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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Mar 13. 2024

남편과 신포동 맛집 3차 데이트!

신포옛골 & 인하의 집 & 흐르는 

남편이 데이트 신청을 한다. 지난 주 화요일엔 내 월급날이라 혼자 영화보고 퇴근 시간에 남편과 주안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런데 일주일 만에 또 밖에서 만나자 한다. 하루 종일 집에서 책 읽을 생각이었다가 남편이 출근 시간에 갑자기 제안하는 거라 반갑게 대답하지 못하고 뜨뜻미지근하게 응했다. 조기 퇴근을 쓸 수 있다며 4시에 회사 근처에서 볼까 하더니 오랜만에 신포동에서 만날까 한다. 신포동이라는 말에 마음이 동했다. 내가 다닌 여고가 있는 동인천과 신포동은 예전 번화가의 모습은 아니지만 아직 아날로그 감성이 남아 있는 인천의 명소다. 우리 부부는 가끔 그곳에서 데이트를 즐긴다. 우리 감성에 잘 맞는 데이트 장소다. 


약속 장소로 가는 전철에서 신포동 맛집을 찾아봤다. 신포동에는 노포도 많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뮤직 카페도 몇 개 있다. 전에 가보지 못한 곳을 가보고 싶은 마음에 이곳저곳 검색하다 남편을 만났다. 연애 시절엔 참 무뚝뚝한 남편이었는데 벌써 맛집 검색을 하고 내 취향의 맛집을 찾았다며 성큼성큼 앞장선다. 결혼 25주년이 지났는데 배 나온 남편의 뒷모습이 좀 멋있다. 여자를 리드하는 남자라니... 평생 남편에게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일 줄 알았는데 요즘 우리 남편이 달라졌다. 주말이면 나와 함께 산책할 곳을 정해놓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재래시장을 찾아보기도 한다. 데이트 코스도 곧잘 짜고 여행할 때면 혼자 운전하고 짐도 번쩍번쩍 들어주며 나의 편의를 제일 먼저 생각한다. 2,30대에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4,50대에 느끼게 하다니... 우리 남편이 늦된 걸까, 아니면 의도된 플랜일까. 아무튼 나는 지금의 남편이 참 좋다. 



남편이 날 데려간 곳은 <신포옛골>이라는 간판의 작은 식당이다. 겉에서 보면 안이 전혀 보이지 않고 메뉴가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 그야말로 맛집의 포스다. 내가 좋아하는 해산물이 주메뉴라 하니 한번 들어가 보기로 했다. 벌써 단체석 두 개가 예약되어 있고 남은 자리는 두 개뿐이다.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풍기는 인테리어에 음악도 딱 우리 취향(너무 올드하지 않았다는 것! 반가운 가요가 주로 나온다. SG워너비 목소리도 들렸다.)이다. 여사장님의 포스가 예사롭지 않다. 자신이 준비한 음식과 운영하는 식당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오늘 추천 메뉴를 사장님께 들으며 가격표가 없는 메뉴판을 보다가 우럭젓국에 꽂혔다. 이작도에 사시는 시고모부님이 직접 잡은 우럭을 적당히 말려 오시면 시어머님이 요리해 주셨는데 젓국으로 먹어도 쪄 먹어도 기막힌 소주 안주가 되었다. 예전 맛이 날지는 모르지만 너무 일찍 돌아가신 시어머님을 추억하며 그 맛을 느끼고 싶었다. 



메뉴판에 가격이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맡반찬을 먹어보는 순간 이 정도의 맛이라면 좀 비싸더라고 괜찮다고 생각했다. 네 가지 나물이 모두 안 짜면서 맛있다. 나물 반찬을 좋아하지만 집에서는 다양하게 해먹는 게 쉽지 않다. 이렇게 맛있는 나물과 상큼한 미역 초무침, 그리고 별미 갈치 조림(사실 정확히 반찬명을 모르겠지만 우리 생각에 갈치일 거라고 추측했다)까지 술안주로 먹으니 주메뉴가 나오기 전에 소주 한 병 꺼뜬히 비울 수 있었다. 



게다가 서비스라며 오이초무침 김밥까지 한 접시 내오신다. 다른 메뉴를 생각할 수도 없게 푸짐한 한 상이 차려졌다. 기대했던 우럭젓국은 어머님이 해주시던 것과는 살짝 다르지만 평소에 먹어보지 못했던 맛으로 우리는 무척 만족스러웠다. 먹으면서 사장님께 들었는데 이 곳은 대부분 단골들이 많고 미리 예약을 하고 온다고 한다. 6만원 짜리 코스가 있는데 이것 저것 부족함 없이 나와서 손님들이 많이 선호한다고, 그런데 3인 이상만 주문을 받는다고 하셨다. 글쎄, 가격도 양도 부담스러울 것 같아 우리는 앞으로도 코스를 이용할 것 같진 않다. 밑반찬과 메인 메뉴 하나로도 충분했다. 



남편이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고개를 갸웃거린다. 55,000원을 지불했는데 소주 2병이 만원이라고 하면 우럭젓국이 45,000원이다. 맛은 있었지만 좀 비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밑반찬도 맛있고 배불리 먹었으니 좀 가격이 나가는 곳이라 생각하고 뒤돌아섰다. 신선한 재료를 쓰고 담백한 맛을 내는 곳이니 다른 곳보다는 약간 비쌀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가격표 없이 생각보다 더 나가는 식대를 내고 보니 좀 찝찝한 기분이 들긴 했다. 오늘 글을 쓰느라 식당을 <신포옛골>을 검색해보니 언제 업그레이드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럭젓국 가격은 35,000원이었다. 그리고 가격이 좀 비싸다는 의견과 손님이 술 취했을 때 더 많은 가격 청구를 한다는 리뷰가 올라와 있었다. 설마... 다음에 가게 되면 음식 가격 먼저 여쭤보고 개운하게 즐겨야겠다. 



이른 저녁 시간, 일본식 건물이 특징인 중구청 주변 거리를 걸었다. 일본에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이런 감성 꽤 괜찮다. 내 이름(주용)과 비슷한 주영미용실을 보며 반가워하고 몇 번 들른 적인 있는 <문학소매점>에도 잠깐 들어갔다 나왔다. 독특한 느낌의 라멘 집을 지나 고깃집이라고 하기엔 너무 예쁜 <신포목살> 간판 앞에서 다음에 고기 먹고 싶을 땐 여기도 한번 와보면 좋겠다고 했다. 남편과 함께 걸을 때마다 생각한다. 이 시간이 참 좋다고, 빨리 일 그만두고 우리 감성에 맞는 동네로 가서 이렇게 천천히 걸으며 살자고 말이다. 



신포동을 지나 동인천으로 발길을 옮겨 인천 삼치 골목으로 향했다. 예전 가게들이 많이 정리가 되고 새 가게로 바뀌기도 했고 아무튼 옛날의 그 느낌은 아니다. 그래도 그냥 갈 순 없다. 우리의 2차는 예전 그 자리에 그대로 가게를 유지하고 있는 <인하의 집>이다. 우리 아들들이 들으면 놀라겠지만 20대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에 3,000원 짜리 안주에 1,500원 짜리 소주를 마시던 곳이다. 그때보다 훨씬 깔끔해졌고 물론 가격도 많이 올랐지만 그래도 다른 술집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다. 삼치를 먹을까 하다가 너무 배부를 것 같아 오징어 데침(11,000원)에 소주 한 병만 마시고 나왔다. 오늘은 신포동에서 3차까지 하기로 해서 나름 절제의 힘을 발휘한 것이다. 술과 함께 추억을 마셔서인지 안주 하나로도 충분히 배부르고 기분은 달떴다. 



우리 부부 신포동 데이트의 마지막 3차는 음악이 흐르는 곳, 음악 카페 <흐르는 물>이다. 신포동 다른 음악 카페는 가본 적이 있는데 이곳은 처음이다. 내가 오는 길에 검색으로 찾아봤던 곳이다. 유명한 뮤지션들이 가끔 공연도 하는 곳으로 그 역사가 무척 깊다고 한다. 2층으로 올라가 입구에 들어서면 생각보다 넓은 홀에 음악 카페다운 분위기가 펼쳐진다. 화요일 평일의 비교적 이른 시간이라 손님은 우리밖에 없고 공연 없이 음악만 들었지만 우리의 데이트를 마무리하기에 충분히 낭만적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전인권의 옛 앨범 사진이 붙어 있어 반가운 마음에 전인권의 '그것만이 내 세상'과 '사랑한 후에'를 연이어 신청해 들었다. 다음 기회에 이곳에서 라이브를 들으면 참 좋을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데킬라 한 잔에 치즈 안주, 피곤한 눈으로도 내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함께 음악에 취하고 술에 취해주는 고마운 우리 남편, 그동안 속상했던 마음에 큰 위로가 된다. 남편이 조기 퇴근까지 하며 나를 불러내어 밥 사주고 술 사준 이유가 있다. 지난 금요일에 학부모 한 명에게 폭탄을 맞은 내 맘을 달래주기 위함일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당해도 내 가족이, 내편이 당하는 건 못 참는 게 우리네 정서 아닌가. 나이 먹어서까지 일하는 것도 안쓰러운데 나이 어린 학부모에게 안 들어도 될 소리를 들은 아내가 안타까웠겠지. 이렇게 남편에게 기대어 힘을 내어본다. 남편과의 신포동 데이트, 변함없이 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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