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쾌한 주용씨 Jan 20. 2024

우리 사 남매 생애 첫 여행!

숙식이 되는 오크우드 프리미어 인천에서...

50대가 된 세 자매와 아직 40대의 막내 남동생, 우리 사 형제의 첫 여행이었다. 여행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우리 집 가까운 호텔에서의 하룻밤이었지만 우린 충분히 설렜고 또 그럴 수 있음에 깊이 감사했다. 큰언니가 암과 싸우고 있다. 재작년 우리 큰아들이 입대할 때쯤 암 판정을 받고 수술 후 우리 아들 제대를 앞둔 지금까지 항암 치료를 이어가고 있다. 얼마 전에는 방사선 치료까지 마쳤다. 암 치료 과정이 참 고약하다. 먹지 않아야 할 것도 많지만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다. 평소 회와 고기를 좋아하던 언니는 회는 날것이라 안 되고, 고기는 소화력이 떨어져서 먹지 못한다. 미각이 무녀진 것 같다. 아이 가진 여자처럼 금방 맛있게 먹다가도 혀끝이 너무 달아서, 너무 써서 수저를 놓게 한다. 평소 먹는 걸 마음껏 먹지 못하고, 달라진 입맛에 맞는 걸 운좋게 찾아도 그 양이 많지 않으니 말라갈 수밖에 없다. 원래도 살 찐 사람이 아닌데 체중이 너무 줄었다. 


큰언니 덕분에 우리 사 형제가 뭉쳤다. 배우자들은 다 집에 두고 왔다. 체력적으로 힘든 큰언니가 에너지를 끌어 쓰지 않고 편하게 있으려면 신경쓰일 요소를 최대한 줄여야 했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라 해도 한 뱃속에서 나온 형제만큼 편하진 않을 터이다. 큰언니의 요구이기도 했지만 생애 처음 우리 형제만의 하룻밤은 큰언니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많이 먹고 많이 이야기 나누고 많이 웃었다. 진즉에 이럴 걸 하는 뒤늦은 후회를 했다. 앞으로 자주, 적어도 계절에 한 번은 이런 기회를 갖자고 다짐했다. 물론 내가 나서서 추진해야겠지만 말이다. 



우리 사 형제가 생애 처음 하룻밤을 함께 묵은 곳은 송도 신도시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오크우드 프리미어 인천이다. 송도 신도시가 내 직장이고, 우리 집도 다리 하나 건너지만 이곳 호텔에 투숙해본 건 처음이다. 사실 연말에 학원 송년회로 오크우드 바로 옆 쉐라톤 호텔 뷔페에 와본 것이 송도 호텔 첫 구경이었다. 호텔에서 내가 이렇게 잠까지 자게 될 줄은 생각도 못해봤다. 큰언니가 연안부두 어시장 가까운 인천에서 있고 싶다고 해서 내가 여기저기 검색하며 알아봤다. 경험이 없으니 아는 것도 당연히 없었다. 포털 사이트, 숙소 예약 사이트, 유튜브까지 찾아봤다. 명색이 우리 형제의 첫날 밤인데 허투루 정할 수는 없었다. 


숙박을 정하는데 가장 중요한 건 4인이 묵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밥을 해먹을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숙식 가능한 호텔이 쉽지 않다. 게다가 남자, 여자가 함께 4인이 들어갈 수 있는 방이라는 조건까지 붙으니 선택의 폭이 좁아졌다. 마침내 오크우드 프리미어 인천을 찾아냈다. 2베드룸에 주방 시설을 갖추고 있다. 물론 주방 시설이 없는 방도 있다. 게다가 37층부터 64층까지 객실이 있다고 하니 전망은 끝내줄 것이 아닌가. 이왕이면 하는 마음으로 돈을 좀 더 써서 센트럴 파크 뷰의 방으로 예약했다. 큰언니와 함께 우리 형제가 모두 모인 첫 숙박이니만큼 돈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가 함께한 일요일에는 비가 내렸다. 전망이 좋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나름 운치가 있었다. 게다가 밤이 되니 야경은 정말 볼만했다. 송도 신도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이 전망 때문에 큰돈을 들여 집을 사는구나 싶었다. 나는 그만한 능력도 되지 않지만 이런 풍경을 매일 보면 부뎌디지 않을까 하며 부러운 마음을 얼른 삼켰다. 이렇게 특별한 날 하룻밤이면 족하다. 창가에서 폼도 잡아보고 서로 장난도 쳐가며 우린 너무 짧기만 한 하룻밤을 마음에 새겼다. 너무 다행스러운 건 큰언니의 식욕이 폭발했다는 것이다. 작은언니가 해온 무젓(충청남도 우리 동네에서는 양념 게장을 이렇게 부른다)과 총각김치는 엄마의 음식 솜씨에는 못 미쳤지만 옛날을 추억하며 우리 모두의 식욕을 자극했다. 연안부두 어시장에서 사온 홍어회는 하늘나라에 계신 아빠가 샘낼 만큼 맛있었다. 너무 많이 먹는 큰언니가 보기 좋으면서도 속이 괜찮을까 걱정했는데 다음날 컨디션이 너무 좋다며 환하게 웃는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음 날 아침 호텔에서 받은 2만원 권 쿠폰을 가지고 65층 카페에 들렀다. 언니들과 동생이 좋아할 만한 담백한 빵을 사서 조식 뷔페 대신 숙소에서 차와 함께 간단한 아침을 마쳤다. 우린 그날을 기점으로 앞으로 자주, 많은 날을 함께하기로 약속했다. 지나고나면 해서 후회하는 것보다 안 해서 아쉬운 것들이 더 많으리라는 걸 알 만한 나이가 된 것이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 우리 형제들, 내가 사진 올린 걸 알면 화를 내지나 않을까 좀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우리의 첫 여행이었으니 좀 봐주지 않을까. 그래도 나중엔 내가 남긴 이 글을 보며 지금을 추억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살면서 처음이라는 건 언제나 설렌다. 비록 도심 호텔에서의 하룻밤인 우리 형제의 첫 여행이었지만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오크우드 프리미어 인천 덕분에 우리 형제 좋은 추억을 남겼다. 이제 간절히 바라는 건 오직 하나, 우리 큰언니의 건강뿐이다. 우리의 마음이 모아졌으니 반드시 이 바람이 이루어질 거라 믿는다. 

이전 10화 비가 와도 괜찮은 1박 2일 가평 여행 코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