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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진 Nov 30. 2019

KM 100 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 순례길




서른째 날, Portomarín



이른 새벽부터 사리아를 향해 달리는 기차


    기찻길을 지나 한적한 시골길을 걸을 무렵 맞은편에서 현지 아이들 일고여덟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여느 때와 같이 반갑게 아침 인사를 건넸는데, 그들 중 두 명이 내 앞에 멈춰 섰다. 그러고는 말을 하지 못한다는 제스처와 함께 대뜸 종이 한 장을 들이밀었다. 어눌한 말소리로 정신없는 와중에 'Donation'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고, 그 밑으로 개인정보를 적는 칸이 보였다.

아이는 꽤나 열심히도, 그 와중에 말을 하지 못함을 어필하며 내게 설명을 했다. 기부를 하란다. 내 이름과 출신나라, 순례길을 시작한 도시명과 함께 기부금액을 적으란다. 하, 이거 이상한데.. 뒤를 돌아 지영이를 찾았지만 지영이는 다른 아이들에게 가려 보이지 않았다.


나는 돈을 내지 않을 거라고 고개를 저으며 지영이가 있는 곳으로 갔다. 지영이는 내게 지갑을 꺼내 달라고 했고, 지영이가 돈을 꺼내는 걸 보면서도 나는 그저 긴가민가했다. 아휴 참..

그렇게 기어이 20유로를 받아낸 지영이 담당 무리들은 벌써 저 멀리 떠났고, 나를 담당했던 이들은 한번 더 내게 질척대다가 돈을 받아 내지 못하자 욕을 하며 침을 뱉고 갔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발 빠르게 도망가는 그들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라데이션으로 차오르는 황당함에 씩씩대며 길을 걷다가 미국 남자 스탠퍼드와 네덜란드 여자를 마주쳐 그들에게 하소연을 했다.


"돈을 안 줬더니 침을 뱉더라니까?!"

"뭐? 침을??!! 진짜 나쁜@#$!@#이네!!"


열 받아, 아오!!!!!


Mirador da Brea. 크루아상, 커피 2.80


열 받는 건 열 받는 거고, 배는 채워야 하기에 들린 카페. 이곳에서 생장에서 봤던 독일 여자와 말티즈를 다시 만났다. 뽈뽈대며 가게 안을 돌아다니는 걸 보니 여전한 것 같았다. 보호자를 쫓아 화장실 문틈으로 냅다 몸을 꽂아 낑낑대는 해프닝도 있었다. 강아지 한 마리가 주위 사람들의 입꼬리를 들었다 놨다.


말로만 듣던 순례길 행진이 시작됐다.


이제껏 성수기임에도 꽤나 한적한 순례길을 걸어왔다면, 사리아부터는 사람으로 꽉 찬 순례길을 걷게 됐다. 한국에서 상상했던 순례길은 이렇게 북적거리는 모습이었는데 피레네 이후로는 한적함 그 자체였지.


다들 무슨 이유로 걷는 걸까. 이 사람들도 나처럼 다른 이들의 이유를 궁금해할까. 내가 순례길을 걷는 이유를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내겐 이 여행을 포장할만한 특별하고 대단한 이유 따윈 없는데. 그런 이유가 없어도 괜찮나?


괜찮지. 그렇지. 이게 뭐라고.


도네이션 식당. 간단한 음식과 과일, 음료들이 차려져 있다.


Tienda Peter Pank. 산티아고 도착 전 마지막으로 라면을 살 수 있다는 곳.


포르토마린에 다와 갈 때쯤 두 갈래 길이 나온다. 나는 'Historico'길을 걸었다.


다리만 건너면 도착하는 포르토마린. 강물 위로 길게 뻗은 다리 때문인지 마을이 참 멋있어 보인다.


Albergue Ultreia. 숙박 10€.


O Mirador. 순례자 정식 10€.


야외수영장 경치가 끝내준다~ 무료개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v^^ 쁘이


Km 100 Camino de Santiago
하루하루 채워온 크레덴샬에 어느새 뒷페이지를 채우고 있는 걸 보니 정신없이 지나간 기억들이 추억으로 남았다는 게 와 닿았다.
두 번 다신 오지 않을 거라며 아쉬움 따위 남기지 않고 걸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 길을 다시 걸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다 같은 순례자이기에 가능했던 모든 것들, 길 위에서의 즐거움이 생각날 때 그때 다시 걷지 않을까? :) 18/07/18




18.07.18 포르토마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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