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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진 Dec 18. 2019

안녕, 나의 까미노

산티아고 순례길




에필로그




완주


이렇게 해서 나의 산티아고 순례길은 끝이 났다.

이번 여행의 완성은 브런치에 글을 남기는 것이었다. 막연히 '글 한번 남겨봐야지.' 생각만 하던걸 드디어 마무리지었다. 사실 준비가 덜 됐다는 이유로 써놓은 글들을 미루고 미루다, 다녀온 지 일 년 뒤에 업로드를 시작했다. 나는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요한 일들을 곧잘 회피하는 도망치기 달인이었다.

그래서 내 인생에 완주의 성취감을 맛본 게 언제 적인지 까마득하다. 따라오라는 대로 따라갔던 고교시절을 끝으로 크고 작은 실패와 방황만이 나라는 사람을 뒤덮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 여행이 더 특별했고,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후기


그래서? 다녀오니 어땠어?

순례길 여행기에서 가장 궁금한 건 그 이후의 이야기일 것 같다. 결론은 순례길을 다녀와서도 나는 방황했다. 무력했고 어떠한 것에서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시간이 흐르는 대로 나를 흘려보냈던 것 같다.




순례길이 남긴 것


좀 더 단순하게 나를 바라보기

그러다 찾은 결론이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인생의 모든 시간을 완벽하고 무결점 하게 살아온 사람은 없다는 걸 다녀온 지 몇 달을 보내고서 어느 날, 문득, 깨쳤다. 사람이니까. 나도 사람이니까. 사람이어서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건데. 나는 왜 이런 나를 견디지 못하겠다고 울고만 있었을까. 결점 하나하나에 얽매이지 말고 좀 더 단순하게 나를 보자. 나는 생각보다 엉망이지 않고 생각보다 약하지 않다.


지나간 순간들

운동으로 한 여행이라서일까. 순례길 사진과 영상에는 건강한 순간들이 묻어있다. 내디딘 발걸음과 맺힌 땀으로 기억되는, 내 몸과 정신이 기억하는 건강함이 있다.

지금의 나는 내가 남긴 지나간 순간들로 간간이 위로받고 있다.


현재에 집중하는 삶

지금 흐르는 땀을 닦고, 지금 고픈 배를 채우고, 지금 느끼는 즐거움에 웃음 짓는, 순례길에서의 시간은 오직 '지금'에 맞춰져 있었다. 현재에 집중하는 삶이 얼마나 건강한 삶인지, 과거도 미래도 중요하지 않은 길에서 나는 자연스레 후회도 불안도 잊어갔었다.

지금의 나는 예고도 규칙도 없이 밀려드는 후회와 불안을 붙들어 매고 현재에 집중하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순례길로는 연습이 덜 됐나 보다.


잊고 있던 것

작은 것들을 쌓아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 그 작은 것들을 쌓는 끈기는 내가 꽤 오랜 시간 잊고 있던 것 중 하나였다.

덥고 아프고 웃음 짓던 35일, 그 속에서 조금씩 피어오르던 인내와 끈기. 그것들이 선물한 성취감이 얼마나 달콤한 것인지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아주 오랜만에 맛봤었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기억을 벗 삼아 또 다른 것을 위해 작은 것들을 쌓아가고 있다.




브런치에 여행기를 올리면서 느낀다


그때 만약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만약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았음에 겁을 먹고 또 미뤘더라면, 글을 준비하면서 느낀 이 소소한 즐거움은 없었을 것이다.

내 인생에 더 이상 완벽한 준비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완벽하게 준비된 경우도 없었다.) 생각해보면 일단 시도한 것에서 얻은 것들이 훨씬 많았다. 내가 원하는 것들은, 나를 만족시키고 나를 고무시키는 것들은 일단 시도함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순례길도 체력이 단련된 상태로 떠나야 할 것 같아서 틈틈이 운동을 해보려 했지만.. 개뿔, 저질 체력으로 그냥 떠났다.)







뜨거웠던 스페인의 여름, 지쳐있던 내게 삶 속 깊고 진한 성취를 안겨 준 나의 까미노. 특별한 곳에서 특별한 경험을 함께한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준 나의 까미노.


    안녕, 나의 까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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