 글이었나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쓸데없는 솔직함이 때로는 쓰기에도 읽기에도  불편한 글이 된 적도 많다. 글을 쓸 때 솔직해야 된다는 굴레에서 벗어나도 좋을 것 같다. 솔직함과 진정성은 다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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