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우리 남편이 최고야!
여고 동창 모임 후에 나는 남편이 더 좋아졌다.
여고 동창 모임이 있었다. 재작년 11월 우리 엄마 장례식장에서 보고 처음이다. 횟수로 2년 만의 모임인데 다섯 명 중 한 명이 급성신우신염이라 못 나오고 네 명이 모였다. 19살 고3 때 한 반이었던 친구들이니까 벌써 30년이 넘은 인연이다. 사실 나를 뺀 네 명의 친구들은 반에서 20번대 전후의 키도 몸집도 아담한 친구들이다. 나는 46번으로 이 친구들에 비해 키도 크고 체급도 좀 나간다. 성향도 비슷한 면보다는 다른 면이 더 많다. 그래서 우린 만날 때마다 나와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누구도 그 과정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서 그냥 넘어간다.
그래도 우리 다섯 명은 일하는 여자로서 공통점이 있다. 어제 나오지 못한 친구1은 사립 초등학교 교감이고, 교직을 가장 일찍 시작한 친구2는 고등학교 국어 선생으로 얼마 전에 교감 연수를 받았단다. 40대에 결혼해서 지금 10살 아들을 둔 친구3은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친구4는 교육 행정직으로 근처 국립대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한다. 그리고 나는 25년 넘게 사교육에 몸담고 있다. 한 마디로 우리 다섯 명은 교육과 연관된 직업에 있는 셈이다.
어렸을 적 주어진 환경은 각각 달랐겠지만 우리는 모두 결혼해서 가정을 이뤘고 한 남자의 아내로, 아이들의 엄마로 살고 있다. 겉보기에는 비슷한 상황이라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이어나간다. 모임이 무르익어가며 속사정을 터놓으며 공감한다. 그리고 각기 다른 색깔의 고충을 들으며 나는 그런 대로 괜찮아 하는 위안을 삼기도 한다. 여자들의 동창 모임은 남편과 자식 자랑하고 시댁 욕하고 자신이 가진 부를 집, 차, 명품 가방과 옷가지로 자랑하기 바쁘다고 치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다행히 우린 그렇지 않다. 물론 그런 동창들이었더라면 이렇게 오래 관계가 지속될 수도 없었겠지만 말이다. 우린 서로를 궁금해하고 다름을 인정할 줄 아는, 서로에 대한 기본적인 에티켓과 적당한 관심이 있다.
4시간 정도의 만남. 저녁도 먹고 술도 가볍게 한 잔 했고 오랜만에 수다도 떨었는데 나는 그 끝에 남편이 무척 보고싶었다. 눈치보지 않고 나를 적당히 포장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람 곁에 있고 싶은데... 나에겐 그런 사람이 유일하게 남편이다. 신도시 넓고 높은 집에서 사는 친구가 우리 차의 3배가 넘는 가격의 차로 30년 된 5층짜리 우리 아파트 앞까지 나를 데려다 주었다. 혼자 소주를 마신 나는 나름 쿨하게 고맙다는 굿바이 인사를 건네고 도망치듯 집으로 들어왔다. 편하다. 남편과 소소하게 2차를 하며 뜬금없이 말했다. "그래도 우리 남편이 최고야!"
괜찮은 척 했지만 내 마음 깊숙히 친구들과 나의 상황을 비교했나보다. 똑같이 열심히 살았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결과는 다른 것에 대한, 유치한 불만? 겉으로는 아닌 척 했지만 결국 나보다 좋은 환경에 있는 친구들에 대한 부러움? 1도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나는 지금의 내가 좋다. 나는 친구들 앞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 추구하는 신념, 앞으로 살고 싶은 삶의 모습을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내 남편은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에 대해 항상 공감하고 응원하며 흐뭇하게 웃어준다.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며 다시 한번 느꼈다. 내 남편이 꽤 괜찮은 짝이라는 걸. 마음 맞는 친구 하나가 나에게는 남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