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연산 Sep 06. 2023

가난한 나이가 가져다주는것

나이가 멋과 유한 마음가짐, 여유로운 태도를 가져다준다고 얘기할 거였으면 쓰지도 않았을 글이다. 그런 뻔한 얘기는 아직 멀쩡한 마음을 가진, 부서지지 않은 튼튼한 이들을 찾아가길 바란다.


서른이면 어리다면 어리고, 나이들었다면 나이든 나이다. 난 소속이 없다. 보통 이 나이면 어딘가에 소속된다. 그 소속은 나이에 뒤떨어지지 않았다면 또다른 작은 모임들에 속하게 해 준다. 공무원인 친구는 공무원 동기 모임에 소속되어 있다. 생활을 하는 돈을 토대로 학교 모임이나 운동 모임 등에 나간다. 이들의 주중은 자질구레하고 피곤하며 주말이라고 해서 생기가 넘치지는 않으나, 내 전화의 답엔 이미 일정이 정해져 있다. 


친구에게 전화하는 일이 줄었다. 보고 싶다고 볼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서. 어디에 살아서. 선약이 있어서. 그리고, 나는 내 몫의 돈을 낼 수 없어서. 내 몫의 돈을 낸들 차는 상대의 차를 타야 해서. 


빈곤하게 살지는 않았다. 하지만 넉넉하게 살지도 않았다. 기초수급을 받기엔 애매하고, 그렇다고 밥에 고기반찬이라도 먹느냐 하면 밥에 간장 참기름이나 넣어 비벼먹는 삶을 한 15년 산 거 같다. 그렇게 나이를 먹어갔다. 우울은 20살부터 따라붙었다. 내 마음가짐이 문제였든 가난이 실제 이유였든 나는 재수를 고려하지 못했다. 새로운 학교를 가서 새로운 전공을 해보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렇게 나이를 먹었다. 정정하자. 나이만 먹었다. 


게으르고 무기력한 내게 부지런하게 찾아오고 가는 건 시간과 그 결과인 나이와 그에 따른 부산물뿐이라, 길어진 손톱, 때 낀 귀 뒤, 등에 닿기 시작한 뒷머리 등으로나마 내가 아직 살아는 있는 생물이고 착실히 나이먹고 있음을 깨닫는다. 


한동안 글을 안 썼다. 많이 무기력했다. 그동안 브런치에서는 후원하기 기능이 생겼다는 걸 알았다. 나는 글을 쓰지 않았었고, 아마 써왔더래도 선정되지 않았을 거다. 글을 통해 응원하는 게 아닌 구걸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니깐. 서울에서 돌아오고 딱 반 년 우울하고 무기력하게만 지냈고, 지금도 그렇다.


그렇게 나이를 먹고 오늘 깨달은 거 하나. 


감정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옛날엔 좋아하는 여자애가 답장 한 번 해서 받으면, 아니면 누가 먼저 연락이라도 하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설레고 머리가 찌르르해서 잠을 자지도 못했다. 그리고 수많은 짝사랑의 실패 후 바닥을 깨고 더 축축 늘어지는 그 기분까지도 기억한다. 뭐 애정만 그랬을까. 미움도 증오도 기쁨도 환희도 한정없이 뻗쳤었다. 삐죽삐죽하게. 연애를 못 해본 나이지만 그 때의 내가 연애를 했다면 그보다 몇 배는 감정이 증폭되었을 것이다. 연애하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도 가끔 한다.


하지만 이제 감정에 어그러지지 않는다. 누굴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누굴 미워하지 않진 않다만, 하루종일 그 생각만 하진 않는다. 내겐 언제부턴가 금이 갔고 거기로 넘치던 감정이 다 흘러내려서 이제 바닥에 찰박이는 내 감정의 총량은 얼마 되지 않아서 일희일비하는 일까지 기쁘고 슬프거나 황망하거나 황당하거나 혐오하거나 우울하거나 연민하거나 하는 항목들을 할당해 줄 수 없다. 인력난이라고 치자. 다 퇴사했거든.  


둘. 내가 물건같이 느껴진다. 관리를 해야 하는 물건.


위에 구질구질하니 써 놨지만, 샤워도 주기적으로 하고 머리도 그럭저럭 감는다. 다만 옛날 문방구에 놓인 90년대, 2000년 초반의 장난감같이 나를 취급한다. 먼지가 많이 쌓이지 않게 관리한다. 누가 찾지 않을 물건이지만 그렇다고 중고로 팔릴 물건도 아니다. 20년 전에 나온 허접스런 조립용 변신 로보트가 세월이 지났다고 해서 값이 뛰거나 성능이 좋아지진 않는다. 하얗던 플라스틱은 개봉도 하지 않은 채 누렇게 떴으니.


주짓수니 무용이니 술자리니 취미생활이니 구직생활이니 그런건 모르겠고, 그냥 사람으로서 언어기능을 잃지 않게 쪽글을 읽고 쓴다. 단 한 줄의 일기를 쓴다. 버리지 못할 물건임을 알았으니 아예 망가지지 않게 안전선을 쳐야 한다.


항우울제는 기분이 좋게 해주는 약이 아니다. 물론 그런 약도 있다고는 들었으나, 내가 먹는 약은 그에 해당하지 않는다. 내가 먹는 약은 신경안정제, 울화가 끓을 때(의사의 말에 따르면)먹는 약, 항우울제다. 개중 항우울제는 감정의 하한선을 정해준다. -90까지, -130까지 치닫던 감정을 -50아래로 내려가지 않게 받쳐주는 것이다. 약을 꾸준히 먹은지 1년 반이 넘어가니 이게 먹긴 먹어도 나이를 먹어서인지, 약을 먹어서인지 확신을 할 수는 없으나, 느낌상 둘 다 중 나이에 무게를 좀 더 싣고 싶다. 그런 것 같다. 그런 느낌이 든다.


여전히 애정과 열정을, 세상을 사랑하는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진 이들을 대단하다 느낀다. 전에는 부럽거나 시기했다. 하지만 이제 그러지 않는다. 나이를 먹었으니까. 나와 관련 없을 이야기를 길게 곰곰이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무리 가진 게 시간뿐이라 한들 시간낭비임에 틀림이 없다. 그래도 존경스러운 건 존경스럽다. 내게 우울을 토로하던 이도, 삶의 절망을 부르짖거나 담담히 말하던 이도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고 사회에 섞여 살아가고 있다. 나는 그렇게 못하겠다.


포기할 수 있는 게 뭔지 윤곽이 보이기 시작한다. 연애와 안정적인 노후, 결혼. 인간관계. 내가 철이 없어서 아니라고 믿고 싶었거나, 나만은 그 뻔한 얘기랑은 다르다며 발버둥친 문장들이 내게 현실이 되어 오는 걸 봤다. 사회에서 네 편은 별로 없단다.

잘 되면 입 싹 씻는단다. 

시절인연.



내가 잘하는 것은 이제 별로 바라지 않는다. 부끄러운 말이나, 나를 실제로 아는 이들이 몇 분 내 브런치를 읽는다. 그 분들께 미안하고 황망해, 쑥스럽고 민망해 솔직한 글을 적지 않았었다. 솔직하긴 했지만 모든 걸 드러내지는 않으려 애썼다. 그들이 내게 남겨뒀을, 아니 그들 안에 남아있을 일말의 호감이든 연민이든 변질되거나 휘발되는 게 상상만 해도 울적했다. 비탄이란 단어는 이런 데에 쓰는 걸까? 


돈이 너무 없어 친구와 사촌에게 손을 벌렸다. 병원비와 약값에 쓰고 시내버스비를 낼 것이다. 보험 만천 원. 통신비 3만 원. 알뜰폰으로 바꿀까도 했지만 찾지도 않을 나의 지인이, 몇 년간 연락 없던 지인이 전화라도 할까 전화번호를 차마 바꾸지 못했다. 모친의 '가족으로 묶어서 할인받는 중이야' 라는 말에 좀 얻어탄 감도 있다. 아, 양가감정은 나이먹으면서 좀 심해진거 같기도 하다. 



여하간, 나이를 먹으면 포기해야 할 게 몇 개 보인다. 그런 게 생각나 적었다. 





이전 10화 존나 짱인 사람이 되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