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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de brunch Aug 30. 2021

12. 술 취한 아저씨는 좋은 사람

노르웨이 길이 이어준 인연

 롬을 떠나 안개로 머리를 풀어헤친 산신령의 기운이 느껴지는 빙하 폭포를 만났다. 천천히 음미하려고 도로 갓길에 차를 세웠는데 마침 옆에 기아 SUV가 주차되어 있는 집이 있었다. 혹시 피해가 갈까 조용히 폭포를 보며 숨을 한껏 들이키는 중에 통나무 집 안쪽에서 차 소유주인 아저씨가 한 손에 맥주잔을 들고 발그레한 얼굴로 나오셨다. 느낌이 왔다. 대낮부터 걸쭉하게 취해 있다니. 심성이 좋은 아저씨다, 그리고 심심해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싶어 한다는 텔레파시가. 술꾼은 술꾼을 알아보는 법.      


 아저씨는 노르웨이에 왔으니 노르웨이식 집 ‘휘떼’를 보고 가야 한다며 손짓으로 우리를 불렀다. 우리 부부는 길이 이어준 인연들을 무척 좋아한다. 실례지만 몹시 좋아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아저씨는 통나무 집 전체를 본인이 다 직접 지으셨다고 했다. 혼자서 큰 집을 안팎으로 다 지었다는 게 살짝 뻥 같기는 했지만 마당에 널려 있는 톱과 도끼, 정돈되지 않고 쌓여 있는 중장비들을 보니 우리가 외국인이라고 거짓말하는 것 같진 않았다. 집 안에는 나무 장작을 때는 벽난로, 토르와 오딘 나무 조각, 역시나 나무 조각으로 장식된 가구들과 모든 것이 나무로 만들어진 섬세한 책상과 가구들까지 아주 멋졌다. 자부심을 동방의 외국인들에게도 조금 나누고 싶어 할 만한 멋진 집이었다. 출판업 일을 하셨다는 우리 아재는 입구의 나무 현판도 다 본인이 만든 거라고 보여주셨다. “어머 이런 섬세한 글씨 조각까지 다 직접 하셨어요?”라고 물으니, “아, 그건 레이저.....;;;;;”라고 대답하실 무렵 우리의 번개 만남은 적절히 마무리되었다.      


 노르웨이는 직접 가구와 가사일을 하는 Do It Yourself(DIY)가 일상적이라고 하더니 산 증인을 만난 기분이었다. 인건비가 비싸고 도시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휘떼에 사는 사람들은 자재 운반비까지 고려해 본인이 직접 뚝딱뚝딱 만드는 것이 가장 저렴하다. 또 그래서 기술과 결과물에 남다른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정원일이든 집안일이든 수리하는 일이든 저렴한 노동력을 찾아 누군가에게 맡기는 일이 자랑인데. 노동에 대한 가치 중심이 다른 나라에 와있구나. 생각해 보면 평생 자신이 살 집을 자신이 짓는 일만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일이 또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인가, 호텔이 아닌 팜스테이나 캠핑장 등에 가면 체크인할 때 직원들이 뽀얗게 세탁되어 가지런히 접힌 침대 린넨과 베개 커버 이불 커버를 차곡차곡 쌓아서 나에게 주었다. 1박에 20만 원씩 내면 미리 세팅해줄 법도 한데, 나보고 DIY 간접 체험을 해보라는 거구나. 응, 그래. 참 고맙구나 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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