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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현정 Jun 04. 2023

기둥을 의지해 자라는 식물을 보며


벌써 10여 년째 텃밭을 하고 있다. 남편은 시골 출신이지만 중학교 시절부터 누님들과 서울에 올라와 살았고, 나는 오롯이 부산 직할시에서만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래도 고향이 시골인 남편은 늘 흙에 대한 그리움이 있는 사람이고, 나 또한 워낙 변두리에서 살았던 터라 엄마를 따라 빨래하러 나물 캐러 산으로 드나들던 어린 시절 기억이 남아있다. 그래서인지 텃밭을 좋아하고 추첨에서 떨어질까 전전긍긍하며 한 해를 시작하는 점에서는 부부가 마음이 참 잘 맞는다.
올해 가까운 마을 텃밭은 추첨에서 떨어졌다. 경쟁률이 8:1에 가깝기에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막상 떨어지자 걱정이 한 짐이었다. 텃밭을 가꾸는 즐거움은 당연하고 점점 올라가는 물가를 따라잡을 길이 없는 탓에 남아있는 개인 분양 텃밭이 있는지 온 동네를 수소문했다. 며칠 만에 누군가 이사하느라 포기한 10평을 겨우 구했을 때는 어찌나 기뻤는지 막걸리 파티를 열었을 정도다.
일요일이라 6시부터 남편과 둘이 텃밭에 나갔다. 며칠 돌보지 못해 자란 풀을 뽑고 쌈 채소들도 수확하고 새로 뿌린 시금치 씨앗이 길쭉하게 올라온 모습이 어찌나 기특한지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금요일 아침 알타리를 뽑아내 비어있던 자리에는 열무와 여름 상추씨를 다시 뿌리고 흙을 덮고 잘 자라라 잘 자라라 마음을 담아 흙을 두드려주고 대파 뿌리 쪽 흙을 북돋워준다. 그리고 이제 제법 힘이 생겨 꼿꼿이 몸을 세운 오이가 더 잘 자랄 수 있도록 덩굴손을 살살 그물에 걸어 기대어 주었다. 꼭 덩굴 식물이 아니어도 막대 하나, 줄 하나라도 기댈 곳이 있으면 식물들은 더 잘 자란다. 참 신기하다. 기댈 곳 하나 마련해 주지 않고 왜 단단하게 자라지 못하냐고 지청구를 할 일이 아닌 것이다.
아침에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한 다리 건너 아는 분 딸이 유서를 남기고 삶을 버렸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해 잘 지내고 있었다는데, 며칠 전에도 웃으며 만났다는데. 삶을 버티지 못할 만큼 힘들었음을 미처 알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부모의 마음이 더 무너지지 싶다. 집에 돌아와 괜히 아이들을 다 불러내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문득 겁에 질린 나를 깨닫는다. 식물들도 가느다란 줄만 있어도 기대어 더 힘을 내는데, 사람 마음도 똑같지 않겠니? 식물들이 조용히 나를 타이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이들이 나에게 기대어 자라길, 고단한 마음을 나에게 내려놓고 다시 세상으로 나갈 힘을 얻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나 역시 단단히 중심을 잡고 받칠 굵은 기둥이 되길. 그래야 아이들이 마음을 놓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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