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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을 위한 소설 『내게 남은 스물 다섯 번의 계절』

"가장 중요한 그 언젠가는 언제나 지금이다."

by 유쾌한 주용씨

내게는 몇 번의 여름이 남아 있을까? 독일 작가 슈테판 세퍼의 소설「내게 남은 스물 다섯 번의 계절』을 읽고 왔다. 작가가 74년 생이다. 내 나이와 비슷하니까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추측했다. 그렇다면 내 인생에 도움이 될 법한 이야기가 담겨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나태주 시인을 비롯해 추천사도 거창했다. 교보문고로 달려가 몰입 독서로 3시간 만에 완독했다. 잘 읽혔고 공감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좋은 문장은 독서노트에 적어놓기도 했다. 딱 거기까지. 놀랍도록 새롭거나 도끼 같은 자극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훈훈한 소설이었다.


내가 인생을 다시 한번 살 수 있다면, 다음 생에서는 실수를 더 많이 하고 싶다. 더는 완벽해지려고 하지 않고, 더 느긋하게 지낼 것이다. 지금까지보다 조금 더 정신 나간 상태로, 많은 일을 심각하지 않게 여길 것이다. 그다지 건강하게만 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더 많은 모험을 하고, 더 많은 여행을 하고, 더 많은 해넘이를 바라보고, 산에 더 많이 오르고, 강을 더 자주 헤엄칠 것이다. 나는 매 순간을 낭비 없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똑똑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다. 물론 즐거운 순간도 있었지만,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순간의 아름다움을 더 많이 누리고 싶다. 삶이 오로지 아런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당신이 아직 모른다면 지금 이 말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다시 한번 살 수 있다면 나는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맨발로 다닐 것이다. 생이 아직 남아 있다면 아이들과 더 많이 놀 것이다. 하지만 보라……. 나는 이제 85세이고, 곧 죽으리라는 걸 알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죽기 얼마 전에 쓴 글
「내게 남은 스물 다섯 번의 계절』 중에서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난 죽을 때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두려울까, 아쉬울까, 억울할까, 무엇이 가장 후회스러울까 등등. 그런 생각 끝에는 항상 오늘을 잘 살자, 후회없이 하고 싶은 거 최대한 많이 해보자, 아빠와 큰언니처럼 병 걸리지 않게 건강 관리 해야지, 너무 욕심부리지 말고 평화로운 노후를 준비하자 등등 많은 다짐을 하게 된다.


900%EF%BC%BF1750728906877.jpg?type=w966 독서노트 1.


우리 가족에게 궁금한 것들, 각자 생각해보면 좋을 것들을 질문으로 만들어 선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해오며 50대 중반에 들어선 남편, 영화를 좋아해서 전역 후 영화관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유로운 영화 마니아로 살고 있는 큰아들, 재수까지 했지만 원하는 대학에 입학은 하지 못하고 입대를 선택해 올해 말 전역을 앞둔 작은아들, 그런 세 남자를 사랑하며 그들의 행복을 빌고 있는 '나'에게 각자의 인생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줄 수 있는, 그런 노트를 만들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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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선택할 때 이 네 가지를 묻자. 그것이 나에게 사랑과 평화를 주는지, 기쁨과 힘을 주는지, 자유와 자율을 주는지, 휴식과 안정을 주는지.


나는 경쟁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더라고요. 세상의 중심에 서고 싶은 사람은 더더욱 아니고요.
(…)
맑은 공기 속에서 매일 똑같이 평화롭게 해나가는 일들이 나에게 평온과 확신과 힘을 주었어요.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내 미래는 어디로 가는지, 고향이 나에게 무엇을 주는지 알게 됐어요. 위에 하늘이 있고 아래에 밭이 있다면 내 세상은 전부 괜찮아요.

「내게 남은 스물 다섯 번의 계절』 카를의 말 중에서


인생에서 성공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 주인공에 비해 가진 것이 많지 않은 노년의 카를은 건강하고 자유롭고 단단해 보인다. 자신의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지 확실하게 아는 자의 당당함이다. 자신을 지탱해주는, 튼튼한 루틴대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자의 여유로움이다. 삶의 철학과 일상의 루틴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내게는 몇 번의 계절이 남았을까? 남편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언제까지일까? 우리 두 아들 몇 살이 될 때까지 내가 곁에 있을 수 있을까? 내가 소망하는 것들을 죽기 전에 얼마큼이나 이룰 수 있을까? 알 수 없지만, 그리 길지는 않을 것 같은 내 남은 인생이 무척이나 애틋하다.


나에게는 스물다섯 번의 여름이 남아 있다. 가장 중요한 그 언젠가는 언제나 지금이다. 더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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