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주안 맛집 <두꺼비 식당> & 연수동 오뎅바 <철길 부산집>
월급날이다. 나는 큰아들이 먼저 보고 권한 영화 <추락의 해부>를 혼자 보기로 했다. 마침 영화 끝나는 시간과 남편 퇴근 시간이 비슷해서 저녁에는 남편과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통장이 두둑해진 내가 통크게 쏘겠다고 큰소리 쳤다. 그래봤자 우리 부부의 소박한 입맛에 맞는 부담스럽지 않은 비용이겠지만 월급날 한 턱 쏘는 즐거움은 일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이다. 집과 아들 걱정 안 하고 남편과 둘이 오붓한 저녁 시간을 갖기 위해 두 아들의 저녁 반찬을 미리 준비해뒀다. 아들들이 좋아하는 닭볶음탕을 한 솥 푸짐하게 해놓고 개운하게 콩나물국도 끓여 놓았다. 김치도 넉넉하게 썰어서 냉장고 잘 보이는 곳에 두었으니 저녁밥 걱정은 안해도 된다. 언제쯤이면 밥에서 해방될 수 있으려나 싶다가도 집밥이 최고라며 내가 해준 반찬 맛있게 먹을 식구들을 생각하면 투정에 앞서 몸이 먼저 움직인다. 아이고, 내 팔자야.
오랜만에, 혼자 보는 영화다. 영화공간주안은 평일 6,000원이면 영화 한 편을 볼 수 있다. CGV나 메가박스에 비하면 반 가격밖에 안되고 멀티 상영관에는 없는, 다양한 영화들을 볼 수 있어 좋다. 2시간 훌쩍 넘는 영화 <추락의 해부>는 지루할 틈 없이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남편을 만나러 가는 발걸음이 음표가 붙은 것처럼 리드미컬하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면서 남편 회사 방향으로 걷기 시작하는데 신호등에 남편이 서 있다. '심쿵!'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연애 시절 데이트 할 때처럼 마음이 달떴다. 게다가 남편 손에 케이크가 들려 있다. 뭐지? 회사 팀원들이 3월 생일자에게 미리 생일 파티를 해줘서 받았단다. 카드에 손글씨로 쓴 남편 후배들의 메시지가 훈훈하다. 우리 남편, 회사에서 괜찮은 선배이자 상사인가 보다. 선물로 받은 스타벅스 카드는 내 차지가 되었다. 분위기 좋고 마음까지 따뜻해진 저녁 식사 시간이다.
전에 한 번 와본 곳인데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어서 남편과 등갈비를 먹으러 왔다. 주안 맛집 <두꺼비 식당>이다. 주안역 근처 먹자 골목이 아니라 역에서 좀 떨어진 외진 곳에 있다. 6시 30분쯤 들어갔을 때 손님이 없어서 평일엔 한가하구나 싶었는데 웬 걸, 우리가 자리를 잡은 후부터 계속 손님들이 들어와 어느새 식당 안이 꽉 찼다. 역시 맛집의 포스가... 우린 등갈비 3인분과 막국수를 주문했다. 등갈비가 나오고 메밀전이 나오길래 우리가 주문한 게 아니라고 했더니 등갈비를 시키면 서비스로 나오는 거란다. 전에도 그랬던가, 그때는 세트를 시켜 먹어서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무튼 저녁상이 푸짐해졌다. 이곳은 들기름막국수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우리는 기름이 들어간 걸 그닥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그냥 막국수를 시켰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전에 먹은 들기름막국수에 비해 개운한 맛이다.
매콤한 등갈비에 상큼한 막국수, 담백한 메밀전까지 푸짐한 밥상을 사이에 두고 우리 부부는 이야기꽃을 피운다. 오늘 본 영화 이야기, 두 아들에 대한 걱정과 부모로서 서로에 대한 위로와 응원, 건강에 대한 다짐 등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평소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이야기지만 처음하는 이야기처럼 서로에게 귀기울이고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집에서 가족과 하는 저녁 식사라면 이렇게 집중하지 않겠지만 역시 밖에서 하는, 둘만의 데이트라서 다르다. 나이가 들수록 부부 사이에 대화가 없어지고 각자 다른 취미를 갖는 경우도 많다고 하는데 우리 부부는 점점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가고 대화도 많아졌다.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식성까지 비슷하니 술친구로 딱이다.
<두꺼비 식당>에서 너무 배불리 먹는 바람에 주안에서의 2차를 포기하고 소화시킬 겸 집 근처로 이동했다. 남편이 빵빵한 배를 생각해서 그냥 집에 올까 했는데 눈앞에 오뎅바 <철길 부산집>이 보였다. 분위기에 이끌려 홀린 듯이 들어왔다. 우리가 첫 손님이다. 오뎅바가 처음이기도 하고, 배도 아직 꺼지지 않은 상태라 가장 기본인 듯 보이는 17,000원 짜리 오뎅 2인분을 주문했다. 그전에 국물이 나오는데 떠먹는 국자가 특이하다. 술집 안을 둘러보니 겉에서 보는 것보다 분위기가 더 그럴 듯하다. 조명도 맘에 들고 다 좋은데 뭔가 서비스가 좀 아쉽다고 해야하나, 손님에 대한 적극성이 좀 떨어지는 것 같았다. 사장님이 없는 게 아닐까, 이렇게 차려 놨으면 홍보나 서비스에 좀더 적극적이어야 하는 거 아닌가, 또 쓸데없는 오지랖이 발동했지만 남편과 술안주 삼아 이야기하며 넘겼다. 다음에 비가 오는 날에 다시 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우리의 2차는 가볍게 끝났다.
열심히 일하고 받는 월급, 나만을 위해 쓴다면 더 풍요롭고 여유로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번 돈을 가족을 위해 쓰고, 이렇게 가끔 우리 집 가장인 남편에게 한 턱 쏘는 기분은 혼자 누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행복이다. 아내가 마련한 소박한 데이트에 우리 남편 함박 웃음이다. 이 맛에 일하는구나 싶다. 우리 부부 따뜻해진 마음으로 두 손 꼭 붙잡고 귀가했다. 아름다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