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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영 Oct 13. 2024

퇴사 후, 홀로 제주로 떠났다

혼자 제주여행 4일 차


제주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한다. 길게만 보였던 여행은 아쉽게도 짧은 시간이 되었다. 불현듯 욕심이 앞선다. 마지막으로 일출봉도 보고 싶었고, 오름에도 들러 제주의 풍경을 점유하고 싶었다. 그러나 지쳐버린 몸과 빠듯한 시간 속에서 모든 것은 욕심이었다. 섬 깊숙이 가로지르는 버스에 오른다. 해변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낯선 풍경이 이어진다. 길게 뻗은 나무들, 한가로이 풀을 뜯는 말들, 생활과 삶의 흔적들과 한결 가까워진 한라산까지. 같은 제주라고는 믿기지 않는 모습들이었다.


창 너머의 풍경을 지긋이 바라본다. 익을 대로 익어 이제는 따갑게만 느껴지는 살갗 위로 제주의 태양이 내려쬔다. 모든 것을 다 보지도, 이루지도 못했지만 이만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짧은 마지막 날의 일정은 시내 구경으로 채워갔다. 생경한 청귤소바로 점심 식사를 달래고, 여러 나라 작가들의 예술품을 만나볼 수 있는 아라리오 뮤지엄을 향했다. 다양한 시선과 가치, 삶에 대한 태도가 저마다의 작품 속에 녹아난다. 그중 인상 깊었던 작품은 이진주 작가의 비좁은 구성이었다. 작품의 한 면을 온전히 볼 수 없을 정도로 비좁은 공간에 설치되어, 우리가 세계를 바라볼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사각지대로 인해 우리는 끝내 세계를 온전히 바라볼 수 없음을 담아낸 작품이었다.



불현듯 나의 욕심이 떠올랐다. 몇 년 만에 찾은 제주에서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자 했다. 바다를 보고 산에 오르고 싶었다. 뚜벅이 여행객인 주제, 한정된 일정 속 계획한 곳들은 모두 찾으려 애썼다. 그러나 그런다 한들 끝내 나는 제주의 모든 것을 볼 수 없다. 영겁의 시간 속에 켜켜이 쌓여간 섬의 역사를 온전히 알아챌 수도 없다. 잠시 섬을 찾은 이방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응시하고, 인식하고, 생각하는 것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들을 해내지 못해 무기력하고 분노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내 소관 밖의 일들은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자연 현상과도 같은 일이었다. 결국 나는 세상의 일들을 그저 받아들이고, 체하지 않게 천천히 곱씹어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양분을 쌓아야 할 뿐이다. 타고난 운명이 있다고는 믿지 않지만 운명 같은 일이 있다고는 믿는다. 그리고 그것들을 거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있기에 내가 있다. 그러나 내가 있기에 세상이 있기도 한다. 제주를 바라보던 나는 나의 한계를 인식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유한하고 불완전한 나의 한계로부터 배워나가겠다고. 무결점 한 나를 만들어가는 데 치중하지 않고, 당신들과 함께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오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이 삶에 주어진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다고. 결국 시선의 끝을 내가 아닌 세상에 두겠다고.

      

섬을 떠나 이제 서울로 돌아갈 시간이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생각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리하여 끝내 넓혀질 것이다. 나로부터 당신들을 향해.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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