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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Jan 27. 2024

스무 살 둘째아들과 제주도 여행

2023년 2월, 대학 입시 결과가 좋지 않은 둘째아들과의 여행 기록

아들과 제주도 여행 가기 전날!


스무 살이 된 둘째아들과 내일 제주도 여행을 간다. 작년 여름에 입대를 앞둔 큰아들과 다녀오고 6개월 만이다. 제주도에서 살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사는 나에게 남편이 휴가를 준 셈이다. 어쩌면 남편의 휴가일 수도...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입시를 끝낸 둘째와 힐링하고 오라는 말에 넙죽 그러겠다고 했다. 2018년 겨울에 두 아들과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했으니 우리 둘째는 이번 제주도 여행이 5년 만이다. 아들은 3월 말에 군 입대를 위한 신체 검사를 예약해 둔 상태다. 가능하면 올해 상반기에 입대를 할 예정이다. 말은 안 하지만 아들 속이 복잡할 것 같다. 이번 여행이 아들에게 생각을 정리하고 몸과 마음이 개운해지는 좋은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 큰 아들이 엄마와 둘이 여행을 가는 게 이상하다는 사람들이 있다. 가족 여행도 아니고 아들이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가겠다고 하는 게 이상하단다. 큰아들과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 아들도 그랬다. 엄마랑 3박 4일 제주도 여행을 다녀올 거라니까 친구들이 하나같이 "왜? 뭐하러?" 그랬단다. 요즘 아이들이 그런 건지, 내가 이상한 건지, 몇몇 사람들의 반응일 뿐인지 알 수 없지만 다른 사람들은 선뜻 하지 못하는 걸 우리 아들과 나는 거리낌없이 할 수 있다는 게 나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단둘이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둘의 사이가 좋다는 의미일 테니까.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할 때와 큰아들 입대 전 제주도 여행을 할 때만 해도 관광지와 맛집을 검색하며 하루하루 어디를 가고 무엇을 하고 먹을지 다 계획을 했는데 이번에는 아무 생각없이 그냥 간다. 둘째아들의 무던한 성격 때문이기도 하고 이번 여행은 그저 아들과 나의 온전한 휴식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아들과 나에게는 관광이 아니라 쉼이 필요하다. 결과가 어떻든 아들에게 입시 과정은 힘들었을 테고, 그런 아들을 지켜보면서 내 애간장도 조금은 녹아내렸다. 우리에게 이번 여행은 그동안 수고했다는 위로이며 앞으로 더 힘을 내서 잘 해나가기 위한 충전이기도 하다. 우리 둘째아들과 단둘이 여행, 기대되고 생각만 해도 마음이 편해진다. 

몸과 마음의 휴식
내일을 위한 응원
따뜻한 이야기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

이렇게 쓰고보니 그냥 간다는 여행이 너무 거창한 목적이 생겨버린 것 같다. 아무튼 계획을 세우는 이 버릇은 어쩔 수 없나보다. 사람 고쳐쓰는 거 아니라더니... 내일 새벽, 공항에 가야하니 오늘은 여기까지. 국민학교 때 소풍가기 전날처럼 여행 가기 전날은 아직도 설렘이다. 



아들과 제주도 여행 첫날!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좀 더 자도 되지만 소풍을 앞둔 어린아이처럼 일찍 눈이 떠졌다. 엄마처럼 들뜨지는 않은 아들과 비행기에 나란히 앉았다. 다리가 긴 아들에게 할인석은 무척 좁아보였다. 1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제주도니 참을 수 있지만 해외 여행은 힘들겠다 싶다. 창가에 앉은 엄마는 하늘과 해와 구름과 비행기가 어우러진 풍경에 넋을 놓다. 잠을 자도 좋으련만 김포에서 제주까지 가는 동안 사진을 찍고, 책을 읽고, 다이어리에 몇 자 적기까지 했다. 태생이 그냥 편안히 쉴 팔자가 아닌 것 같다. 이렇게 생겨먹은 내가 가끔은 나 자신도 신기하고 안쓰럽다.



바람이 많이 불고 안개가 진한 제주도의 날씨다. 야외 관광이나 활동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 뷰가 죽인다는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바다에 인접해 있는 카페는 실내보다 실외가 더 넓어보였다. 자리값을 톡톡히 받아내려는지 음료 값이 예상보다 더 비쌌다. 놀란 토끼눈을 하는 아들 앞에서 별거 아니라는 듯 여유로운 표정으로 계산을 했다. 사실 좀 후회했다. 제주도는 멋진 바다 풍경이 흔한 곳인데 굳이 뷰가 좋은 카페를 찾아다녀야 하는지 좀 씁쓸했다. 하지만 아들 앞에서는 돈 생각 1도 안하는 엄마의 모습으로 잠시 호사를 누렸다. 나는 이곳을 다시는 안 올 것 같지만 카페 안은 정말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바다에 인접한 숙소의 뷰 카페보다 훨씬 맘에 들었다. 여행 첫날 피곤한 몸을 쉬기에 최적의 공간이다. 아들과 나는 마트에서 사온 먹거리와 포장해온 낙지볶음으로 간단히 소주 한 잔 했다. 이제 술의 세계에 입문한 스무 살 아들은 엄마의 술친구로 손색이 없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 장시간 운전을 한 데다 무거운 짐에 시달린 몸은 노곤해져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 하지만 3박 4일 제주도의 첫날을 그대로 보낼 순 없어서 잠시 숙소 주변 산책을 하고 들어왔다.



역시 제주도의 저녁은 육지의 그것과는 느낌이 다르다. 좋은 풍경에서 사랑하는 둘째아들과 여유를 누리고 있는 이 시간이 참 고맙다. 욕심을 부리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난 지금 이 순간이 참 좋다. 우리 네 식구 지금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건강하고, 많이 웃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우리 집이 아닌 여행지에서 혼자 있을 남편을 생각하고 군대에 있는 큰아들을 떠올리니 더욱 애틋한 기분이 든다. 아름다운 풍경 만큼이나 예쁜 마음으로 오늘을 마무리한다. 



아들과 제주도 여행 둘째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들에게는 싫은 일일 수 있다. 아들이 좋아하는 게 내게는  낯선 일일 수도 있고. 아들과의 여행은 서로의 취향을 알아가는 것. 속도가 다른 걸음에 발맞춰가는 일이다. 고기국수를 좋아하는 아들과 비빔국수를 먹는 엄마는 꽤 잘 어울린다. 엄마와 아들의 밤은 어제보다 더 예쁘다!




아들과 제주도 여행 셋째날!


쓸 얘기가 많다. 

낯선 느낌

새로운 감정

눈에 담은 풍경

기대 이상의 장소

평소와는 다른 밥상

예상치 못했던 만남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기

함께 있는 사람의 소중함떨어져 있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


너무 많은 것들이 쏟아져서

정리를 할 수가 없다.

아들과 제주에서의 마지막날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을

도저히 글로 쓸 자신이 없어서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내몸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우선은 잠가 놓아야겠다.

내일 일상으로 돌아가면

하나둘 천천히 꺼내서

설렘으로 추억으로 고마움으로

잘 엮어봐야지.

그러면 글이 되려나? 여행 중에 글쓰기는 힘들다.




아들과 제주도 여행 마지막날!


스무 살 둘째아들과 제주도 여행. 3박 4일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아쉬움을 달래려 아침 일찍 혼자 나섰다. 어젯밤에 해돋이 명소로 찾아본 사계해변. 숙소에서 30분 남짓 차로 달려야 한다. 해뜨는 시간이 7시 11분이라고 했는데 13분쯤 사계해변에 도착했다. 해는 구름에 가려져 있었지만 조용한 해변에서 홀로 바람을 맞는 기분도 꽤 괜찮았다. 



우리 숙소는 제주 비스비앤비 팜빌리지다. 오션뷰답게 방에서 바다가 환히 내다보인다. 굳이 뷰 좋은 곳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 이곳에 있는 카페 하라케케가 꽤 유명하단다. 카페는 3층에 있지만 숙소 앞 정원이 넓고 예쁘다. 여름에는 작은 수영장에서 물놀이도 할 수 있다. 겨울이라 그런지 낮보다는 밤이 훨씬 예뻤다. 해지는 풍경도 방에서 또는 카페에서 감상할 수 있다. 



아침 일찍 움직였더니 좀 출출했다. 무엇보다 커피 한 잔이 간절했다. 혼자서라도 하라케케에서 브런치를 즐겨보기로 했다. 일반 손님에게는 16,000원이지만 투숙객은 11,000원에 꽤 푸짐한 브런치가 제공된다. 평일 아침이라 한적하다. 넓은 창가 자리를 차지하고 마음껏 뷰를 감상하며 배불리 먹었다. 투숙객은 방으로 가져가서 먹을 수도 있다. 감자튀김, 소세지, 빵 반 조각 등 아들이 먹을 만한 것을 남겨서 방으로 가져와 먹였다. 가성비 좋은 선택이다.



이제 짐을 챙긴다. 여행을 즐겼으니 일상으로 돌아가야지. 남편이 공항으로 마중나온단다. 함께 있을 때는 당연하게만 여겼는데 며칠 떨어져있으니 남편만큼 편한 사람은 없다. 아들에게는 언제나 내가 보호자지만 남편은 함께 걷는 동반자이자 기대도 되는 사람이니까. 집으로 돌아가면 우리 남편 좀더 살뜰히 챙겨야겠다. 가을에는 남편과 함께 와서 올레길을 걸어야겠다고 계획도 세운다. 마지막으로 제주도의 바다 풍경을 눈에 담는다.





작년 2월, 입시 결과가 좋지 않은 둘째아들과의 제주도 3박 4일 여행 기록이다. 우리 둘째는 어제를 끝으로 재수생으로서의 대학 입시 정시 전형 실기 시험을 모두 마쳤다. 이제 결과만 남았다. 작년과는 다른, 좋은 결과를 바라지만 앞으로의 일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아들과의 평화로웠던 여행 기록을 다시 들추며 초조한 마음을 달래본다. 2월엔 둘째아들의 입시 결과가 발표되고 우리 큰아들은 전역을 한다. 우리 네 가족 완전체가 되어 홀가분하게 여행갈 수 있으면 좋겠다. 이번 여행 사진 속에서는 우리 둘째아들이 환하게 웃을 수 있기를... 간절히 두 손 모아 기도한다. 모든 입시생의 부모가 나와 같은 마음일 테니 우리 아들에게만 행운을 달라고 징징댈 수는 없고 그저 애쓴 만큼의 결과를 바랄 뿐이다. 마음 한 켠엔 조심스레 위로와 격려와 응원의 말도 준비해 두고 있다. 나는 엄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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