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여 년째 텃밭을 하고 있다. 남편은 시골 출신이지만 중학교 시절부터 누님들과 서울에 올라와 살았고, 나는 오롯이 부산 직할시에서만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래도 고향이 시골인 남편은 늘 흙에 대한 그리움이 있는 사람이고, 나 또한 워낙 변두리에서 살았던 터라 엄마를 따라 빨래하러 나물 캐러 산으로 드나들던 어린 시절 기억이 남아있다. 그래서인지 텃밭을 좋아하고 추첨에서 떨어질까 전전긍긍하며 한 해를 시작하는 점에서는 부부가 마음이 참 잘 맞는다.
올해 가까운 마을 텃밭은 추첨에서 떨어졌다. 경쟁률이 8:1에 가깝기에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막상 떨어지자 걱정이 한 짐이었다. 텃밭을 가꾸는 즐거움은 당연하고 점점 올라가는 물가를 따라잡을 길이 없는 탓에 남아있는 개인 분양 텃밭이 있는지 온 동네를 수소문했다. 며칠 만에 누군가 이사하느라 포기한 10평을 겨우 구했을 때는 어찌나 기뻤는지 막걸리 파티를 열었을 정도다.
일요일이라 6시부터 남편과 둘이 텃밭에 나갔다. 며칠 돌보지 못해 자란 풀을 뽑고 쌈 채소들도 수확하고 새로 뿌린 시금치 씨앗이 길쭉하게 올라온 모습이 어찌나 기특한지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금요일 아침 알타리를 뽑아내 비어있던 자리에는 열무와 여름 상추씨를 다시 뿌리고 흙을 덮고 잘 자라라 잘 자라라 마음을 담아 흙을 두드려주고 대파 뿌리 쪽 흙을 북돋워준다. 그리고 이제 제법 힘이 생겨 꼿꼿이 몸을 세운 오이가 더 잘 자랄 수 있도록 덩굴손을 살살 그물에 걸어 기대어 주었다. 꼭 덩굴 식물이 아니어도 막대 하나, 줄 하나라도 기댈 곳이 있으면 식물들은 더 잘 자란다. 참 신기하다. 기댈 곳 하나 마련해 주지 않고 왜 단단하게 자라지 못하냐고 지청구를 할 일이 아닌 것이다.
아침에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한 다리 건너 아는 분 딸이 유서를 남기고 삶을 버렸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해 잘 지내고 있었다는데, 며칠 전에도 웃으며 만났다는데. 삶을 버티지 못할 만큼 힘들었음을 미처 알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부모의 마음이 더 무너지지 싶다. 집에 돌아와 괜히 아이들을 다 불러내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문득 겁에 질린 나를 깨닫는다. 식물들도 가느다란 줄만 있어도 기대어 더 힘을 내는데, 사람 마음도 똑같지 않겠니? 식물들이 조용히 나를 타이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이들이 나에게 기대어 자라길, 고단한 마음을 나에게 내려놓고 다시 세상으로 나갈 힘을 얻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나 역시 단단히 중심을 잡고 받칠 굵은 기둥이 되길. 그래야 아이들이 마음을 놓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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