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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연산 Jan 06. 2020

내가 10원짜리야?

유지할 필요 없는 관계에 매달려있던 나의 이야기. "난 괜찮다"

18년도, 학교를 다니던 중 한 수업에서 회식이 있었다. 4학년 수업이기도 했고 인원수도 열댓 명 가량이라 가능했던 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회식에서는 술과 함께 급속도로 친해진 인원들이 보였다. 얘기를 하다 보니 같은 조는 아니었지만 사는 곳이 꽤 가까운 조원이 두엇 있었고, 걸어서 5분 거리에 사는 같은 학번의 동기와 어쩌다 보니 면을 텄다.


그의 첫인상은 완전, 별로였다. 차를 끌고 다니는 놈이 도시 끝에서 끝으로 음주운전을 하고, 술에 취해 주정을 부리던 첫 회식 날은 더욱 별로였으니. '괜찮아 괜찮아' 하는데 전혀 안 괜찮은 짓만 골라하는 놈.  그게 첫인상이었다 보니 '어우 쟤랑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내야겠다' 하고 생각했었다.


으레 많은 인연들이 그렇듯 당장 한 달 후에 벚꽃도 보러 가자! 술도 같이 마시자! 이랬던 조원들의 술자리의 헛뜬 말은 예상 그대로 빈말이 되었고, 학기가 끝나고 나자 연락은 자연스럽게 끊어져갔다.


그놈만 빼고.


사는 곳이 가까워서 그랬는지 아니면 예술을 좋아한다는 손톱만 한 공통점이 있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동기와 나의 관계는 어찌저찌 계속됐다. 그나마 좋아한다는 예술도 나와는 깊이도 방향도 너무 차이가 났다. 그래, 비교가 맞다. 그의 말은 사실 듣고 있기 어려울 만큼 깊이가 얕았다. 해서, 대화도 잘 안 통하고 힘들기도 했지만, 술을 마신다던지 집 근처의 먹고 싶은 걸  먹으러 갈 때 혼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일말의 위안이 주는 달콤함은 버리기 어려웠다. 좀 신기했던 건 그는 내가 정말 대화가 잘 통한다며 좋아했다는 것 정도. 이제 와 말하지만 내가 맞춰준 거란다.


그런데 약 1여 년 정도 동안 종종 만나다 보니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는 나에 비해 훨씬 잘 사는 집의 아들이었다. 집에서 용돈도 다달이 50~60씩은 받는다고 했다. 그게 또 모자라면 쓰라고 부모님이 준 신용카드도 한 장. 그것마저도 너무 펑펑 써서 그의 모친께서 한두 번은 카드를 잠시 정지했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다.


나야 뭐, 뭔가 먹고 싶으면 하루 이틀, 또 이틀 사흘 더 참아 보고, 통장 잔고를 괜히 되새겨본다. 통장 잔고는 볼 필요도 없다. 항상 외우고 사는 요소 중에 하나니까. 대충 3만 원, 6만 원. 갚을 돈 4만 원. 빌렸는데 아직 못 갚은 돈 몇십만 원. 그러고 나서, 정 뭔가 먹고 싶고 마시고 싶은 날에는 혼자 조심스레, 또 신중하게 꼼꼼히 메뉴판을 들여다보고 속으로 들숨을 크게 삼키고는 '저기 주문할게요' 하는 놈인걸. 그래도 나의 모친께서 내게 가르친 당신의 지론은 어디 가서 비굴하게 얻어먹지 말고, 괜히 마음에 빚 만들어서 사람 불편하게 만나지 말아라. 설령 남이 사주면 네가 알게 모르게 그 사람 눈치를 보게 된다, 인지라 좀 무리해서라도 누가 사면 나도 한 번 사고, 아니면 웬만하면 반반 나눠 내는 식의 소비를 해왔다.


그런데 그와의 만남에서는 이상하다고 하기보단 뭔가 찝찝하고 석연지 않은 부분이 보였다. 얘는 왜 항상 같은 카드로만, 내가 결제를 한다고 해도 결제를 하지? 왜 내가 낼 테니까 나중에 너도 돈 보내줘 인마, 하면 자기가 부득부득 낸다고 하지? 화장실 간 사이에 내가 결제를 하고 오면 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지? 술이, 안주가 모자란다며 더 시키고 자기가 좀 더 낸다고 한 말을 자연스럽게 술기운에 까먹은 것처럼 행동하지? 그래서 내가 야 니가 이만큼 더 낸다고 니가 더 마시자며? 하면 어색하게 아, 그랬지, 하는 거지? 그러다가 깨달았다. 아, 이건 카드깡이구나.


그는 그의 모친에게 받은 카드로 카드깡을 하던 거였다.


보통 서로 만나자고 하는 빈도는 3:7 정도. 내가 3, 그가 7. 나는 혼자서도 그럭저럭 뭘 먹고 마시러 가는 걸 하러 가는 편이고, 그는 혼자서 뭔가를 하는 걸 전혀 하지 못했다.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혼자 다니기 시작했다는 내 사정은 차치하더라도 그는 보통 밤에 뜬금없이 뭐가 먹고 싶다고 불러냈고, 외로움에 침대에서 비적거리고 있던 내게는 아쉬운 대로 말을 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는 거의 언제나 편안한 추리닝 차림으로 나를 만나러 나왔다. 그리고 그는 나보다 말이 훨씬 많았다. 그는 먹고 싶은 것도 나보다 자주, 많이 있었다. 종합해보니 그는 '심심할 때', '먹고 싶은 것도 있는데' '혼자 가긴 싫은데' 싶으면 나를 불렀던 거다. 에이, 내가 너무 확대해석했나? 싶었지만 내가 결제하겠다고 하거나 내가 이미 결제를 했다고 했을 때의 그의 표정. 그가 나와 대화를 하며 굳이 숨길 필요도 없이 뱉었던 말들 중 '이건 엄마가 나 준 카드'의 생김새, 그리고 주위 사람 색조 화장 하나만 바뀌어도 알아채는, 디테일 하나는 기가 막히게 기억하는 내 성향이 합쳐지자 '얘는 왜 이러는 거지?' 하고 덮어두었던 벽돌들이 와르르르 쏟아졌다.


지 심심하고 배고프고 그럴 때 나를 불러서, 엄마 카드로 결제하고, 나한테 돈까지 따박따박 받아내는 거였다. 이게 진정한 창조경제가 아닐까? 먹고 싶은 거 먹고, 심심할 때 자기 하고 싶은 얘기 다 해, 술도 마실 수 있고, 시간도 붕 띄우지 않게 지낼 수 있으며, 무엇보다 상대한테서 돈까지 받을 수 있다! 여유로운 집에서는 3,4만 원 정도 긁은 걸로는 뭐라고 하지도 않는 집안이니.


그리고 그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그럴싸한' 친구를 만나는 데에 나를 한 번도 소개한 일이 없었다. 내가 장난으로라도 야 나도 가도 되냐? 나도 너랑만 말고 네 친구도 좀 만나보고 그러자 인마,  하고 물으면 굉장히 안절부절못했다. 이제 와 돌이키니 그에게 나는 다른 사람에게 친구라고 소개하기 좀 쪽팔렸던 것 같다. 그래, 뭐 내가 외형만 보고 친구 삼기에는 좀 비루하게 생기긴 했다. 그래도 나는 내 친구도 소개시켜주고 재즈 좋아한다길래 공연도 같이 불러서 갔었는데. 나는 '그래도 되는'놈인가. 괜히..착잡했다. 영화 미쓰 홍당무에 나왔다던 대사가 떠오른다.


내가 내가 아니면 아무도 나한테 이러지 않았을 거면서!

처음엔 화가 났다. 그러다가 내가 불쌍했다. 혼자 있는 걸 못 견디는 그놈뿐만이 아니었던 거다. 나는 그냥 친구가 없어 혼자서 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혼자 술을 마시러 가고, 노래방을 가고, 피시방을 가고, 여행을 갔다. 그래서 이렇게 엉망이고 내가 이용당하는지도 몰랐던 관계.. 아니, 짐작하면서도 아니라고 믿고 싶었던 관계라도 절실했던 거다. 혼자서 이런저런 일을 하며 '괜찮았던' 적은 없었다. 그를 만나면서도 그에게 '야 혼자 해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 인마'라고 했지만, 알고 있다. 괜찮은 사람은 스스로에게 '난 괜찮아'라고 말할 일이 없다. '괜찮아'는 내가 괜찮지 않으니 괜찮길 바라며 하는 주문에 가까운 말이니. 나는 그렇게 난 괜찮다며, 어설프게 나를 위로하면서 남의 시선을 신경 쓰고 눈치를 보며 불안해했다.   


새해가 되고 나는 그놈과의 연락을 그만뒀다. 나는 한 달 반 가량 전 번호를 바꿨고 그에게 바뀐 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 이제 자기가 먼저 불러 놓고도 약속시간이 되면 시간이 애매하다며 약속을 취소하는 일을 겪으며 어이없어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갖고 있기는 애매한 10원짜리인가? 하는 생각도 할 필요가 없고. 내가 같이 음식 먹으면서 카드깡까지 해도 되는 호구라는 느낌을 받을 필요도 없어졌다.


작년 연말부터 지금까지 몇 번, 나는 내가 좋아하고 그에게 소개했을 때에도 꽤나 맘에 들어하던 술집을 혼자 갔다. 혼자 가서 먹고 싶은 안주를 신중히 고르고 어울릴 술을 (고작 소주 종류지만, 그래도!) 심혈을 기울여 고르는 일도 나름 재미있다. 혼자 부담하기엔 조금 아쉬운 돈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견딜 만한 적적함이다. 그래. 안 괜찮으면 안 괜찮은 대로. 괴상한 관계에 스트레스 받지 않는 것 자체로 위안을 삼고 눈앞의 음식과 술에 집중한다. 난 아직 안 괜찮다. 그래도 그건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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