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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연산 Jul 20. 2020

안 괜찮은 외로움

괜찮은 줄 알았지 난

신기하지. 내가 안 괜찮다는 건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튀어나온다.


꼭꼭 씹어 삼킨다. 꾹꾹 눌러 아래로 내린다. 마침내 없어졌다고 생각한다. 이제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고독을 즐기는 내가 멋지다고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외로움 얘기다.


새로 가입한 자전거 소모임 인원들이 집 근처에서 모인다기에 잠시 나갔다.은근히 사람 꼽주고 무안 주는 곳이었다. 말만 '다같이 재밌게 타는 자전거'. 한 시간 만에 기분만 잡치고 들어오는 길. 집 앞 바로 향했다. 가서 진토닉 딱 한 잔. 딱 한 잔만 세게 말아 마시면 기분이 나을 것 같았다. 통장 잔고가 5만 원이면 어때. 난 엊그제까지 번역 알바에 찌들어 있었는데. 무슨 오크 전산가 뭔가 하는 게 검투사들을 두드려 패니 마니 하는 내용을 2주 가까이 보다 보니 눈알이 빠질 것 같았다. 술을 마셔도 될 이유를 입안에서 잔뜩 굴려 본다. 괜찮을 것 같다. 9000원짜리 잔술 한잔 사치를 부려도 될 것만 같다.


바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건 많은 사람들. 꽉 찬 바 안의 열몇 쌍의 눈이 나를 향하는 게 느껴진다. 순간 답답하다. 숨 쉬는 게 수동으로 변한다.  손님이 많지 않을 줄 알았는데. 바텐더는 '어.. 오늘 자리가 다 차서요'라고 말한다. 가방만 덩그러니 올라 있는 의자가 하나 보인다. 저 자리를 나를 위해 치워 주진 않으리라. 만에 하나 치워 준대도 편히 마실 자신도 없지. 해맑고 씩씩한 척 다음에 올게요~ 하고 톤을 억지로 높여 인사한다. 눈들은 아직도 혼자 모자를 눌러쓰고 온 나를 쳐다보고 있다. 옹기종기 연인들, 친구들.


혼자인 건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진즉 미쳐 버렸을지도 모른다. 세 사람이 모두 다른 생활 시간을 가지고 공간만 공유하는 집에서도. 좀처럼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습관처럼 꺼내 봐도. 괜찮다. 괜찮다. 친구들 생각이 나다 나다 못해 미련으로 건 연락은 안 그런 척, 포장한다. 그냥 생각 어쩌다 난 척. 야 너 생각나서. 잘 지내냐. 연락해주는 건 나밖에 없다는 답장에 괜히 나의 쓸모를 생각해본다. 서로 만나 사랑하고 즐거움을 나누는 주위 사람들을 질투한다. 체념도 섞어본다. 나도 남한테 충분한 관심과 애정을 못 줄 사람인데 뭘 주제넘게 남이 널 사랑해주길 바라냐, 하고.


혼자 뭐든 잘하는 사람으로 보인댄다. 밥도 혼자 잘. 술도 혼자 잘. 여행도 혼자 잘.  혼자인 게 싫어서 맛있다는 식당을 찾아본다. 너무 힙하고 멋지면 가기 겁난다. 근처에 갈 일이 있으면 힐끗 곁눈질로 가도 될만한지 구경도 해 본다. 그리고 간다. 다른 손님이 쳐다보면 괜한 자격지심에  음식 맛도 못 느낀 채 음식을 욱욱, 욱여넣는다. 술을 마신다. 아, 나 떠드는 거 되게 좋아하는데.  바텐더나 붙잡고 주접을 떤다. 그런 내가 싫어지면 패드를 술상에 올려놓고 보는 '척'을 한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단골집 왔다'라고 맛있어 보이는 안주를 올린다. 아까는 맛있었지만 이미 다 식어빠진 안주를 꾸역꾸역 입으로 밀어 넣는다. 내가 이걸 먹어서 얼마나 돈을 아껴야 하는지 생각해본다. 여행이라고 뭐 다를까. 영상을 찍는다. 그럴싸하게 편집해본다. 혼자 와서 황망했다는 얘기는 적지 않는다. 혼자라서 너무나도 막막하단 얘기도 눌러 놓는다. 그래, 삶에 많은 건 연출이지. 안 괜찮아도 괜찮은 척이라도 해야지.


자주 체했다. 집에 오면 나를 반기던 개도 이제 없다. 집에 있으면 내 몸을 제외한 모든 공간이 외로움으로 꽉 찬 것 같다. 짓눌린다. 핸드폰을 본다. 연락을 해도 받지 않을 연락처만 뒤적거린다. 근황을 확인한다. 이 일련의 행동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다시 한번 자각하고 다시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집에서 술을 마실까 고민한다. 싫어하는 사람을 닮아가기 싫다.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열 번이 되고 매일이 될 것 같다. 시작하면 안 된다. 가끔, 몇 주나 달에 한 번 내 주량을 채우지 못할 정도의 맥주만 두세 캔 사 마시며 기분만 내 본다.


꾹꾹 오래도 눌러놓았지만 나는 언제나 이 외로움을 감지하고 있었다. 내가 괜찮다고 하던 건  그에 따른 반증이 아니었을까. 난 그래도 괜찮아야 해, 하고 하는 자기암시가 아니었을까. 살면서 종종 본, 토끼눈이 되어 입만 웃던 엄마처럼. 


대비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을 벗어난 곳에서 불쑥 들어오는 외로움에 치이는 건 익숙해지질 않는다. 이 외로움에 끝을 마주할 날이 오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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