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지 못한 삶
아, 이건 끝났구나
아, 이건 돌이킬 수 없는 관계다.라는 느낌이 올 때가 있다. 계산과 생각을 쪽 빼고 '이 사람은 다시는 못 보겠구나'라는, 그런 느낌. 그런 일이 생길 때의 온도는 못 견디게 냉랭하지도 않고, 불 같지도 않았다. 그냥 문득, '이 사람은 앞으로 내가 보고 싶다고 해서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 이 사람이 보고 싶다고 해서 내가 만날 사람이 아니야'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 주위에 남은 사람이 적은 만큼, 떠나보낸 사람이 참 많다. 내가 떠나간 사람, 날 떠나간 사람. 그 사람들은 밥을 먹다가도, 술을 마시다가도, 그냥 집에서 컴퓨터로 게임을 하다가도 문득문득 무시로 떠오른다. 순간 얼굴을 구기고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가는 그 이름과 얼굴들. 다시 보면 미안하다고 할 사람, 더 잘해볼게,라고 말할 사람. 너는 그래도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할 사람, 말을 꺼낼 수도 없는 사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를 사람.
다시 보기 어려울 그 수많은 이름과 얼굴을 낱낱이 기억한다. 내가 미안해서 못 볼 이름들, 얼굴들. 내 잘못, 네 잘못을 가리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다. 운이 좋아서, 아니면 그냥 별 것 아닌 이유로 다시 얼굴을 마주하게 된 사람도 있다. 성정이 참 쫌스럽기 그지없어 내게 먼저 연락을 해 주었으면 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할 자신은 차마 없으면서. 만나면 우리 술 한잔 하면서 맛있는 안주 하나 사 먹자, 하고 아무 일 없듯 다시 얼굴을 보고 싶은 그런 사람들.
미련이 밥이고 집착이 찬인 삶
미련이 밥이고 집착이 찬인 삶이다. 나도 내 생이 처음이고 헤어진 사람들과는 모두 처음이었다.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에 비해 사회성이 좋은 편은 아니라 더욱 인간관계에 서툴렀다. 내가 좋다는 사람을 방치했고, 내가 좋아한 사람들을 멀어지게 했다. 하루 세 번, 그 이상 내가 망친 관계가 떠오른다. 미안함과 죄책감은 동시에 따라 든다. 술을 마시면 얼굴도 이름도 선명해진다. 괴팍한 성격 탓에 주위 사람들의 번호를 모두 외워버리는데, 취하면 인즉 잊었어야 할 번호도 기억해낸다. 누군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취한 채, 사람들을 복기하다 보면 마음도 몸도 너절해지기 일쑤다.
한동안 가수 김윤아의 '안녕'이라는 노래를 많이 들었다. 몇 달 전, 허리가 아파 책상을 들였다. 그때 방을 뒤집어엎으며 청소를 하다 나온, 내게 호감이 있었던 여자애가 주었던 편지를 읽었을 때도, 내가 잊어야 할 이름들이 생각날 때도. 또 많은 이유들로. 하다 하다 결국은 직접 김윤아 씨의 콘서트를 찾아가기까지 하며 들었다. 인연에도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다고. 거슬러 갈 수 없는 끝에 닿고, 발버둥 쳐도 흩어질 인연은 흩어져 간다고. 맞는 말이다. 미련과 집착을 붙이고 아무렇지 않은 척만 하며 건넸던 연락들은 답이 없거나 다신 보지 말자는 답이 왔으니. 안녕이라고 말을 해야 할 때 놓지 못했을 때 무게는 고스란히 내 것이 되었다.
지인에게 들었던 이야기인데, 안녕이라는 말은 편안할 안, 편안할 녕 자를 써서 안녕이라고 한다. 편안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속뜻을 지닌 단어라는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멍했던 기억이 있다. 안녕하지 못해 내가 지금 이런 삶을 살고 있는 건가. 미련과 집착에 찌들다 못해 습관이 된 건가 하면서.
안녕이라는 말을 그렇게 자주 하면서 안녕하지 못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가 편안하길 바라서 안녕이라는 발음에 너나 나나 편안하자, 라는 의미를 속으로 씌워 뱉어 보았지만 사실 나는 별로 안녕하지 못하다. 어제는 작년에 참 좋아했던, 내게 손편지를 꾹꾹 눌러 써서 줬던, 이제는 집착과 미련으로만 남은 여자애에게, 마지막 연락을 하며 보냈던 아이스크림이 취소되었다는 안내 문자가 왔다. ㅇㅇㅇ님은 마음만 받고 선물은 돌려주기로 했다, 뭐 이런 류의 말로 이루어진 안내 문자를 보고 심호흡을 했다. 다 끝난 거 알고 정리 많이 했잖아, 혼자 중얼거리며 비가 추적거리는 시내를 쏘다니며 댄스학원 두 군데를 돌았다. 내 것이 아닌 슬리퍼를 신어 발 옆 꿈치가 까져 쓰렸고 수업은 집중할 수도 없었다. 괜히 따뜻한 환대라도 받고 싶었는데 사실 성인이 돈 내고 간 취미 학원에서 강사나 원생하고 친해질 일도 없기 마련 아닌가. 해서 괜히 나만 혼자 섭섭하고 그랬다. 머리로는 당연한 일인 걸 알아도 받아줄 대상 없는 섭섭함과 서러움이 밀려왔다. 잘 마시지도 않는 소주를 한 병 사와 마시고 잠을 잤다. 어제는 너무 가라앉은 나머지 취기도 오르지 않았다. 그 7200원. 그깟 칠천 이백원이 뭐라고.
영화관에서 일을 했던 친구는 내게 말하길, 끝은 진즉 났는데 엔딩 크레딧 다 보고 쿠키 영상을 기다리는 관객이 때리고 싶을 만큼 싫다고 했다. 그럴 수는 있다는 걸 머리로 알지만 그래도 싫다고 말을 하는데 너무 내 얘기라 괜히 찔려 멋쩍게 웃어넘겼었다. 실제로 나는 영화관을 가면 거의 항상 끝까지 앉아 있으니까. 관계에 있어서도 나는 너무 오래 앉아있는다. 다음 영화도 시작해야 하고 뒷정리도 해야 하는데 황망하게 혼자 관객석에 앉아 필름의 끝을 기다리고 앉아있는 내 모습이 불쌍하기도 하고, 친구 말마따나 때리고 싶을 만큼 화도 난다. 답답해서.
미련이 밥이고 집착이 찬인 삶이다. 몸은 그렇게 말랐으면서 마음은 안 좋은 걸 자꾸 먹어 덩치가 거치고, 눈 밑은 검어지고 주위의 호의 섞인 감정을 쉽게 소화시키지 못하고 체한다. 언제쯤 그만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