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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연산 Sep 11. 2019

존나 짱인 사람이 되고 싶다

'존나 쩔지 못해' 속상한 이야기

지난 주말, 서울에 댄스 배틀을 다녀왔다. 두 번이나 버스를 놓쳐 취소 수수료로만 평소 밥 한 끼인 3800원이나 쓰고, 집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잠을 잘 안양까지 또 한 시간 반, 총 5시간 반을 썼다. 그리곤 다음날 쏟아붓다 말다 하는, 나와 함께 올라온 태풍이 소위 '쌔리 박는' 빗길까지 뚫고서 간, 꽤 힘들게 참가한 배틀이었다.



서울로 올라가기 직전, 브런치에서 이번에 책을 출간한 작가인 강이슬의 책을 읽고, 한 권 사서 만난 친구에게 건네고 올라가는 내내 내용을 되뇌었다. 글 중 유독 맘에 들었던 건 '나는 존나 짱이다' 라는 글이었다. 흔히 '내 탓' 이 심하고 내가 너무 모지리같이 느껴져서 우울에 빠져 사는 내게는 그 글이 꽤나 맘에 들어서 되든 말든 나도 존나 짱이라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나는 존나 좆 됐다


배틀에서 나는 락킹 사이드.  60cm 정도 높이의 무대. 36명의 예선자. 내 번호는 35번. 굳어서 움직이지 않는 어깨와 팔, 허벅지를 때려가며 대기하는 동안, 속으로 계속해 되뇌었다. '나는 존나 짱이다', '나는 존나 쩔어서 예선 따위는 문제없이 통과할 거야'라고. 그리고 34번 참가자의 남은 시간 3초를 카운트하는 사회자의 소리가 들리고 세 단짜리 계단을 오르며 든 생각은 '아, 나는 존나 좆 됐다'였다.


무대를 적게 서 본 사람은 아니다. 부담과 벅참을 한 끗차이로 오가는 그 기분도 나름 즐기는 편이고, 수백 명 앞에서 뮤지컬도, 춤도 춰 본 나다. 그런데 그 50명 남짓한 사람 앞에 무대를 섰을 때 나는 멘붕이 왔다. 멘붕 정도로 설명이 되면 좋겠지만, 생애 가장 정신을 놓아버린 50초였다. 어떻게 시작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30초가 넘어가자 내가 뭘 하는지도, 흘러내린 안경을 고쳐 쓰는 일조차 어려웠다. 뭘 어떻게 했는지도 모를 50초를 꾸역꾸역 우겨넣고 다시 세 단 계단을 내려오는데 힘이 쭉 빠지고 눈앞이 핑 돌았다. 눈물인지 뭔지 모르겠는 게 눈인지 머린지, 여하튼 어디론가 차올랐다.


예선은 탈락이었다. 너무 지쳐 허탈하다는 감정을 끌어오는 것도 뒤늦었다. 내가 여기에 어떻게 왔더라. 여기에 왜 있지.  결승을 끝까지 지켜보지 않고 친구를 만나러 사당역을 갔다. 밥을 먹고 친구 집에 가며 내내 과장되고 어수선하게 행동했던 것 같다. 괜히 친구 집에서 이렇게 했으면 나았을 거라며 손과 발을 열심히 휘적거렸지만 속으로는 잘 알고 있었다. 내 실력으로 어떻게 되었을 수준이 아니라는 걸. 분명 루키들이 모인 곳이었지만, 나는 루키라고 하기도 민망한 실력이었다. '나는 존나 짱이다' 라는 약으로 같이 씹어 삼켜 소화될 수 없는 감정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보다 더 빨리, 많이 꾸역꾸역 생겨났다.


살면서 무얼 해도 약간 '노력해야 2군'이라는 생각을 쉬이 지울 수가 없었다. 외모가 평균에 비해 모자라기도 하고(심지어 키는 평균에 한참 못 미친다!), 그렇다고 공부를 썩 잘하지도, 성격이 썩 좋지도 않다.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멘탈이 썩 좋은 편도 아니다. 사실 멘탈은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예민하고 날카로우며, 비관적이다.


나도 소위 말하는 '긍정적인'사람이고 싶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서 먼저 연락이 오고 만나고 싶어 했으면 좋겠다. 어쩌다 잡힌 약속이나 새로운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에 긴장과 걱정보다 기대와 행복이 더 컸으면 좋겠다. 부정적인 면모에 초점을 먼저 맞추기보다 기쁨과 즐거움을, 나를 기만하지 않으면서 오롯이 느끼고 싶기도 하다.


이번 배틀을 다녀오며 여러 모로 스트레스를 크게 받았다. 배틀 참가를 두 번 세 번 권유한 선생이자 심사위원은 서울에서 만난 나를 거의 소 닭 보듯 했고, 월요일에 보기로 했던, 전에 춤을 가르쳐주신 선생은 월화수에 일을 해야 해서 못 만나겠다고 했다. 별생각 없이 킨 SNS에서는 그 선생이 애인과 고기를 구워 먹고 있는 모습을 봤다. 친구 집에 신세를 지려고 연락을 하고 승낙을 받고 인천을 갔을 때, 간호사인 선배가 집에 왔다던 친구는 연락을 받지 않아 뻔히 위치도 알고 비밀번호도 아는 친구 집 근처를 하릴없이 새벽 두 시까지 두 시간을 돌게 하곤 사과는 하지 않았다.


세상에 핑계 없는 무덤이 어디 있겠냐, 다 그럴 이유가 있겠지, 하고 생각해보려 했다. 선생이 내가 어색해서 그럴 수도 있지, 다른 선생들은 제자 만나면 세상 반갑게 인사하긴 하지만.. 뭐 그럴 수도 있지, 원래 학원에서도 데면데면하고 나랑 거리 두잖아! 그리고 애인 만나야 되는데 그냥 에둘러 거절한 거겠지! 친구도 핸드폰 잠깐을 보기 어려울 만큼 선배들 접대하고 하느라 힘들었겠지! 그 외에도 뭐 그런 일들도 다 그러려니 그러려니 열심히 씹어 삼키다 보니 하나의 단어로 된 결론에 도달했다.


씨발, 이라고. 내가 왜 이렇게 홀대받아야 하는 거냐고.


언니네 이발관의 가사 중 이런 게 있다.


나는 세상이 바라던 사람은 아냐


나를 찾는 사람이 없고, 내가 찾아도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거리를 두는 관계들에도 뭔가 이유가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색한 대화를 하게 되는 이유가, 하루 온종일 조용한 핸드폰에는 다 '내가 존나 쩔지 못해'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돈이 많거나, 정말 재밌거나 뭐든 특출난 게 있다면 내가 이렇게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나를 찾아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쓰다 보니 생각이 났는데, 전에 관계에 유통기한이 지났다던, 그만 보자는 연락을 마지막으로 했던 여자애가 연락을 했다. '오빠 경영학과 나왔댔던가?' 로 시작한 문자에 나는 거의 벌벌 떨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답을 했고, 돌아온 말은 '아 나 주식 해보려고. 주식 좀 알면 알려달라고 하려고 했지', '모르면 뭐 어쩔수 없지 안녕!'이었다.


내가 이렇게 누군가에게는 그냥 타인 1이고 도구에 불과하구나. 그렇게 소중하다 생각했던 관계도 아무것도 아닌 게 되고 아무렇지 않은 무언가가 된다는 게 속상했고, 남이 아쉬울 무언가, 내가 '쩔어주는' 무언가가 있다면 이런 기분이나 상황은 겪지 않아도 될 텐데. 이런 일로 일희일비하고 자꾸 신경 쓰이고 종내는 다시 연락을 해서 복수라면서 그럼 맛집 아는 곳 있니? 하는 찌질한 말이나 하지는 않았을 텐데. 이게 다 자존감이 모자라서 그런 걸까. 나는 '존나 짱'인 사람이 되기는 좀 글러먹은 걸까.


보통 자존감은 내게 씨를 뿌리고 싹을 틔워나가야 한다고 배웠다. 그래 결국 밖에서 자존감을 찾아선 안 된다는 교과서스러운  얘기도 틀리지는 않겠다만,  가까이 있지 않은 정답보다 익숙한 오답을 찾게 되는 게 나이고 사람인지라 결국 오답임이 뻔한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내가 갖지 못하거나 갖지 못할 것에 대한 환상과 헛된 기대를 하게 되는 것이다.


해결이란 없는 문제를 끌어안고, 문제의 근원이 나의 일부가 아닌 내 자체라는 생각에 미치게 되면 많이 우울하고 속상해지는 나날이 계속된다. 회피라고 해도 좋으니 일단 춤은 잠시, 한 주라도 내려놓고 가기로 했다. 사람 만나는 것도 그냥 일단은 아예 연락을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지었다. 오답이라도 덜 다치고 싶다.


'존나 쩌는 나' 가 되기엔 아직 갈 길이 멀기만 한 것 같다. 막연한 기대와 희망을 품고 살기도 뭐한 세상이라 좀 우울하긴 하다.



마지막으로, 아까 언니네이발관 노래 가사 바로 뒷부분 가사를 적으며 마친다.


 '그렇지만 이 세상도 나에겐 바라던 곳이 아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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