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인생책, 존 윌리암스『스토너』
이 소설에 대해선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나는 제대로 시작조차 할 수 없다. 그저 이 소설은 '인생의 무엇'이 아니라 '인생의 인생'에 도달했다고만 적자.
(…)
나는 스토너가 죽어 이야기가 멈출 때까지 이 소설을 따라 읽는 것 말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p.425 부록 중에서
스토너의 삶은 뜻밖의 '기회'와 그에 따르는 '대가'에 언제나 공평하게 점령당한다. 그런 그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삶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기대'와 '실망'의 총합은 결국 0이다. 이 계산 과정은 경이롭도록 정확해서 어떤 아름다움에까지 이른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스토너』를 읽고' 중에서
스토너는 1차 세계대전 때 동료 데이브 매스터스를 잃었고, 2차 세계대전 때는 결혼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사위가 전사했다. 딸 그레이시는 남편 없이 아들을 낳았다. 학문적 동료이자 연인이었던 캐서린 드리스콜과 이별한 후에도 그의 생활은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 캐서린이 쓴 책에서 자신에 대한 헌사를 발견하는 부분은 영화 <타인의 삶>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그는 종양이 발견되어 수술을 앞두고 40년 동안 몸 담았던 대학에서 퇴직했다. 그리고 수술 후에 다른 치료는 거부한 채 집에서 조용히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삶은 다른 이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고독, 슬픔, 사랑, 이별, 상실, 병 등을 경험하며 일생을 자기답게 살았다. 신기한 건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스토너의 인생이 꽤 오랫동안 가슴에 묵직하게 남아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가 진짜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스토너의 삶을 슬프고 불행한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의 삶은 아주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나은 삶을 살았던 것은 분명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일에 어느 정도 애정을 갖고 있었고, 그 일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도 했으니까요.
- 작가가 인터뷰에서 했다는 말 -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서 그 일에 어느 정도 애정을 갖고 있고, 그 일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논술쌤으로서, 읽고 쓰는 사람으로서, 비교적 나는 그런 것 같다. 그렇다면 나도 스토너만큼 아주 훌륭한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조금 위로가 된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의 내 삶에도 슬프고 불행한 일들이 간간히 나를 흔들 것이고 나는 그때마다 다시 중심을 잡고 앞으로 한발 한발 내딛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스토너의 이야기는 요즘 드라마나 영화처럼 화려하지도, 자극적이지도, 통쾌하지도 않지만 평범함이 주는 깊은 슬픔과 공감과 여운이 있다. 옮긴이의 말처럼 '나는 과연 내 인생에서 무엇을 기대했나? 무엇을 기대하고 있나?'하고 생각에 잠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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