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일본과 경기에서 33% 승률을 가져갈 수 있을까?
메이저리그 팬으로서 한국 프로야구를 즐겨보지는 않지만, 이정후나 정우영 같은 선수들은 한국인 메이저리거나 메이저리그 팬덤을 통해 자주 언급되는 이름이기 때문에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이는 일본 대표팀의 선수들도 마찬가지인데, 이미 MLB에 진출한 스즈키 세이야, 오타니 쇼헤이는 물론이고, 사사키 로키나 야마모토 요시노부 등 영건 에이스들의 특징들도 풍문으로 들어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늘 이 경기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WBC 전에 분위기를 띄우고자 각 방송사나 은퇴한 야구 선수들이 여러 컨텐츠들을 제작했다. 라스 눗바와 토미 에드먼과 같은 혼혈 선수들 비교, 포지션 별 평가, 일본과 대한민국의 객관적(이라고 하는) 전력 비교 등을 보았는데, 사실 공감이 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선수 뎁스 차이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4선발인 사사키 로키보다 뛰어난 한국의 선발은 존재하지 않았다. 타자 중에서도 키스톤 콤비와 이정후를 제외하면 그다지 눈에 띄는 성적을 기록한 선수들은 없었다. 최정이나 양의지는 국가대표로서 보여준 퍼포먼스가 없었고 다른 선수들도 영광의 시절만 기억에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보다 한일전의 결과에 관심을 갖고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한국인인지라, 내 예상이 틀리기를 바랐다. 오타니를 동경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대한민국의 영건 에이스들이 오타니를 상대로 통쾌한 삼진을 잡아내기를 바랐다. 일본의 전력이 대한민국보다 두 수는 위지만, 그래도 야구는 승률의 스포츠니 언더독도 단판전에서 승리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에게도 내 예상이 통쾌하게 틀리고 한국이 승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이 카타르에서 보여줬던 투지처럼 이번에도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한국의 영건 에이스라고 불리는 선수들은 볼을 남발했으며, 그 경기를 보는 나는 부끄러움을 숨길 수가 없었다. 영광의 시대를 함께 했던 해설위원들은 좌완 에이스, 영건 에이스, 국내 최고의 선수라는 수식어를 남발했지만 박찬호, 봉중근, 윤석민, 류현진, 오승환과 같은 편안함은 없었다. 그저 콜드게임만 막아달라는 공허한 외침 뿐이었다.
박용택 해설위원은 어떤 유튜브에 출연해서 한국이 일본을 상대로 33%의 승률은 가져갈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아마도 같은 리그를 뛰는 1위 팀이 70% 아래의 승률을 기록하고 꼴찌 팀이 30% 언저리의 승률을 기록한다는 데에서 비롯된 듯한데, 객관적으로 일본과 한국이 20경기를 한다고 하면, 일본은 다르빗슈, 오타니, 야마모토, 사사키 로키의 선발진을 갖는다. 반면, 대한민국은 오늘과 어제 경기에서 나온 영건들이 선발 로테이션에 들 가능성이 있다. 일본 로테이션은 4명 모두 메이저리그에서 통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우리 대표팀은 6명 중에서 메이저리그 이야기가 나오는 선수가 한 명 뿐이다. 또광현의 김광현.
33%의 승률은 당연히 동일한 선수풀을 갖는 리그에서나 통용되는 이야기다. 피츠버그가 게릿콜을, 워싱턴이 스트라스버그와 하퍼를 뽑을 수 있는 환경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다른 선수풀을 갖는 대한민국 올스타가 일본 대표팀이 아닌 NPB에 참가한다고 해도 33%의 승률을 기대할 수 있는지 확신하기 어렵다.
프로 스포츠라는 것은 어떤 리그가 뛰어나다고 해서 더 팬들이 즐기기 좋은 리그라고 말할 수는 없다. 멀리 있는 메이저리그보다 가까이 있는 KBO를 즐기는 편이 오히려 좋은 경우도 있다. 실력 차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팬들이 최고의 경기를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할 필요는 없다. 그저 그 안에서 열심히 하고 스토리를 만들고 스타가 탄생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것이라고 하지만, 문화의 영역은 다른 우물과 내 우물을 비교하기가 까다롭기 때문에 그저 내 우물 안에서 큰 족적을 남기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모든 소설가가 노벨 문학상을 꿈꾸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팬들의 눈과 귀를 닫아버리고 편향된 사고를 하게 만드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일본과 승부에서 우리가 33% 승률은 가져갈 수 있다고 하거나, 리그 최고의 에이스라는 최상급 표현을 남발한다거나 말이다. 리그 최고의 에이스는 이 대표팀에 승선하지 않았고 각 팀의 외국인 선수보다 뛰어난 토종 에이스는 씨가 말랐다. 해설위원들은 자신감을 갖고 경기를 하라고, 부담 갖지 말라고 이야기하지만, 전교 1등이 아닌 학생에게 ‘전교 1등’이라는 타이틀은 누구보다 큰 부담이다. 자신이 후배를 아낀다면, 야구라는 스포츠를 사랑한다면 후배를 아끼는 마음으로 어루만지기보다는 실제 본인의 생각을 말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다음 세대가 더 올바른 지도를 받고 더 큰 꿈을 꿔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대호, 이순철, 이종범, 박찬호, 박용택, 정민철이 말하는데 그 어느 누가 ‘야알못’이라며 핀잔을 줄까? 지금의 비난이 두렵다면, 한국 야구의 미래는 더더욱 어두워진다. 야구를 좋아하는 한 팬으로서,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많이 등장하기를 바라는 팬으로서 나는 그 미래가 더욱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