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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Feb 21. 2024

D+562, 어떤 날

"언니야, 우리 잘 살아보자!"

더 이상 쓸 약이 없다니요. 그럼 어쩌란 말입니까. 이럴 거면 진즉에 다른 방법을 찾아보라고 하던가요. 수술에 항암 치료에 방사선까지 아픈 사람을 오라가라 하면서 기운을 다 빼고 살까지 저렇게 빼놓고나서 이제 쓸 수 있는 약이 하나밖에 안 남았다고, 할 테면 하고 여기서 그만둬도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나오면 도대체 어쩌라고 이래요. 하나 남은 약은 보험도 안되는 비싼 약이라면서요. 확률 20퍼센트라 가격 대비 권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니 그럼 이제 앉아서 죽을 날만 기다리라는 건가요. 아, 정말 이건 아니잖아요. 당신들은 많고 많은 암 환자 중에 한 명이겠지만 환자들은 당신들만 바라보고 당신들이 하라는 대로 해왔잖아요. 그런데 이제 와서 더 이상 해볼 수 있는 게 없다고 손을 털어버리면 2년 가까이 당신들에게만 매달려 온 환자는 어디로 가서 무엇에 기대야 할까요. 


아침에 큰언니와 통화하고 나서 속에서 천불이 날 것처럼 화가 났다. 언니 뒤에서 나는 이렇게 하소연 하는 것밖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운명을 믿지도 않고, 종교도 없고, 살면서 사주나 점을 보러 다녀 본 적도 없다. 간절히 바라는 일이 있을 때 절에 가면 부처님 앞에 손을 모으고 성모 마리아 상 앞에서는 고개 숙이고 잠자리에서 무릎 꿇고 하늘에 계신 부모님께 우리 좀 봐달라고 생떼 쓰듯 기도를 한 적은 있지만 그렇게 운이라는 게 쉽게 바뀔 거라고 기대하며 살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정말, 우리한테 왜 이러는 거냐고 누구라도 붙잡고 소리치고 싶다. 6년 전 아빠가 담도암으로 2년 반 투병 끝에 호스피스 병동에서 눈을 감으셨다. 엄마는 요양병원에서 코로나를 혼자 맞이하고 점점 기억을 잃고 말까지 잃어가더니 아무도 모르게 혼자 아빠 곁으로 가버렸다. 그런데... 언니는 정말 아니지 않나. 준비해 놓은 것처럼 이렇게, 쉴 틈도 없이 이러는 건 도리가 아니지. 정말 이러면 안되지.   


젊었을 때부터 스포츠를 즐기시던 키 174cm의 건장한 우리 아빠는 암 4기 진단을 받고도 자신의 완쾌를 자신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은 치료 잘 받고 반드시 예전처럼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병원에서는 연세도 많고 암이 너무 진행돼서 수술도 할 수 없다고 한 발자국 물러났는데도 뭘 믿고 그렇게 자신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하지만 결국 병원을 오가며 기운이 빠지고, 입맛을 잃더니 체중을 잃고, 통증과의 싸움에서 점점 작아져갔다. 아빠 없이는 혼자 시장도 볼 줄 몰랐던 엄마는 요양병원에서 혼자 4년을 버티다 코로나가 부추기는 바람에 생각보다 빨리 떠났다. 엄마가 떠나던 그 해 8월에 큰언니는 아빠와 같은 암으로 진단을 받고 수술 후 항암을 시작했다. 엄마는 그렇게 애틋해하던 큰딸의 병을 모른 채 11월에 혼자 조용히 눈을 감았다. 평소 눈물도 표현도 야뱍했던 큰언니는 엄마의 장례식에서 많이 울고 많이 힘들어했다. 엄마 입관식을 할 때 마음 속으로 엄마에게 부탁했다. '엄마, 큰언니 낫게 해줘. 엄마가 아빠한테 가서 둘이서 큰언니는 꼭 지켜줘. 하늘에서 나란히 우리 네 형제 오래오래 잘 지내는 거 봐야지. 다른 건 안 바랄게. 큰언니만 건강 되찾고 잘 살게 해줘. 알았지. 꼭이야.' 눈 감은 엄마에게 매달려 빌고 또 빌었었다. 


재작년 8월이니까 큰언니는 암 진단 받은 후 횟수로 2년, 약 15개월 동안 병과 싸우는 중이다. 언니의 카톡 프로필을 열어보니 'D+562, 어떤 날'이라는 날짜 카운팅과 함께 암 진단 받은 날짜가 기록되어 있다. 언니는 562일 동안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언니에게 오늘은 어떤 의미일까. 어떤 기대를 하며 내일을 기다릴까. 언니에게 묻지 못한 질문이 많은데 언니를 만날 때나 전화 통화를 할 때 나는 일상적인 안부만 묻는다. "컨디션은? 밥은? 잘 먹야 하는데..." 언니를 기운나게 할 다른 언어를 찾지 못하고 매번 이런 식의 뻔한 말들만 짧게 건넨다. 언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좀더 자주 통화하고 먼 길 마다않고 보러 가는 것 정도다. 내 언니가 아픈데, 밥을 못 먹고 있는데, 더 이상 쓸 약이 없다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견디고 있는데, 나는 해줄 게 없고 해줄 말이 없고, 언니 앞에서는 꾹 참았다가 혼자 이렇게 울기만 한다. 


현실에서 책에서 영화나 드라마에서 아픔과 고통은 너무 많고, 죽음도 너무 잦다. 인생이 이런 거라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문득문득 막막해지곤 한다. 젊은 시절 열심히 일했고, 결혼해서 부모님 봉양하고 자식 키우느라 아등바등하며 살았고, 자식들 성인이 되고 일에서도 물러날 나이가 되어 이제 좀 숨 쉬고 살겠구나 했는데 덜컥 병에 걸려버리면 지금까지 고생했던 거 어디서 보상받으라고, 여유 생기면 하고 싶은 게 얼마나 많았는데 그런 거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병원만 왔다갔다 하다가 너무 바싹 다가와버린 죽음을 생각하라고 하면 너무 억울하지 않냔 말이다. 나는 내 가족의 노후와 병과 죽음을 보며 그리고 나이 들어가는 내 몸을 느끼며 결심한다. 만약 내가 아빠처럼, 언니처럼 안 좋은 병에 걸리게 되면 나는 기약 없는 병원 치료는 받지 않겠다고 말이다. 남편과 두 아들들에게 나의 병을 알리지 마라 하며 이순신 장군처럼 멋지게 죽음을 맞이하겠다고 허세를 부리는 건 아니다. 다만 짧은 시간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것 하고, 가고 싶은 데 가고, 먹고 싶은 거 먹으며 내 인생을 마무리하는 시간을 갖고 싶을 뿐이다.


두 아들에게, 남편에게 살아 있는 동안 잘 웃고 씩씩했던 엄마, 아내로 기억되고 싶다. 그러려면 이렇게 기운 빠져 있으면 안될 것 같다. 오늘 하루는 언니에게도 나에게도 다시는 없을 시간이다. 언니가 아픈 몸을 이끌고도 엄마, 아내라는 이름을 달고 담담하게 하루를 살아내듯 나는 좀더 기운차게, 후회없는 오늘을 살기로 마음먹는다. 대신 어제처럼 무겁게 시장 바구니를 들지 않기, 학원 보강하고 피곤한데 식구들 밥 챙기고 설거지까지 하느라 무리하지 않기, 끙끙 앓으며 잠자리에 들어서 살갑게 날 챙기지 않는 가족들에게 서운해하지 않기 등을 다짐한다. 아무리 가족이어도 내 몸 힘들고 피곤한 것까지 알아달라고 기대하지 말고 내가 알아서 힘든 건 하지 않겠다고, 오늘은 내가 피곤하니 그냥 시켜 먹자고, 설거지는 남자들이 좀 하라고, 나 먼저 일찍 자겠다고 굿나잇 인사를 하자. 누구의 인생이든, 그 시간이 길든 짧든 소중하지 않은 삶은 없다. 최선을 다해 내게 주어진 인생을 잘 살아내겠다고, 끝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과정을 마음껏 즐기겠노라고 다짐하며 언니와 나의 인생을 응원하고 축복한다. "언니야, 우리 잘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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