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에 신축 성당이 완공되었다. 지척에 성당이 생겼는데 모른 척 매일 성당 옆을 다니기불편하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천주교 신자였다. 친정 부모님께서도 천주교라서 천주교가 뭔지도 모른 채 자연스레 천주교였다. 그래서인지 어릴 적성당에서의 추억도 많다. 미사도 드리고 성당 정원에서 뛰어놀기도하고, 크리스마스에는 자정 미사를 드리다 잠들기도 했다. 믿음이 무엇인지 모른 채 가던 곳이었다. 그런 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성당보이콧을 선언했다. 더 이상 의무감에 가지 않으리라. 믿음이 확실해지면 가겠노라 하면서 말이다. 그러고 믿음이 확실해진적은 없었다.단지 성당 가는 게 귀찮았을 뿐.
그래도 마음 한 구석 불편해서 종종 나가기도 했는데 대부분 마음이 복잡하고 심란하여 위로받기 위해서였다. 돌아온 탕자 마냥 말이다. 그러다가도 귀찮은 마음에, 바쁜 일상에 또 외면했다. 언젠가 어린 아들 둘을 데리고 꾸역꾸역 미사에 가보기도 했는데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애들을 붙잡느라 혼을 빼다 결국 포기한 게 마지막인 것 같다. 급기야죽으면 퓨즈를 뽑은 것과 같이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영국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박사의 기사를 어디선가 읽고 신은 존재하지 않는가 의심하기에도 이르렀다.
" 엄마! 나 성당 다닐 거니까 등록 좀 해 줘."
" 응? 갑자기 성당? "
" 나 성당 다닐래.
간식도 준대.
가면 친구도 많고.
우리 반 애들 많이 다녀~"
" 으응? "
아니, 간식받으러 종교 시설에 간다는 군인도 아니고, 고작 간식이라니.. 간다고 할 때 얼른 보내야겠다 싶기도 했고, 아이가 성당에 가있는 동안 자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살짝 부풀었다.
"자모님도 성당 나오셔야 하고 봉사도 하셔야 해요."
"네? 저, 저도요?"
자유시간을 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달리 나 역시 꼼짝없이 성당에 나가게 되었다. 둘째 녀석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신앙과는 별도로 아이가 성당 안에서 교우 관계도 맺고 조용히 앉아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라 생각하고 부모인 나도 노력하자 싶었다. 가뜩이나앉아 있기 힘든 남자아이가 한 시간 이상 말도 안 하고 앉아 있는 연습만 되더라도 좋겠다는 이기적 바람에서 주일학교는 시작되었다.
성당에서는 대개 초등학교 3학년에 '첫 영성체'를 받는다. 첫 영성체란 세례를 받은 사람이 처음으로 성체를 모시는 걸 말하는데, 몇 달간의 교리를 통해 교리도 배우고 기도문도 외운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 열심히 기도문을 외우고 하얀 드레스에 면사보를 쓰고선 들뜬 마음으로 첫 영성체를 치른 기억이 있다. 그동안 성당을 다니지 않았던 관계로 아이는 5학년이 되어서야 이 의식을 치르게 되었다.
아울러 부모 교리도 시작되었다. 아이들 미션도 많지만 내가 첫 영성체를 할 때 친정 엄마도 이렇게 많은 걸 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부모 미션이 있었다. 주일 미사는 물론 평일 미사도 꼬박꼬박 참여해야 하고, 신부님과 수녀님이 진행하시는 교육에도 몇 번씩이나 참여하고, 아이와 함께 성경을 필사한다거나 다른 부모님들과 조를 짜서 성경 통독도 해야 했다. 아이만 성당에 쏙 들여보내고 자유 시간을 보내려던 나의 계획은 이렇게 산산조각 나 버렸다.
'안녕하세요, 주일학교 교사입니다. 자모님은 성경통독 조장이십니다.'
이건 또 웬일.나처럼 신앙심도 부족하고 내자유시간을 위해 아이만 보내려 했던 부족한 자모에게 조장이라니. 하느님은 내 마음을 꿰뚫어 보신 걸까?음, 가나다 순인가? 아니면 나이 순인가? 사람이 이렇게 쩨쩨해진다. 조장을 못하겠다는 별다른 구실도 없어 일단 알겠다 하고 나보다 신실하실 다른 자모님들을 카톡방에 초대했다. 믿음이 작은 신자인 걸 숨긴 채..이렇게 6명의 자모가 모여 성경 통독을 시작하게 되었다. 부끄럽게도 성경책이 없어 급히 구입했다. 구약과 신약이 함께 있는 성경도 있고 신약만 따로 있는 성경책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솔직히 말하자면 성경을 읽는 것도 처음이다.
부모교육 시간, 신부님께서 말씀하셨다.
" 모두 눈을 감아 보세요."
"..."
"신앙이 짐스러운 분들은 손을 한번 들어보세요."
망설이지 않고 손을 들었다.
"자, 이제 손 내리셔도 됩니다. 눈 뜨세요."
신부님께서는 자꾸 나를 쳐다보시는 것 같다. 너무 망설임 없이 손을 들었나? 혹시나만 든 건 아니겠지?
신부님께서는 아프리카 어느 지역, 거센 물살이 흐르는 강 건너는 이야기로 말씀을 시작하셨다. 세찬 물살을 헤치고 강을 건너기 위해 사람들은 무거운 돌덩이를 안고 강을 건넌다고 했다.신앙도 이 무거운 돌과 같다고 했다. 중심을 잡기 위해 안고 가야 할 무거운 돌.. 마치 예수님의 십자가 같은 거라고. 신앙에 대한 정확한 대답에 대한 압박감도 가지지 마라 하셨다. 혹여 내신앙이 부족해 질책이라도 당했다면(그럴 리도 없겠지만)자책감이 들었을 텐데 정답을 알려 주시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렇게 나의 첫 성경 읽기가 시작되었다. 3월의 새로움이다.
* 이 글은 동네책방 그래더북 독서 회원들과 함께하는 <쓰기 프로젝트> 중 하나의 글이며, 이 날의 주제는 <3월의 새로움 >이었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