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첫 번째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귀했던 2009년이었습니다. 영업점에 복귀 인사를 하러 가자 영업 추진을 맡고 있던 부지점장님이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이번에 복직했으니 주변에 청약 가입 안 한 친구들 좀 있겠네요. 지금은 무조건 청약을 팔아야 해요. 기대해 보겠습니다.”
청약 통장이 출시되고 이미 두어 달 지난 때여서 직원들의 지인 영업이 시들해지던 무렵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복직한 제 주변에 아직 청약을 권유할 만한 지인이 있을 것이라고 몹시 기대하는 눈치였습니다. 저 또한 복귀와 동시에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가족, 친척, 친구, 가족의 친구, 친구의 친구 등등 아는 사람을 총동원해 2만 원짜리 청약 통장을 열심히 권유했습니다. 2만 원 정도면 큰 부담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지인들도 열심히 저금을 했습니다. 당시에 출시된 청약 통장은 연 이율이 4.5퍼센트로 꽤 높은 편이어서 저축용으로도 많이 활용되었죠.
의욕이 앞섰던 저는 은행을 방문한 고객이 업무상 필요한 등본을 제출할 때면 가족들 모두 청약 통장에 가입하면 어떻겠냐고 매달리기도 했습니다. 자녀가 세 명이나 되는 고객이 은행을 방문하면 심마니가 산삼을 발견한 듯 ‘심봤다!’를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높은 금리, 부담 없는 금액, 주택청약 혜택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잘 맞아떨어진 덕분인지 고객들의 호응도도 높았습니다. 바야흐로 한 살짜리 아기도, 팔순 어르신도 1인 1 청약 통장을 갖는 시대가 열렸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요즘. 너도나도 가입을 할 만큼 인기가 높았던 청약 통장은 옛 명성을 잃었습니다. 제가 가입을 권유했던 주변의 지인들이나 고객들도 청약 통장을 많이 해지하고 있습니다. 청약 통장의 인기가 시들해진 이유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청약 통장으로는 더 이상 당첨 확률이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청약통장이 없으면 청약의 기회조차 없으니 무주택자에게는 여전히 필수 상품이지요.
무엇보다 금리 혜택이 낮아져서 저축 용도로 갖고 있을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청약 통장의 이율은 은행에서 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토교통부 장관 고시로 변동됩니다. 2009년 당시에 청약 통장에 가입했다면 4.5퍼센트의 금리를 적용받았죠. 대부분 그 금리를 고정금리로 알고 있지만, 변동금리입니다. 현재 청약 통장의 금리는 2년 이상 유지해야 연 1.8%의 이자를 받는 수준입니다.
10년 전에 비하면 금리가 절반 이상 떨어졌어요. 금리가 이렇게 내려갔는데도 아직도 청약 통장에 수천만 원의 자금을 묵혀두는 분도 있습니다. 금리가 높았던 시절만 생각해 여유자금이 생길 때마다 수시로 입금했기 때문입니다. 청약 통장의 금리가 낮아진 만큼 청약 통장 관리하는 법을 바꿔야 할 때입니다. 무턱대고 많은 돈을 쏟아부어서 자금을 묶어버리면 청약 통장의 혜택을 놓쳐버릴 수 있습니다. 사업에 필요한 자금이나 목돈이 필요해져 통장을 해지하면 오랜 기간 유지해온 청약 순위를 상실하고 말겠죠. 따라서 청약 통장의 금리가 떨어진 현재, 너무 많은 금액을 입금하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평형에 맞는 금액만큼만 유지하는 게 좋습니다. 제아무리 청약 통장이 유명무실해졌다고 해도 청약 순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입 후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입니다.
앞서도 말했듯, 저금리 시대에 너무 많은 돈을 청약 통장에 묵혀둘 필요가 없습니다. 청약 통장은 청약을 위한 용도로만 쓰면 됩니다. 더 이상 적금 용도로 적합한 상품이 아닙니다. 적어도 현재의 금리 수준에서는 분명합니다. 또 청약 통장은 일부 인출 기능이 없으므로 자금이 필요하면 해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 순간 오랜 시간 쌓아둔 가점은 사라지고 맙니다. 따라서 청약에 필요한 요건을 갖춘 금액 수준으로만 유지하길 권합니다.
청약 순위는 국민 주택과 민영 주택의 순위 산정 방법이 다릅니다. 국민 주택 청약의 목적은 해당 주택 건설지역에 거주하는 무주택 가구 구성원에게 청약 자격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매월 꾸준한 납입금을 넣어야 순위가 올라갑니다. 민영 주택 청약은 지역별 예치금액을 모두 납입하고 지역별 해당 기간을 모두 채우면 1순위 자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택의 성격에 따라 요건이 다르므로 어떤 주택을 청약하게 될지 구상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간혹 아파트에 청약을 하겠다면서 청약 통장만 보유하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 중에는 청약 통장만 있으면 모두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아파트 분양을 받으면 분양대금의 10~20퍼센트의 계약금을 내야 합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부동산 정책의 방향이 중도금 대출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쪽으로 돌아서고 있습니다. 자기 자금 마련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당첨됐다 해도 계약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죠. 청약 통장과 함께 주택 마련 자금 준비에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청약 통장과 계약금 마련은 한 세트입니다. 청약 통장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사진출처. 티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