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스물넷째 날, Ponferrada
덜 마른 신발을 신고 오늘도 걷기로 했다. 이 정도 꿉꿉함에 택시는 사치지.
아기자기한 마을을 지나 우린 다시 산속으로 들어왔다. 이제는 하산이다!
한참을 신나게 뛰어 내려가다가 탁 트인 전경에 걸음을 멈췄다. 와, 예쁘다~ 카메라를 켜 사진을 찍고 있을 때 마을의 지붕들이 남색인 걸 보고 번뜩 생각이 났다. 요한 오빠가 했던 말이! 순례길 중간부터 마을 지붕의 색깔이 주황색에서 남색으로 바뀔 거라고 했었는데, 진짜네!
몰리나세카는 정말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녹색의 나무들과 남색의 지붕들, 그리고 그것들을 반사시켜 비추는 강물에서 오묘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내가 지나온 수십 개의 크고 작은 마을들 중 아름답기로 손꼽을 수 있는 마을이었다.
이곳에 좀 더 머물고 싶어서 아침을 먹고 가기로 했다. 경치가 좋아 보이는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다. 신디와 독일 여자도 이곳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다. 올라!
어제 먹은 송아지 샌드위치 맛이 좋아서 이곳에서도 송아지 샌드위치를 시켰다. 처음 음식이 나왔을 땐 바게트 빵에 고기 덩어리뿐이어서 8유로나 내고 눈탱이 맞은 것 같아 아침부터 기분 상했다. 그런데 정말로 한입 먹자마자 눈이 튀어나왔다. 태어나서 먹은 고기 들어간 샌드위치 중에 제~일 맛있었다. 세상에..
몰리나세카에서부터 한 시간 반을 걸어 도착한 오늘의 목적지 폰페라다. 오늘 묵을 숙소는 순례길 첫 기부제 알베르게로 부르고스의 디비나 알베르게와 다르게 본인의 의사에 따라 숙박비를 지불하면 되는 곳이었다.
도보로 왕복 1시간 거리에 있는 데카트론에서 우비도 사고, 8일 만에 만나는 민지와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
벤치에 앉아 그동안 밀린 이야기들로 한바탕 깔깔 웃다가 조금씩 떨어지는 빗방울에 우리는 방으로 들어갔다. 다시 또 내일을 준비해야지.
주섬주섬 옷가지들을 정리하고 있을 때, 옆 침대에 자리를 잡은 프랑스 할머니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는지, 몇 살인지, 그리고 왜 순례길을 걷고 있는지. 가만히 우리의 대답을 듣고 있던 그분의 입가의 미소가 지금도 기억이 난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12.07.18 폰페라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