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 있길...
개인 과외를 한 적이 있었다. 나의 수많은 'job list' 중에는 과외 전문 회사에서 일한 것도 포함이 되어 있다. 그 회사의 괴이한 문화를 얘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참겠다.
단적인 예로 한 가지만 이야기해보면, 그 회사 대표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임을 굉장한 자랑거리로 삼고 있었다. 자신이 나서서 한마디 하는 자리에선 사업 성공이 자신의 절실한 기도 덕분이라는 연설을 빼놓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사내에서 연 모종의 행사에 출품된 작품 중에는 대표가 양을 이끌고 있는 사진+그림이 있었다. 예수가 양 떼를 모는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법한- 그림에 예수님 얼굴에는 대표의 사진을 덧붙이고, 몇 마리 양에는 직원들의 얼굴을 붙인 별것 아닌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 작품은 전체 출품작 중 대상을 받고, 본사 건물에 액자로 보관됐다.
나는 본사로 출근을 하면서 그 그림이 굉장히 꼴사납다고 생각했는데, 그 작품은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에 전시됐다. 시간이 지나 다른 입상 작품은 모두 치웠지만 그 대상만큼은 치우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꽤나 흡족하셨던 모양이다.
어쨌든 그 회사에서 과외 교사로 일할 때 느낀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아직도 맞으면서 크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 아이들은 마치 다 큰 성인들처럼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급급한 모습이었다.
거의 모든 아이들이 공부하길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너무나 분명했다. 하지만 나와 수업해야 하는 2시간은 꼬박 공부를 해야 했다. 아이들은 어떻게든 그 시간을 재미있게 때우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계속 장난을 치고, 쓸데없는 것을 물어봤다. 그러다 공부에 집중하라고 엄포를 놓으면 집중하는 듯하지만 얼마 못가 졸기 시작했다. 이런 아이들에게 나는 언제나 물어봤다.
"공부 안 하면 뭘 제일 하고 싶어?"
그러면 초등학생들은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일을 말했다. 하지만 중학교만 넘어가도, 심지어 그냥 중1이 된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마치 서로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똑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하고 싶은 일은 없고, 그냥 놀고 싶어요."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40대 중반이지만 늘 하고 싶은 게 넘친다. 너무 하고 싶은 게 많아서 문제다. 그런 나도 어렸을 때는 하고 싶은 것 따위 없었던 것 같다. 중학교 남짓의 나에게 누군가 묻는다면 역시 똑같이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다른 답을 내놓은 아이들이 있다. 그런 아이들은 보통 가정폭력이 있는 집안의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다가 뭔가 정리가 된 듯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선생님이라든지, 공무원이라든지, 대기업에 들어가 돈을 벌고 싶다라든지 같은 이야기를 마치 자신의 인생 계획에 있는 것 마냥 이야기한다.
나중에 나는 그 질문을 통해 아이들이 가정폭력에 노출이 되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짐작하기도 했다. 그 짐작은 대체로 들어맞았다. 그런 대답을 한 아이의 집에 수업을 하러 가서 벨을 누르면 가끔씩 어머님이 문 밖으로 고개만 살짝 내밀때가 있다. 그 어머니는 난처한 표정으로 "죄송하지만 다음에 와 주세요."라고 말한다.
집안에서는 굵은 남자의 고함과 '짝짝'하는 타격음이 들려온다. 나는 참된 선생의 마음으로 그 상황을 말리고 싶지만 어머님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한 모습을 보고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체하고 "아, 그런가요?"하고 어머님과 인사를 나눈다.
그렇게 돌아오는 길엔 말로 형용할 수 없이 거지 같은 기분이 든다. 다음 날 그 애의 집에 가면 그 애는 풀이 죽어 있다. 가끔은 날 보고 어색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다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집을 나와 카페 같은 곳에서 수업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면 머뭇거리다가 엄마의 허락을 받고 신이 나서 가방을 챙긴다.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항상 나중에 네가 아빠보다 힘이 세지거나 아빠가 나이 들어 힘이 없어지면 실컷 때리라고 말했다.
"선생님도 아빠를 패줄 수 없고, 엄마도 널 못 도와줘. 알지? 넌 어쨌든 네가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아빠랑 살아야 하니까 가능한 덜 맞도록 피할 수 있을 만큼 피하면서 살아. 그러면서 운동 많이 해서 아빠를 패줄 수 있겠다 싶을 때, 패. 죽이지는 말고."
라고 말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놀라지만 은근 속이 시원해하면서 웃음을 되찾는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나는 그 학생 부모에게 해고 통보를 받는다. 그 통보가 오기까지 과정은 이럴 것이다.
엄마가 아이에게 "선생님이랑 무슨 얘기했어?" 하고 물으면 아이는 이렇게 저렇게 둘러대다가 결국 사실을 말한다. 사실을 말하는 이유는 첫째로 엄마니까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이고, 둘째는 선생님이 특별히 어른들에게 얘기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엄마는 비록 폭압적인 남편이지만 아이 문제를 혼자 처리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남편과 상의하고, 나는 결국 "그만 오셔도 돼요."라는 취지의 문자를 받는다. 그 문자를 받으면 월에 한 20~30만 원을 못 받게 된다. 나에게는 그뿐인 일이지만 아이는 그 집에 계속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 참 답답하다. 나는 나의 그 말이 그대로 아버지에게 전달되어 아이를 함부로 때리면 안 되겠다는 마음을 갖길 바라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런 아버지들이 술에서 깨거나 회사에서 잘 안되던 일이 해결이 됐을 때쯤 아이를 앞에 앉혀 놓고 꼭 하는 말이 있다.
"얘야. 세상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 없단다. 아빠도 회사가 가기 싫더라도 너희들 때문에 가는 거야. 아빠는 네가 공부 잘하고 건강하기만 하면 바라는 거 하나도 없어."
실상 아이들은 그저 살아남기 바쁠 뿐 하고 싶은 일 따위는 없지만 "예"라고 답한다. 그 아빠라는 사람은 그 답을 듣고 어느 정도 만족하겠지... 아이가 어느 정도는 자신의 마음 알아 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쓰다 보니 속상해졌다.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는 말은 애들한테 씨부리지 말고 그냥 개나 줬으면 한다.
...
반려인으로써 개나 주란 말은 취소다. 그냥 너나 그렇게 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