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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Feb 19. 2024

김훈의 소설 《흑산》을 읽으며 술이 늘었다

순수하고 깊은 사람들의 이야기!

남편과 자주 술을 마신다. 유배지 흑산도에서 술이 늘었다는 정약전처럼 김훈의 소설 《흑산》을 읽으며 나도 술이 늘었다. 


창대는 말수가 적었다. 물고기나 나무를 들여다볼 때, 창대는 오랫동안 고요했다. 
-『소학』을 늘 읽는가?
- 가진 책이 그뿐이라서…….
-『소학』은 어떻던가?
- 글이 아니라 몸과 같았습니다. 스스로 능히 알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 그렇지. 그랬겠어.
- 그랬습니다. 물 뿌려 마당 쓸고 부르면 대답하는 일이 근본이라고 했는데, 그 분명함이 두려웠습니다.
- 아, 그랬겠구나. 그토록 쉬운 말이었구나.
- 쉬워서 겁이 났습니다.

- 늘 물고기를 들여다보느냐?
창대가 웃었다.
- 세상을 직접 대하라고 『소학』에서 배웠습니다. 섬에 책이 따로 없으니…….
맑은 소년이로구나.
창대를 부르는 날 밤에 정약전은 늘 취했다.


정약전이 흑산에서 만난 열여덟 살 청년 창대가 너무 매력적이다. 정약전처럼, 창대처럼 연기하며 그들의 대화를 남편에게 들려준다. "캬~" 남편과의 술자리에 정약전과 창대의 이야기가 좋은 안주가 된다. 흑산의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정약전과 창대가 눈 앞에 그려진다. 그들과 함께라면 흑산에 살아도 괜찮겠다 싶다. 


창대의 말은 분명해서, 물을 것이 없었다. 모르는 것을 말할 때도 창대의 모름은 정확했다. 
창대는 물을 수 있는 것과 물은 수 없는 것, 대답할 수 있는 것과 대답할 수 없는 것을 뒤섞지 않았다. 창대는 섬에서 태어나서, 서너 권의 책을 읽었을 뿐이지만 고요히 들여다보아서 사물의 속을 아는 자였다.

- 날치가 왜 날아오르는 것이냐? 무슨 좋은 일이 있는 건가?
묻고 나서 정약전은 스스로 멋쩍었다. 창대가 대답했다. 
- 그것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물 밑에 잡아먹으려 덤비는 놈들이 있을 것입니다. 허나, 무슨 일이 있는지는 날치가 아닌 다음에야…….
- 새가 되려는 것인가?
- 지느러미를 날개처럼 펼쳐서 공중에 머물지만 퍼덕거리지는 못합니다. 새와는 다르지만, 오래 저러다가 새가 될 수도 있겠지요.
- 얼마나 걸리겠느냐?
- 아하, 그야……새가 못 될 수도 있겠지요.

물음이 될 수 없는 것들을 정약전은 묻고 있었다. 정약전은 창대 앞에서 점점 아둔해져가는 자신을 느꼈다. 날고 싶고, 날아서 뜨고 싶고, 떠서 땅의 속박을 벗어나려는 소망은 물고기에게도 있는 모양이었다. 그 소망이 수만 년 동안 날치 떼를 솟구치게 하는 것이리라.
창대는 대답할 수 없는 것들은 대답하지 않았고 다만 들여다보았다. 


남편과 나는 싼 안주에 소주를 마시며 창대의 이야기를 즐긴다. 돈 버는 일과는 멀찌감치 떨어진 그의 이야기가 한없이 편안하다. 남편은 내 이야기에 휴식을 취하는 것 같다. 흑산의 맑은 청년 창대의 이야기에 우리는 잠시나마 현실을 잊는다. 흑산의 물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경상도 청어는 등뼈가 일흔네 마디이고 전라도 청어는 등뼈가 쉰세 마디라고 창대는 말했다. 

- 그것을 어찌 알았느냐? 청어가 고향이 있다더냐?
- 멀리서 온 어부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 어부들이 그것을 알더냐?
- 모르기에 고향에 가서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다음에 올 때 어부들이 제 고장 물고기를 소금에 절여서 몇 마리씩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헤아려보았습니다.

정약전은 놀라서 창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창대는 언제나처럼 고요히 웃고 있었다. 


김훈의 소설 《흑산》을 읽으며 나는 18세기 흑산에 있다. 정약전과 창대 사이에 앉아 함께 바다를 바라보며 그들의 대화를 듣는다. 참 좋다. 


김훈 장편소설 『흑산』을 꽤 오랫동안 읽고 또 읽었다. 18세기 조선에서 일어난 천주교 탄압이 주된 이야기다. 정약전의 『자산어보』 탄생 과정을 짐작할 수 있다. 실존 인물과 허구적 인물들이 섞여 있다. 김훈이 책의 '일러두기'에서 말한 것처럼 이 소설 속의 인물들은 누구도 온전한 실존 인물이 아니며 이 인물들의 허구성 또한 온전하지 못하다. 


후기
피 흘리며 나아간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괴로워하며

나는 말이나 글로써 정의를 다투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다만 인간의 고통과 슬픔과 소망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나는, 겨우, 조금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이나 글로써 설명할 수 없는 그 멀고도 확실한 세계를 향해 피 흘리며 나아간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또 괴로워한다. 나는 여기에서 산다. 

늘, 너무나 많은 말을 이미 해버린 것이 아닌지를 돌이켜 보면 수치감 때문에 등에서 식은땀이 난다. 이 책을 쓰면서도 그러하였다. 혼자서 견디는 날들과, 내 영세한 필경의 기진한 노동에 관하여 아무 말고 하고 싶지 않다.

2011년 가을에
김훈은 쓰다

『흑산』 후기 중에


영세(零細,작고 가늘어 변변하지 못함)한  필경(筆耕, 붓으로 농사를 대신한다는 뜻으로, 직업으로 글이나 글씨를 씀)의 기진(氣盡,기운이 다하여 힘이 없어짐)한 노동이라고 표현한 김훈의 글쓰기 덕분에 나는 인간의 고통과 슬픔과 소망에 대해 겨우, 조금 느낄 수 있었다. 


좋은 소설을 읽고나면 항상 가슴이 뜨거워진다. 결국 김훈의 글을 또 읽고 싶어 『흑산』을 다 읽기도 전에 『칼의 노래』를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15년 전 읽었던 『칼의 노래』는 또 얼마큼 나를 뜨겁게 달굴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울음은 질겼다. 몸의 깊은 곳이 흔들리면서 울음이 퍼져 나왔다. 앞선 울음이 아직 울어지지 않은 울음을 이끌어냈고 잦아드는 울음이 한 굽이 휘어졌다가 다시 일어섰다. 울음은 추슬러지지 않았다. 질긴 울음 속에서 오동희는 우물 밑 땅속으로 뻗은 길을 따라서 이 너머 세상으로 가는 통로가 열리는 환영을 느꼈다. 우물에 몸을 던져 죽은 딸이 그 길을 따라서 저쪽으로 가고 있었다.

p.311~312


우물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은 딸을 생각하며 어미가 우는 울음이다. 가장 아픈 울음이다. 글이 운다. 읽는 나도 울었다. 글로써 18세기의 오동희와 21세기의 내가 한 자리에서 함께 운다. 김훈이 만들어 준 자리다.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 대한 소설의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흑' 자와 '자' 자의 차이를 설명한 이 부분에서 언어의 섬세함을 느꼈다는 것이 내게는 중요하다. 한 부모에게 태어난, 그만그만하게 생긴 형제자매도 성격이 다 제각각이다. 비슷한 의미가 있는 글자들도 각기 다른 느낌을 품고 있다는 것이 신비롭다. 김훈의 표현이 놀랍다. 나는 글을 쓰며 이 글자들의 다름을 어느 정도 느끼고 얼마큼 표현할 수 있을까. 


정약전은 흑산의 검을 흑 자가 무서웠으나, 무서움은 섬에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흑 자의 무서움은 당대 전체에 대한 무서움과 같았다. (···)

흑산에 대한 무서움 속에는 흑산 바다 물고기의 생김새와 사는 꼴을 글로 써야 한다는 소망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물고기의 사는 꼴을 글로 써서 흑산의 두려움을 떨쳐낼 수도 없고 위로할 수도 없을 테지만, 물고기를 글로 써서 두려움이나 기다림이나 그리움이 전혀 생겨나지 않은, 본래 스스로 그러한 세상을 티끌만치나마 인간 쪽으로 끌어당겨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물고기의 사는 꼴을 적은 글은, 사장詞章이 아니라 다만 물고기이기를, 그리고 물고기들의 언어에 조금씩 다가가는 인간의 언어이기를 정약전은 바랐다.

- 나는 흑산을 자산玆山으로 바꾸어 살려 한다.
- 같은 뜻일 터인데…….
- 같지 않다. 자는 흐리고 어둡고 깊다는 뜻이다. 흑은 너무 캄캄하다. 자는 또, 지금, 이제, 여기라는 뜻도 있으니 좋지 않으냐. 너와 내가 지금 여기에서 사는 섬이 자산이다.
- 바꾸시는 뜻을 잘 모르겠습니다.
- 흑은 무섭다. 흑산은 여기가 유배지라는 걸 끊임없이 깨우친다. 자玆 속에는 희미하지만 빛이 있다. 여기를 향해서 다가오는 빛이다. 그렇게 느껴진다. 이 바다의 물고기는 모두 자산의 물고기다. 나는 그렇게 여긴다.
- 그쪽이 편안하시겠습니까?
창대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p.336~338


흑산도에서 정약전과 창대의 대화는 현실과 멀어서 더욱 아름답다. 정약전의 순수한 깊음이 좋다. 창대의 깊은 순수가 더욱 좋다. 『흑산』을 읽으며 정약전과 창대의 매력에 푹 빠졌다. 소설 속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처럼 살고 싶어 몸살이 난다. 


-창대야, 숭어가 왜 물 위로 뛰는 것이냐?
-아마도, 물 밑에 뭐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온 바다에서 저렇게 한꺼번에 뛸 수가 있을까?
-알 수 없지요. 놀이가 옮겨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의 웃음처럼 말입니다.
-창대야, 숭어 피부의 무늬는 왜 저러하냐?
-숭어가 헤엄쳐가면서 부딪친 물살의 무늬일 것입니다. 그 피부 밑의 살의 무늬와 결도 그와 같습니다.
-그렇겠구나. 어찌 그럴 알았느냐.
-칼로 숭어의 살을 헤쳐보고 알았습니다. 부딪친 무늬였습니다.

-창대야, 물고기의 콧구멍은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냄새를 맡겠지요. 아마 그럴 겁니다.
-안쪽이 막혔는데, 어찌 냄새를 감지할 수가 있겠느냐?
-그 막힌 안쪽에서부터 골로 통하는 길이 있을 것입니다.
-물속에서 냄새가 오겠느냐?
-냄새는 공기 속으로 오지만 물속으로도 올 것입니다. 그러니까 콧구멍이 앞으로 뚫렸겠지요.
-물고기의 콧구멍은 벌름거리느냐?
-숨을 쉬지 않기 때문에 벌름거리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물이 드나듭니다.
-물고기는 어떤 냄새를 맡느냐?
-알 수 없지요. 물고기가 맡은 냄새를 사람이 맡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사람의 말로써 말할 수 없겠지요.
-그렇겠구나. 네가 물고기의 말을 배우려느냐?
창대는 대답하지 않고 웃었다. 

p.339~343


나이, 신분에 상관없이 궁금한 것을 묻고 알고 있는 것을 답하고 알지 못하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이들의 대화가 내 마음에 오래 남는다. 입으로 소리내어 이들의 말을 흉내낸다. 순수하고 깊은 사람이 되어 깊고 순수한 누군가와 오랫동안 이야기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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