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서른다섯째 날, Fisterra
스페인 최서단 피스테라에 가는 날. 피스테라가 우리의 순례길 마지막 일정이다.
숙소 앞 정류장에서 십 대 학생들에게 고속버스정류장으로 가는 방법을 물었다. 옆에 있던 할머니도 가세해 학생들과 함께 정류장 가는 버스를 상의하셨다. 스페인어로 대화하는 이들을 눈치껏 살펴보니 고속버스정류장으로 가는 두 개의 버스가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같은 정류장에 도착하는 거 맞지요?
파란 버스 한 대가 도착하자 학생들이 버스를 가리키며 할머니께서 같이 버스를 타실 거라고, 데려다주신다고 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버스에 앉자마자 나는 내릴 정류장을 검색했다. 그런 내게 할머니께선 자꾸만 말을 거시며 본인 핸드폰을 보여주셨다. 문자 메시지 화면이었는데 이걸 왜 보여주시는 건지 갸우뚱했다.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걸까 주섬주섬 번역기를 켰는데 이상하게 내가 할머니의 질문들을 알아듣고 있었다. 흠? 할머니의 핸드폰을 다시 보니 메시지들이 독일어였다.
"나는 독일 사람이야."
아~ 본인이 독일 사람임을 알려주고 싶으셨나 보다.
"저희는 오늘 피스테라에 가요."
"오, 그렇구나. 이 동네는 잘 구경했니? 나는 독일 사람인데 이곳에서 산지 30년이 넘었어. 저기 저곳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았단다."
버스 안에서 짧게 나눈 몇 마디가 다였는데 할머니께선 당신의 젊은 시절이 생각난다며 포옹으로 우릴 배웅해주셨다. 잊고 싶지 않은 고마움이 또 하나 생겼다.
순례길을 준비할 때 인종차별에 대한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았었다. 오히려 이후에 여행할 때를 걱정했었는데, 역시나 순례길에서는 노골적인 시선이나 모욕적인 언행을 겪진 않았다. 물론 내가 모르고 지나간 무시?정도 있었을진 모르겠다만, 모르고 지나간 거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한다.
나는 걸으면 걸을수록 인종이나 언어의 차이보단 다 같은 순례자라는 생각이 컸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걸 보면 인종차별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됐던 게 맞았던 것 같다. 오히려 오늘처럼 고마운 사람들을 훨씬 많이 만났다.
막 축제가 시작된 산티아고와는 다르게 이곳은 무척이나 한적했다. 끼욱끼욱 울어대는 갈매기 소리를 얼마 만에 듣는지.
지영이와 나는 바다 짠내가 은근하게 밴 알베르게에서 너구리 라면 한 사발 하고, KM 0 비석을 만나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섰다.
이제 진짜 끝났어, 순례길.
24.07.18 피스테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