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살아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사랑할 뿐.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알게 된다. 한 달 전쯤 동네 CGV에서 영화 <프렌치 수프>를 보고왔다. 평일 한낮에 혼자 영화관에 갈 수 있는 여유가 감사했고, 내 취향에 딱 맞는 영화를 볼 수 있어 행복했다. 프랑스에 가본 적도 없고 당연히 프랑스 음식에 대해 아는 바 없지만 스크린에서 완성되는 프랑스 요리는 아름다웠고 궁금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나 우리나라 동명의 영화에서 느꼈던 정성스러운 요리의 매력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거기에 중년의 사랑이 더해지니 이 영화에 빠져들 수밖에...
내가 대학 1학년 때 개봉한 <퐁네프 연인들>(1991)의 줄리엣 비노쉬, 64년 생 그녀가 우아하게 나이든 모습을 보는 것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게다가 함께 연기한 남자 주인공 브누아 마지멜이 줄리엣 비노쉬와 20년 전 실제 부부 사이였다는 사실은 놀랍기도 하고 흥미로웠다. 그래서인가. 두 사람은 20년 우정을 나눈 친구이자 연인 사이라는 영화 속 설정이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외제니와 도댕, 두 사람은 요리로 20년 우정을 나눈다. 그들의 요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최고로 꼽힐 정도로 유명해졌다. 요리를 할 때 두 사람은 가장 열정적이고 조화롭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 모두에게 인정받지만 자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태도는 이들을 빛나게 한다.
내 직업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논술쌤이어서인지 재능있는 아이를 가르치는 두 사람의 모습에 집중하게 되었다. 스승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는지 생각했다. 우리 학생들에게 나는 어떤 선생님으로 비춰질지 궁금해졌다. 아무튼... 부끄럽지 않은 스승이 되려면 더 많이 공부하고 더 성실하게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언제까지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끝까지 수업 시간에 최고의 에너지를 쏟아내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요리 영화이니만큼 <프렌치 수프>를 보는 내내 갖가지 진귀한 요리를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허기진 상태라면 입안에 침이 고일 수밖에 없다. 평소 먹던 음식이 아닌, 최고의 요리사가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든 요리를 하나하나 먹는 기분은 어떨까. 내가 계획한 대로 남편과 조용한 지방에 가서 살게 되면 나도 소중한 사람들에게 오래오래 준비한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 물론 누군가 날 위해 그런 요리를 해준다면 그야말로 황홀할 것 같지만 글쎄... 그런 날이 올까.
외제니에 대한 도댕의 사랑은 오래오래 시간과 정성을 들인 요리처럼 품위가 느껴진다. 쉽게 만나고 헤어지고 잊고 잊히는, 그런 가벼운 사랑이 아니다. 20년을 함께 지냈지만 아픈 외제니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조심스레 청혼을 하고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는 도댕의 표정과 태도는 젊은이들이 흉내낼 수 없는 무게와 깊이가 있다. 우정과 사랑이 지속되려면 서로에 대한 존중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각자 자존감을 잃지 않고 삶에 대한 태도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맛있는 요리만큼이나 사랑을 지키는 데에도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제니를 잃은 도댕의 상실감과 눈물에 나도 함께 울었다. 우리 남편은 내가 먼저 떠나면 도댕처럼 슬퍼할까. 얼마 전에 언니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서인지 '죽음'이 남일 같지가 않다. 우리의 마지막이 언제일지, 어떤 모습일지 알 수 없다. 그저 살아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사랑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