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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연산 Sep 13. 2022

 딴엔 열심히 살고있다

알바를   구했다. 술집 알바. 카레집 알바. 영어 과외. 주말에 일을 몰아 놔서 주중은 침대에서 하염없이 굴러다닌다. 이틀 일하고 지친 정신을 5일동안 회복하는 기분도 조금 든다. 술집은 정신이 힘들고, 카레집은 몸이 힘들다. 카레집에선 3시부터 9시까지 일한다. 서빙하고, 주문받고, 식기 닦고, 그릇 치우고 하다 보면 6시간이 지난다. 지난주엔 에어컨이 고장나서 실내 온도가 31도였다.  힘들었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뭐라도  보고 있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술집 알바는 정신이 힘들다. Dance monkey라는 노래가 있다. 가사를 보면, 싫어도 춤을 춰야 한다. 쉬고 싶어도 나는 다시 춤을 춰야 한다. 누군가 와서 내게 말한다. 너 정말 춤 잘 춘다. 또 보여줘. 더 멋진 걸 보여줘.


싫다. 하지만 멈출 순 없다. 나는 그러라고 고용됐으니까. 열 시부터 이르면 새벽 한시, 늦으면 3~4시까지 사람들의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춤을 춰야 한다. 웃어야 한다. 술을 마시면서 일을 해도 된다고 한다. 얼마든지 마셔도 좋다고.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몇 주 전엔 지원한 공연장 안내원 알바가 당연히 될 줄 알았다. 그래서 그 일만 되면 진즉 때려치겠다 한 거, 맥주를 한 잔 마시고 일을 했다. 춤을 췄다. 재밌는 척. 입꼬리를 걸고 춤을 추고 사람들과 알맹이도 의미도 없는 대화를 나눴다.


모두가 내게 사랑한다고 한다. 오마이갓 아이 러브 유/아이 러브 유어 댄싱 어쩌고. 난 모두에게 사랑받지만 그들은 내 이름도 모른다. 모두가 날 사랑하지만 그 누구도 내게 좋아한다고는 하지 않는다. 기분이 요새 왼쪽 눈만큼이나 침침하다. 나는 보통 사람이 이름을 얘기해 주면 기억한다. 신기한 건 일하면서 내가 이름을 물어본 일은 별로 없는데, 묻는 사람은 꽤 봤다. 그 사람들은 내 이름을 거의 잊고, 나는 그들의 이름을 거의 기억한다.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집에 가는 택시는 또 왜 이렇게 안 잡히지.


사장 형이 오늘 일 잘 했다, 다 너 재밌으라고 돈 주는거야. 라고 했다. 그냥 집에 가고 싶었다. 조용한 연습실에서 춤추는 게 더 좋다. 우울증에 걸린 광대 이야기가 생각난다. 모두를 웃기지만 본인은 우울했던 그 광대.


고상한 일을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에어컨도 쐴 수 있고 멀끔한 옷을 입어야 하는 공연안내원에 지원했다. 지원공고가 연장된 걸 보니 사람이 많이 지원하지 않았다는 예감이 들었다. 자기소개서를 적어 냈다. 경력에는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해봤다고 썼다. 그러면서 하우스 매니저/공연안내원이 있어야 원활히 공연이 진행된다 뭐 이런 식으로 번드르르하게 적어 냈다. 나름 잘 썼다고 생각한데다 사람이 없으면 당연히 연락이 올 줄 알았는데 서류에서 탈락했다. 심지어 전화도 해 봤다. '너무 많은 지원자가 있었다'는 말을 어색하게 담당자가 말했다. 솔직히 거짓말 같았지만 내가 내부 사정까진 모를 일이다. 박에게 말하자 '나이 많은 남자라서 안 시켰을걸' 이라고 했다. 모른다. 요즘 공연 보러 다니면서 딱히 남성 여성 인원이 크게 차이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이가 많아서일수도 있고, 또 내가 모르는 뭐가 있을 수 있겠지.


여하간 주중에 고상한 곳에서 고상한 걸 보러 오는 사람들을 친절하게 응대하며 집에 와서 아 오늘 다리가 아팠어, 정도의 적당한 푸념이나 뱉고 싶던 소원은 미끄러졌고 나는 여전히 카레집에서, 술집에서(특히 술집에서) 진상들을 상대해야 한다. 지인은 세상에 고상한 일은 없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래도, 알바래도, 고상한 척이라도 하는 걸 해보고 싶었다. 적어도 고상한 꼴로 힘들어보고 싶었다.


영어 과외는 사실 내게 들어온 일이 아닌데 내가 강력하게 하고 싶다 해서 맡게 된 일이다. 정말 뻥 안 치고 머릿속으로 생각을 계속 하는데 영어로만 했다. 한 3주 내내 수업을 기다렸다. 밤 11시부터 1시간 반동안 수업을 했다. 정원은 10명. 간단한 자기소개와 현지에서 쓰는 표현 등을 몇 개 알려줬다. 수업은 정신없었지만 어찌어찌 해냈다. 시간 대비(물론 준비한 시간이 꽤 길긴 하지만) 효율이 좋은 일이다. 자주 하고 싶지만 한 달에 한 번 아니면 두 번을 하게 된다.


서른이라는 나이에 알바를 구할 수 있었던 건 춤을 출 줄 알아서이고, 영어를 조금 할 수 있어서이다. 다행이라고도 생각하지만 종종 우울하다. 일기를 유서처럼 쓰곤 했던 시절보다는 분명 낫지만 복에 겨운 소리래도, 호강에 겨워가지고 정신 못 차렸다 한대도 우울하긴 하다. 삶에 이정표 없이 그냥 부표처럼, 버려진 페트병처럼 둥둥 떠다닌다. 흙탕물 위에 진흙을 덕지덕지 붙이고 그냥 둥둥 떠다닌다.


내겐 따로 물어봐 주는 사람이 별로 없기에 나의 안부는 내가 직접 전해야 한다. 그래서 적었다. 딴엔 열심히 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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