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퇴사자의 명절
명절은 현실과 환상이 완벽하게 다른 날이다.
하도 많은 매체에서 명절 후유증에 대해서 이야기해서 현실과 환상이 다르다는 것은 거의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알고 있다. 그러나 그 환상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명절은 이제 휴일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예전에는 그나마 만나면 반가울 친척들이 명절을 계기로 모이기라도 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집은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부모님 건강도, 집안 사정도, 내 사정도, 다른 친척과의 관계도 뭐 하나 좋은 것이 없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약 7~8년 전부터 "명절은 없다"라고 마음먹었었다.
분명히 명절을 계기로 만나는 친척들이 거의 없어졌음에도, 제사를 지내도 와서 절할 사람이 없음에도 꾸역꾸역 차례나 제사를 지냈었는데, 마침 한 집안의 종손이었던 나는 전통적인 권위와 자격으로 제사를 완전히 폐지해 버렸다.
많은 집안 어른들이 제사는 지내야 한다고 말했지만 막상 때가 돼도 제사를 지내지 않고 제사에 내가 참가하지 않으니 아무도 집안 제사를 지내겠노라고 나서지 않았다.
결국 실제로는 아무도 진심으로
제사를 지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덕분에 우리 집에는 고부 갈등도 없고, 명절 증후군도 없으며, 명절에 오히려 소외받는 누군가도 없게 됐다. 지옥 같은 교통체증도, 한 달 전부터 눈치 싸움을 하던 기차표 예매도 없어졌다. 그렇게 제사든 차례든 지내지 않으니 모두가 편해졌다.
대신 명절이 아닌 시간에 왕래가 늘어났다. 물론 먼 친척은 아예 볼 일이 없어졌지만 원래 가까웠던 사람들끼리는 더 많이 만났다. 어린아이들은 잘 알지도 못하고, 어른들끼리도 하도 만남이 없어서 어색할 지경이 된 친척들이 다 모여서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술이 얼근하게 취한 후 갑자기 여기저기서 언성을 높이는 상황이 벌어지는 명절의 클리셰를 더 이상 겪지 않게 된 것이다.
이런 에너지 소모를 내 대에서 끊어 냈다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퇴사를 하고 나니 진짜 잘했다는 생각이 더 든다. "왜?"의 지옥에서 빠지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왜의 지옥'이 뭔지 짐작이 갈 거다. "왜 회사를 그만뒀니?", "왜? 누가 힘들게 한 거야?", "왜 아이는 안 갔니? 회사를 그만둬서 좀 어렵니?" 등등의 질문이 날아올게 뻔한데 그것에 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만사가 다 편하게 느껴진다.
정작 나의 부모는, 그리고 가까운 아내는 그만뒀다고 하니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처가에서는 묻지도 않았다. 이유는 내가 이러는 게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계속 퇴사와 이직을 반복해 왔지만 알아서 제 살길 찾아 글 쓰면서 잘 먹고산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거의 처음, 혹은 아주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그게 큰일인 양 쉴 새 없이 왜 공격을 날린다.
근데 여기서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그 상황에서 더 싫은 건 내 모습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하면 되는데 뭔가 큰 이상이 있는 것처럼 부풀려 말을 한다. 물론 그게 '왜 공격'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더 많은 경우 나 스스로에게 하는 변명에 가깝다.
프리랜서의 숙명은 불안이다. 불안은 프리랜서에게는 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안 퍼지고 일을 하니까. 그래야 몸이 움직여지고 글이 떠오른다. 당연한 과정이고 결과물을 양산하기 위한 필수 코스다. 심지어 갓 퇴사한 프리랜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남들에게 말할 때는 그 숙명과도 같은 불안을 인식조차 못하는 사람인 것처럼, 마치 계획이 다 서 있는 것처럼 말하게 된다. 계획은 계획일 뿐 마음처럼 될 리가 없다는 거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 입이 가만히 안 있는다. 뭘 하고 뭘 해서 결국에는 뭘 할 거다. 물론 생각은 안 해본 건 아니지만 구체적인 계획도 사실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것을 남발한다.
결국 '왜 공격'이 너무 싫은 건 의연하지 못한 나의 모습 때문이다.
"괜찮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좀 불안하지만."
이렇게 말한다면 나는 나 스스로를 속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면 '왜 공격'에 이은 '어떻게 공격'이 이어지겠지만 어차피 지나가는 일이다. 그런데 나의 끝말은 항상 이렇게 마무리된다.
"너무 좋아. 그러니까 'YOU'도 일 그만둬."
그렇게 말을 끝내고 나면 그들의 푸념이 시작되고 나에게는 '대단하다', 혹은 '넌 이러이러해서 좋겠다' 등등의 긍정과 약간의 조롱, 그리고 그들 자신에게 던지는 질타 등이 섞인 반응이 나온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들의 반응에 만족한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퇴사는 곧 실직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나조차 자유롭지 못하다는 현실을 자각하게 된다. 나는 그게 싫다.
퇴사를 - 거짓말 좀 보태서 - 31번째 하는 나도 갑자기 하던 일이 중단되고 수입의 일부가 끊기면 좀 막막하고 불안하다. 하지만 선뜻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건 불안을 인정해 버리면 불안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내 모습이 실체화될 것 같아서다.
용기 내서 고백컨데 하루라도 아니, 잠시라도 글이 잘 안 써지고 멍해지면 불안하고 초조하다. 그게 고정 수입이 없는 퇴사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할 수 있는 건 그 불안을 발판 삼아 글의 동력으로 삼는 것. 지금도 하루에도 몇 번씩 잡코리아를 뒤적거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글이 됐든 영상이 됐든 내 콘텐츠로 승부하자는 마음으로 그만뒀는데, 또 다른 사람이 주는 돈이 얼마나 편했던가를 떠올리게 되는 망각의 굴레가 참 답답하다.
오늘은 꿀꿀해서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