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용마루학교 내게 좋은 마중물이 되었다. 앞선 글에서 밝혔던 것처럼 300시간이 넘는 봉사 활동은 여러 대외 활동에서 나를 드러내는 큰 자산이었다. 게다가 용마루학교는 KT&G 복지재단의 협력 동아리로 협력동아리만 지원할 수 있는 KT&G 해외봉사 트랙이 있었다. 당시 나는 해외봉사단 모집에서 무려 1.2: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KT&G 해외봉사단원이 되었다. 지금 보면 대단한 건 아니지만, 21살의 내가 보기엔 썩 괜찮은 성취였다. 과정이야 어떻든 간에, 나는 학창 시절부터 꿈꿔왔던 해외 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렇게 처음 들어간 KT&G 해외봉사단 카톡방에는 모르는 사람이 가득했다. 학교라는 느슨한 연대조차 없는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대면한 첫 모임이었다. 중간고사 시험으로 늦게 참여했던 나는 그 어색함이 감도는 높은 텐션을 감당해내기 어려웠다. 하지만 복지재단도 이런 상황을 여러 번 겪어왔던 만큼, 많은 것들을 준비해놓았다. 우선, 뽑힌 운영진들은 MT를 주도적으로 진행했고 여러 술자리를 만들어주었다. 봉사 활동 방향을 잡는 것과 동시에, 같이 가는 단원들과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리고 ‘봉사’라는 목표는 적어도 봉사단원들에게는 하나의 큰 원동력이었고 12박 13일의 봉사를 잘 해내기 위해 많은 토의와 만남을 가졌다.
7월 13일, 우리 KT&G 해외봉사단은 그렇게 캄보디아로 가는 아시아나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부푼 마음을 안고 캄보디아 씨엠립에 도착했지만, 환경은 우리 상상 이상이었다. 7월의 쨍쨍한 햇볕, 찌는듯한 더위, 그리고 식사를 방해하는 벌레들까지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최악 그 이하였다. 그리고 운동회 등 삐음 초등학교 친구들에게 멋진 추억을 남기고자 준비한 것들은 단비 같은 휴식을 조금씩 줄였고 잠은 잠대로, 휴식은 휴식대로, 식사는 식사대로 못하는 심신이 지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내색하지 않았다. 부원들도 몸과 마음이 너무나 힘들지만, 휴식시간에 마시는 음료 한 잔에 피로를 털어버렸고 부원들에게 폐가 되지 않으려고 꽁꽁 숨겼다. 오히려 너나 할 것 없이 최선을 다했다. 작은 체구를 가진 친구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벽돌을 날랐고 형님들은 축 처진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았다. 각자의 모습을 보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21살의 내게 그들은 충분히 멋진 어른이었다.
이들은 내 인생에 많은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5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지금도 최선을 다해 살아오고 있다. 앵무새처럼 아나운서가 꿈이라던 친구는 오랜 준비 끝에 아나운서가 되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투철한 사명의식으로 경찰이 되기를 바랐던 또래 친구는 수재들이 모인 경찰대학에서 최우등 졸업을 하였다. 대통령상 수상은 덤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존경스러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는 실로 큰 행운이며, 내게 ‘최선을 다해 두드리면 언젠가 문은 열린다.’라는 확신을 주었다. 그리고 미디어 속에서나 보는 완벽한 종류의 사람들이 실제로 있다는 확인을 했다.
맹인이 손으로 코끼리를 만져 그리는 코끼리의 모습은 맹인마다 다르다. 하지만 코끼리를 볼 수 있는 사람은 긴 코, 두꺼운 다리 등 그 특징을 잘 담아낸다. 이처럼 실제로 본 것과 향간의 소문이 내게 미치는 영향은 다르다. 실제로 최선을 다해 목표를 이뤄낸 사람들을 멀리서라도 곁에 두고 있으면, 그들의 특징이나 행동 양식들을 파악할 수 있다. 미디어나 강연과 같이 마사지된 정형화된 정보가 아닌 내가 해석할 수 있는 그들의 특징 말이다. 이를 분별하고 받아들인 것이 아스라이 모여 언젠가는 큰 차이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