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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Feb 26. 2024

사랑하니까 무리한다

《저 청소일 하는데요?》의 김가지의 신간《다 똑같이 살 순 없잖아》

봄, 여름, 가을에는 거의 매일 아침 동네 청량산 등산(집에서 왕복 1시간 30분 소요)을 하는데 겨울에는 해가 늦게 뜨고 춥고 눈오고 미끄럽다는 등 여러 이유를 대가며 아침 운동을 거른다. 그러다가 몸이 찌뿌둥하거나 너무 무겁게 느껴지면 '이러면 안되지' 하며 집을 나선다. 오늘 아침이 그랬다. 게다가 한 주의 시작인 월요일인데 마음이 심란해서 정돈이 필요했다. 그럴 때 산책만한 게 없지 하며 남편 출근하는 것도 보지 않고 혼자 산에 올랐다. 이어폰을 준비해서 음악을 들을까 했는데 유튜브에서 책 소개를 듣는다. 산책을 가기 전에도 책을 읽고 있었는데(은유의 《해방의 밤》을 읽다가 《아침의 피아노》를 구입해 읽고 있다) 산을 오르면서도 또 책 얘기다. 이동진이 소개하는 책《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에 호감을 갖다가 은유가 <세바시 인생질문>에서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살면서 어려운 문제를 만날 때마다 나는 책이 있어 힘이 되었고 든든했다. 우리 두 아들에게도 이런 내 맘을 제대로 전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게 쉽지 않다. 책 읽으라는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책을 읽게 하는 건 어렵다. 아들들에게 얼음을 깨는 도끼와 같은 책을 권하고 싶다는 마음에 20대 독서 추천 유튜브를 찾아 들었다.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 《니체의 말》,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를 담았다.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까.


문득 책장에 꽂혀 있는《다 똑같이 살 순 없잖아》가 생각났다.《저 청소일 하는데요?》(2019)로 유명해진 김예지의 신간으로 작년에 서평 의뢰가 와서 읽었던 책이다.《저 청소일 하는데요?》를 읽어보진 않았지만 알고는 있었는데 또 책을 냈다니 궁금했다. 청소일 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글도 쓰는 사람! 특이하기도 하고 매력적이기도 하다. 언제쯤 나다운 글로 두 번째 책을 낼 수 있을까 두리번거리고 있던 터라 내 수준에서 넘볼 수 있는 - 인문학이나 소설 부분의 중견 작가가 아니라 책을 몇 권 내지 않은 새내기 작가라는 의미에서 - 작가의 신간 소식은 샘도 나면서 자극이 된다. 책을 받고나서 김가지라는 필명을 쓰는 작가 김예지가 34살이라는 걸 알았다. 젊어서 또 부러웠다. 



김가지는 신문 배달, 야쿠르트 아줌마, 보험 설계사, 서빙 알바 등을 하면서 노동으로 잔뼈가 굵은 61년생 엄마 노승희와 청소업을 한다. 청소를 하면서 돈을 벌고, 그렇게 해서 생긴 여유로 자신이 하고 싶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현명한 엄마가 권한 바다. 물론 모든 엄마가 노승희처럼 쿨하지는 않다.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20대 젊은 딸에게 청소를 해보지 않겠냐고 권하는 엄마는 드물다. 김예지 같은 딸도 흔치 않다. 젊디 젊은 아가씨가 더러운 걸 손에 묻혀가며 남들 시선 상관없이 청소일을 하겠다고 나서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과정이야 어찌됐건 이 모녀는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지금은 꽤 안정된 생활을 하며 자신들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모녀의 모습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불행을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랑하지 않으면 절대 그 누구도 무리하지 않는다는 걸 이제 알기에… 엄마에게는 늘 조금 무리하고 싶다. (p.49)

관계에는 노력이 필요하단 걸 알면서도 엄마와의 관계는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다. 엄마의 수많은 노력이 기반 된 관계를 나 혼자 신나게 마음껏 누리고 있었다.  (p.66)

생각해 보면 '소중하다고 깨닫게 되는 것들'은 언제나 곁에서 조용히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있다. 사람도 물건도 경험도 모두 말이다. (p.75)

이제 우리는 싸움이 일어나도 겁내지 않는다. 여전히 순간의 감정을 가식 없이 내뱉긴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각자의 마음을 더 깊이 헤아릴 수 있는 대화가 기다리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로의 내면을 더 깊이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온다는 걸 안다. 이런 우리에게 싸움이 뭐 그리 대수겠는가. (…)
그래서 여전히 엄마와 나는 '잘 싸우는 사이'다.(p.164)

누군가에게 말하기 낯부끄러운 '싫은 것들'을 언제나 들어주고 공감해줄 것 같은 든든함.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이 지질함을 혼자 숨기고 숨기다가 결국 털어놓게 되는 해소감. (p.201)


내 체력의 한계를 넘어 무리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생각해보니 내가 사랑하는 일을 잘 하기 위해, 사랑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무리하는 마음이 들었던 거다. 힘들다고 짜증내지 말고 사랑이 넘치는 나 자신에게 뿌듯해하기로 한다. 우리 아들들도 철이 들면 김예지처럼 엄마에게 좀 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려나, 언젠가 우리 남편이 차려주는 밥상을 받아보는 날도 오려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웃는다. 그런 날이 오지 않더라도 나는 내 맘 닿는 데까지 사랑해보기로 한다. 오늘도 난 또 무리해서 세 남자의 밥을 차리고 시간을 쪼개서 수업 준비를 하고 또 틈을 내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가족일수록 서로에 대한 배려와 노력이 필요하다. 가깝다고 예의를 지키지 않거나 가족이라고 소홀하기가 쉽다. 우리 아들은 이제 둘다 성인이다. 각자의 의견과 취향이 있다. 이제 나에게 보호보다는 존중을 요구한다. 이참에 나도 아들들에게서 독립해보려고 노력 중이다. 그리고 항상 내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남편에게 더 친절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나이가 들수록 안쓰럽고 걱정되고 애틋하다.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을 때 김예지 곁에 따뜻하고 씩씩한 엄마가 있었기에 이 모녀는 지금의 행복이 있다. 그걸 깨달은 딸은 엄마가 애틋할 수밖에. 우리 가족에게는 김예지의 엄마 같은 내가 있다! 든든하겠지? 


'잘 싸우는 사이'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사람 관계는 서로 의견이 같거나 기분이 좋을 때는 문제가 없지만 의견 충돌이 일어나거나 한쪽이 기분 상해 있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무척 중요하다. 안 싸우고 살 수는 없다. 싸우면서 서로를 더 알아가고 인정하게 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으면 더없이 좋다. 어느 한쪽은 품이 넓어야 가능하다. 내 마음의 크기를 생각해본다. 우리 가족이 나에게는 속내를 털어놓고 든든해하고 후련해할 수 있으려나. 이런 책을 읽으며 나는 가족에 대해, 엄마의 역할에 대해, 그리고 우리 아들들의 미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책 덕분에 나는 지금보다 더 좋은 엄마와 아내, 그리고 좀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갈 것이다. 


김가지(김예지)의 책 《다 똑같이 살 순 없잖아》는 엄마에게는 딸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딸에게는 엄마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2,30대 딸을 둔 엄마라면, 지금도 고생하는 엄마를 둔 딸이라면, 서로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나는 엄마라서 이 책을 읽으며 젊은 우리 아들들의 마음을 가늠해 봤다. 그리고 가족에게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도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아무튼 나는 오늘도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조금 무리했다. 아, 피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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